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련 이사장 - 독창적 수업모델 개발 한국형 융합교육
잉그램 부관장 - 박물관 역할 변화…교육기능 강화 초점
21세기 혁신과 융합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스티브 잡스는 학창시절 천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양아버지 폴 잡스는 어린 잡스를 나무라지 않고,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학교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대학 입학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을 그만두고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들을 골라들으며 훗날 IT혁신을 가능케 한 `융합영감'을 길렀다. 전공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선 덕분에 기술과 예술, 공학과 콘텐츠를 아우르는 인재로 다듬어진 것이다.
잡스의 맥을 잇는 융합형 미래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세계는 교육 콘텐츠와 장소의 칸막이를 없앤 새로운 융합교육 플랫폼 도입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국가 사활이 걸린 인재 경쟁력이 바로 교육현장에서 판가름난다는 절박한 판단이 그 배경에 놓여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앞장서서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등을 종합적으로 교육하는 `STEM'을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과학기술 소양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자는 것.
우리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도해 STEM에 예술(Art)을 포함시킨 `STEAM(융합인재교육)'을 융합인재 육성의 키워드로 교육현장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수학과 과학, 기술, 공학에 예술적 소양을 추가해 다른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은 미래형 인재로 양성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과학창의재단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과학교육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미국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MSI)과 STEAM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고 미래형 인재 양성에 손을 잡기로 했다. 3일까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11 과학창의 연례콘퍼런스'에서 강혜련 과학창의재단 이사장과 안드레아 잉그램(Andrea Ingram) 미 MSI 부관장을 만났다.
대담=정경과학부 안경애 차장
- STEAM이 교육혁신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지만 개념이 아직 분명치 않아 보인다. 창의재단이 추진하는 STEAM, MSI가 실행하고 있는 STEM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강혜련 이사장=사실 STEAM의 개념은 아직 학문적으로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고,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이 다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STEM, 우리는 `Art'를 덧붙여 STEAM이 됐다. 최근 작고한 스티븐 잡스의 경우를 보면 결국 한 사람의 창의성과 상상력, 융합적 마인드가 오랜 전통의 거대 기업을 단순간에 무너뜨렸다. 소니의 워크맨이 아이팟에, 모토롤라나 노키아의 휴대폰이 아이폰에 무너졌다. 세계적으로 융합 마인드를 갖춘 창의인재 육성이 21세기 인재양성의 핵심이라는 게 스티븐 잡스의 스토리로 증명된 것이다. 이를 위한 교육적 접근이 바로 STEAM이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이 큰 문제이지만 기술혁신 분야에서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가 글로벌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기술을 새롭고 조화롭게 편집해서 이루는 것이므로, 융합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이런 취지에서 융합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융합시대를 선도할 인재는 공학적, 과학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적 감성까지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STEAM이 필요한 배경이다.
STEAM의 개념은 아직 진화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핵심 중 하나는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학생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과학 성취도는 높지만 흥미와 이해도는 세계 꼴찌에 가깝다. STEAM의 개념이 정착하려면 학교 현장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잉그램 부관장=오바마 대통령은 STEM을 교육혁신의 키워드로 들고 나왔다. STEM을 통해 교육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교육제도의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그에 대한 교육현장의 해결책으로 STEM이 제시됐다. STEM을 통해 학생들이 과학과 혁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자는 취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관련, 10년 내에 새로운 과학교수 10만명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 창의재단과 MSI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STEAM과 STEM 프로그램의 내용을 각각 소개해달라.
