"선생님, 병원정보시스템 하면 환자에 뭐가 좋아요?"
최근에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정보시스템을 사우디에 수출하는 사업 때문에 외래를 자주 비운 탓에 오랜만에 외래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짜리 환자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아마도 외래 일정이 바뀐 탓에 보호자 분들과 대화하다가 나온 얘기를 듣고 말한 것 같다. 순간적으로 꼬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병원정보시스템의 목적이 단순히 의사, 간호사, 약사의 일을 자동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환자 치료에 이득이 되도록 하는 것인데 아직도 환자들에게 그 가치나 유용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대형 병원의 경우 병원정보시스템은 이제 도입기를 넘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사람으로 치면 신경계와 같은, 도시로 치면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거나 기능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환자 진료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아직도 환자의 진료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심을 다해 진료하는 좋은 의사와 의료진이지만, 이들의 성실함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병원정보시스템이 하고 있다.
사실 환자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병원 진료과정 곳곳에서 정보시스템은 더욱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특히 종이 차트 시대의 병원과 비교해 여러 가지 인공지능 기능들로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위해 상황을 예방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환자에게 여러 가지 투약 지시를 내릴 때 이전에는 오로지 의사의 지식과 주의력에 의존해야 했던 반면, 지금은 정보시스템의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이라 불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용량이 적절한지, 병용하면 안 되는 약물과 같이 투약 되는 건 아닌지 , 중복처방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과거에 이 약에 과민반응을 보인 적은 없는지 등을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판단하고 문제가 있으면 의사와 약사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줘 병원에서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약화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표준진료지침시스템'은 모든 환자가 같은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임상질지표시스템'는 불필요한 항생제를 피하도록 유도한다. 또 의사가 제시간에 진료나 수술을 시작하도록 하며, 특정질환의 치료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병원 단위로 실시간 자료를 제공해 제한된 자원으로 효율적인 진료를 하도록 도와준다.
종이 차트 시대에서 종이 없는 병원 시대로의 이행을 지나, 이제 병원정보시스템은 그 자체로 안전하고 질 높은 환자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 기반 기술로 점차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 데이터의 활용을 위해서도 의료정보시스템은 가장 근본적인 데이터 저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앞서가는 병원 들은 이러한 데이터들을 이용해 예측 의학에 기여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기술들을 적용하는 파일럿을 시작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가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이뤄지면 국민 건강의 향상에 보다 의미 있게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전에 데이터 운용에 대한 원칙이 합의되어야 하고, 개인건강기록이든, 의료정보교류 프로그램이든 정보가 서로 호환되기 위한 최소한의 표준 확립은 필수적으로 진행 돼야 하는 전제조건이다.
이제 우리는 병원정보시스템의 도입기를 지나, 성숙기를 거쳐 발전하는 단계의 목전에 와있다. 다행히 여러 정부 부처가 헬스케어 관련 IT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연구 투자를 진행 중이며 더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에서는 보건의료정보화와 관련한 여러 청사진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적극적인 지원 속에 각각의 이해 당사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으로 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모범적인 IT 기술을 보건 의료에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해 논의하고, 조그마한 시도라도 시작해 '헬스 3.0' 시대에 걸맞은 기술환경으로 이행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황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정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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