▶강혜련 이사장=STEAM 교육을 올 하반기에 시작해서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창의재단은 STEAM이 교육현장에 잘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 다각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먼저 개념에 대한 정립이 중요하다. STEAM 교육이 무엇인지 학문적 연구가 필요한 만큼 계속 진행하고 있다. STEAM 교육이 기존 수업이나 학습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수업모델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16개 연구시범학교를 선정했다. 각자 STEAM 교육이라 생각되는 것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전문가들이 수업모델을 개발해 현장에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수업모델이 3가지 정도 나온다. 첫째, 단일 교과 내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형태가 있고, 둘째, 과목간 연계형 수업이 있다. 예를 들어 과학과 미술 수업을 연계하는 식이다. 셋째, 정규 교과 외 방과후나 창의적체험활동을 활용해서 교육할 수 있다. 이렇게 유형화하는 것으로 접근하고 있다. 올해 40여개 수업모델을 개발했고, 내년에는 80여개로 늘릴 예정이다. 교육현장의 노하우 공유와 베스트 프랙티스 발굴도 중요하다.
시범학교들이 매월 워크숍을 열고 서로의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베스트 프랙티스가 확산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이를 통해 내년에는 한국형 STEAM 교육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교원연수와 선진사례 벤치마킹에도 힘쓰고 있다.
▶잉그램 부관장=STEM 교육을 위해 우리 박물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접근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한 예로 과학교사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중학교 과학교사 중에는 과학 비전공자들이 꽤 많다. 때문에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는 데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런 교사들을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과학에 대한 지식과 교수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과학이 교실 밖에도 존재하므로, 외부의 여러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사들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 기존 교육의 틀을 깨는 변화가 시도되는 것 같다. 국내의 STEAM 연구시범학교 현황은 어떤가. 또 미국 교육현장에서 STEM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도입되고 있는가.
▶강혜련 이사장=연구시범학교는 지난 8월 지정하고 9월에 현장에 뿌려진 만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각 학교에서 지원해 뽑히다 보니 열정과 동기가 있는 곳들이다. 시범학교에 소속된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교사들이 STEAM을 배우기 위해 자생적으로 지역별로 만든 47개 교사연구회가 구심점이 되고 있다. 시범학교들은 매월 한차례 워크숍을 갖고 함께 학습하고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그 안에서 공유와 확산이 일어나는 모습이 매우 긍정적이다.
내년에는 시범학교가 현재의 16곳에서 80곳으로 늘어나는 만큼 재단에서 프로그램 개발을 끊임없이 해줘야 하고 교사연구회 모임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교사연구회는 내년에 150개로 늘릴 계획이다. 교사연수도 중요하다. 재단이 내년초 연수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교사들이 연수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돼 훨씬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잉그램 부관장=미국은 지역마다 수많은 교육구가 있고 교육구마다 프로그램이 다르다보니 STEM이 얼마나 도입되고 있는지 누구도 정확하게 알기가 힘들다. 일리노이주만 해도 교육구가 900여개나 된다. 교육구마다 교과과정과 교육전략을 다르게 짠다. 정확한 숫자는 얘기하기 힘들지만 예는 들 수 있다. 시카고 공립학교 중에는 STEM 고등학교들이 있다. 스스로 STEM 고등학교라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가 내려져 있지는 않고, 일관성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시스템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교사들이 나름대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기관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교육현장에서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지속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 박물관이 전시에 머물지 않고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데, 효과와 장점을 소개하자면.
▶잉그램 부관장=미국의 교육분야 혁신을 위해 MSI는 과학관련 기관으로서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수년전부터 대대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전략적인 우선순위를 정하게 됐다. 특히 교육기능을 크게 늘리고 교육과 전시를 아우르는 기획을 강화했다. 대규모의 전시를 준비하고 설계할 때 교육현장에 있는 분들을 참여시켰다. 이를 통해 전시가 한 단계 확장돼 학습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콘텐츠 역시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학생들이 더 관심을 갖도록 기획했다. 또 박물관에 대해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도록 해 학생들이 최대한 많은 과학관련 경험을 갖게 해주도록 노력한다.
이와 함께 박물관 내 과학진흥센터를 통해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조함으로써 과학교육이 지역사회의 학교, 특히 중학교에서 더 잘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을 둘러볼 때 재미있고 쉽고, 생활과 밀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과학이 연계돼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MSI는 박물관 임직원 스스로가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관람객에게 훌륭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교육기관의 역할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분명히 과학교육에 있어서 박물관 역할의 패러다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박물관 교육부서는 더 많은 관람객을 끌기 위한 수단이었다. 교사교육도 좁은 의미에서만 이뤄졌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우리가 뭘 필요로 하느냐가 아니라, 교사들이 뭘 필요로 하느냐를 질문한다. 지역사회와의 상호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박물관을 더 찾게 하느냐가 아니라 박물관에 올 수 없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할지를 생각하는 식이다.
- 학교뿐만 아니라 박물관이 과학교육의 허브 역할을 하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STEAM을 확산하기 위해 비슷한 계획이 있는지.
▶강혜련 이사장=대학의 자원을 초ㆍ중ㆍ고등학교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미 노스웨스턴대학 등은 대학의 리소스가 초ㆍ중ㆍ고등학교와 연결돼 있어 공대의 실험에 고등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 단절돼 있다. 그래서 내년부터 대학을 초ㆍ중등학교 STEAM 교육에 적극 동참시키는 시도를 하려고 한다. 첨단과학기술 교사연수센터를 지정해 대학의 첨단 연구 현장을 과학교사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학이 STEAM 교육을 위해 스스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진로 비전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 MSI의 STEM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무엇으로 꼽는지.
▶잉그램 부관장=프로그램 중 하나를 꼽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과학교사 대상 교육프로그램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나중에 평가를 한 결과 교사들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교실의 학생들로 잘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략을 잘 짜는 게 매우 중요하다. 교사 교육이라는 한쪽 영역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고,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하나여야 한다.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교실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도 과학을 접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관련, MSI는 시카고 지역 74개 협력기관들과 손잡고 `사이언스클럽'을 만들었다.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들과 손잡고 이들 기관에서 과학 교육과정을 만들어 유지할 수 있도록 박물관이 직원대상 교육을 제공하고 과학관련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고 있다. 방과후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에 과학교육과정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로 취약계층 아이들이 많아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박물관에 올 수 있게 교통수단도 제공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일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4~5년 정도로 길게 진행한다.
이와 함께 고등학생들이 STEM 관련 분야로 커리어를 가질 수 있도록 진로지도를 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학생이 생활하는 영역이 많은데, 모든 생활영역에서 높은 퀄리티의 과학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자 전략이다.
- MSI는 이미 STEM을 실천하고 있는 곳인 만큼 갖고 있는 노하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두 기관간 MOU의 주된 내용과 향후 구체적인 협력계획은.
▶강혜련 이사장=개인적으로 20여년 전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MSI를 가봤을 때는 방문객으로서 전시물만 보고 왔다. 그런데 지난 8월 기관장으로서 가서 박물관 운영 전반에 교육기능에 방점이 찍힌 것을 보고 놀라웠다. 박물관 역할의 패러다임 변화를 목격하고 그 역할에 크게 감동 받았다. 이번 MOU를 통해 가장 기대하는 것은 과학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다. 실제로 가보니 연수프로그램이 고객맞춤형으로 매우 잘 짜여져 있었다. 초등, 중등, 고등 등 학교별로 서로 달리할 뿐만 아니라, 교사 수준에 따라서도 거기에 맞는 수준별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을 벤치마킹하고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 두 번째는 학생들을 위한 러닝랩 부분이다. MSI는 러닝랩이 매우 많아서 실제로 체험형 과학학습이 일어나고 있다. STEAM 교육은 융합인데, 교실에서 하는 교육만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기업들도 할 수 있는 교육기능이 제한적이다. 각 지역사회의 박물관과 과학관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등 벤치마킹할 게 많다. 조속히 아주 긴밀하게 체계를 잡고 로드맵을 만들 계획이다. 매우 기대된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1957년 서울생.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산업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5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해 입학처장, 경력개발센터 원장, 기획처장을 맡았다. 2008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 고등교육분야 정책자문위원, 2010년부터 교과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이사이기도 있다. 지난 5월 과학창의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안드레아 잉그램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 부관장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아동복지 및 인권 담당 변호사이기도 하다. 일리노이주 가정 및 아동담당국장과 전략적 제휴 및 정보책임자을 지냈으며,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의 교육 및 고객서비스 부문을 책임지는 부관장이다. 박물관을 통한 과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와 과학교육 질 향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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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램 부관장 - 박물관 역할 변화…교육기능 강화 초점
21세기 혁신과 융합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스티브 잡스는 학창시절 천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양아버지 폴 잡스는 어린 잡스를 나무라지 않고,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학교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대학 입학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을 그만두고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들을 골라들으며 훗날 IT혁신을 가능케 한 `융합영감'을 길렀다. 전공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선 덕분에 기술과 예술, 공학과 콘텐츠를 아우르는 인재로 다듬어진 것이다.
잡스의 맥을 잇는 융합형 미래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세계는 교육 콘텐츠와 장소의 칸막이를 없앤 새로운 융합교육 플랫폼 도입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국가 사활이 걸린 인재 경쟁력이 바로 교육현장에서 판가름난다는 절박한 판단이 그 배경에 놓여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앞장서서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등을 종합적으로 교육하는 `STEM'을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과학기술 소양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자는 것.
우리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도해 STEM에 예술(Art)을 포함시킨 `STEAM(융합인재교육)'을 융합인재 육성의 키워드로 교육현장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수학과 과학, 기술, 공학에 예술적 소양을 추가해 다른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은 미래형 인재로 양성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과학창의재단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과학교육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미국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MSI)과 STEAM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고 미래형 인재 양성에 손을 잡기로 했다. 3일까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11 과학창의 연례콘퍼런스'에서 강혜련 과학창의재단 이사장과 안드레아 잉그램(Andrea Ingram) 미 MSI 부관장을 만났다.
대담=정경과학부 안경애 차장
- STEAM이 교육혁신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지만 개념이 아직 분명치 않아 보인다. 창의재단이 추진하는 STEAM, MSI가 실행하고 있는 STEM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강혜련 이사장=사실 STEAM의 개념은 아직 학문적으로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고,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이 다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STEM, 우리는 `Art'를 덧붙여 STEAM이 됐다. 최근 작고한 스티븐 잡스의 경우를 보면 결국 한 사람의 창의성과 상상력, 융합적 마인드가 오랜 전통의 거대 기업을 단순간에 무너뜨렸다. 소니의 워크맨이 아이팟에, 모토롤라나 노키아의 휴대폰이 아이폰에 무너졌다. 세계적으로 융합 마인드를 갖춘 창의인재 육성이 21세기 인재양성의 핵심이라는 게 스티븐 잡스의 스토리로 증명된 것이다. 이를 위한 교육적 접근이 바로 STEAM이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이 큰 문제이지만 기술혁신 분야에서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가 글로벌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기술을 새롭고 조화롭게 편집해서 이루는 것이므로, 융합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이런 취지에서 융합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융합시대를 선도할 인재는 공학적, 과학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적 감성까지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STEAM이 필요한 배경이다.
STEAM의 개념은 아직 진화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핵심 중 하나는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학생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과학 성취도는 높지만 흥미와 이해도는 세계 꼴찌에 가깝다. STEAM의 개념이 정착하려면 학교 현장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잉그램 부관장=오바마 대통령은 STEM을 교육혁신의 키워드로 들고 나왔다. STEM을 통해 교육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교육제도의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그에 대한 교육현장의 해결책으로 STEM이 제시됐다. STEM을 통해 학생들이 과학과 혁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자는 취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관련, 10년 내에 새로운 과학교수 10만명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 창의재단과 MSI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STEAM과 STEM 프로그램의 내용을 각각 소개해달라.
▶강혜련 이사장=STEAM 교육을 올 하반기에 시작해서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창의재단은 STEAM이 교육현장에 잘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 다각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먼저 개념에 대한 정립이 중요하다. STEAM 교육이 무엇인지 학문적 연구가 필요한 만큼 계속 진행하고 있다. STEAM 교육이 기존 수업이나 학습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수업모델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16개 연구시범학교를 선정했다. 각자 STEAM 교육이라 생각되는 것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전문가들이 수업모델을 개발해 현장에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수업모델이 3가지 정도 나온다. 첫째, 단일 교과 내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형태가 있고, 둘째, 과목간 연계형 수업이 있다. 예를 들어 과학과 미술 수업을 연계하는 식이다. 셋째, 정규 교과 외 방과후나 창의적체험활동을 활용해서 교육할 수 있다. 이렇게 유형화하는 것으로 접근하고 있다. 올해 40여개 수업모델을 개발했고, 내년에는 80여개로 늘릴 예정이다. 교육현장의 노하우 공유와 베스트 프랙티스 발굴도 중요하다.
시범학교들이 매월 워크숍을 열고 서로의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베스트 프랙티스가 확산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이를 통해 내년에는 한국형 STEAM 교육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교원연수와 선진사례 벤치마킹에도 힘쓰고 있다.
▶잉그램 부관장=STEM 교육을 위해 우리 박물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접근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한 예로 과학교사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중학교 과학교사 중에는 과학 비전공자들이 꽤 많다. 때문에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는 데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런 교사들을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과학에 대한 지식과 교수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과학이 교실 밖에도 존재하므로, 외부의 여러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사들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 기존 교육의 틀을 깨는 변화가 시도되는 것 같다. 국내의 STEAM 연구시범학교 현황은 어떤가. 또 미국 교육현장에서 STEM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도입되고 있는가.
▶강혜련 이사장=연구시범학교는 지난 8월 지정하고 9월에 현장에 뿌려진 만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각 학교에서 지원해 뽑히다 보니 열정과 동기가 있는 곳들이다. 시범학교에 소속된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교사들이 STEAM을 배우기 위해 자생적으로 지역별로 만든 47개 교사연구회가 구심점이 되고 있다. 시범학교들은 매월 한차례 워크숍을 갖고 함께 학습하고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그 안에서 공유와 확산이 일어나는 모습이 매우 긍정적이다.
내년에는 시범학교가 현재의 16곳에서 80곳으로 늘어나는 만큼 재단에서 프로그램 개발을 끊임없이 해줘야 하고 교사연구회 모임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교사연구회는 내년에 150개로 늘릴 계획이다. 교사연수도 중요하다. 재단이 내년초 연수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교사들이 연수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돼 훨씬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잉그램 부관장=미국은 지역마다 수많은 교육구가 있고 교육구마다 프로그램이 다르다보니 STEM이 얼마나 도입되고 있는지 누구도 정확하게 알기가 힘들다. 일리노이주만 해도 교육구가 900여개나 된다. 교육구마다 교과과정과 교육전략을 다르게 짠다. 정확한 숫자는 얘기하기 힘들지만 예는 들 수 있다. 시카고 공립학교 중에는 STEM 고등학교들이 있다. 스스로 STEM 고등학교라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가 내려져 있지는 않고, 일관성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시스템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교사들이 나름대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기관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교육현장에서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지속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 박물관이 전시에 머물지 않고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데, 효과와 장점을 소개하자면.
▶잉그램 부관장=미국의 교육분야 혁신을 위해 MSI는 과학관련 기관으로서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수년전부터 대대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전략적인 우선순위를 정하게 됐다. 특히 교육기능을 크게 늘리고 교육과 전시를 아우르는 기획을 강화했다. 대규모의 전시를 준비하고 설계할 때 교육현장에 있는 분들을 참여시켰다. 이를 통해 전시가 한 단계 확장돼 학습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콘텐츠 역시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학생들이 더 관심을 갖도록 기획했다. 또 박물관에 대해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도록 해 학생들이 최대한 많은 과학관련 경험을 갖게 해주도록 노력한다.
이와 함께 박물관 내 과학진흥센터를 통해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조함으로써 과학교육이 지역사회의 학교, 특히 중학교에서 더 잘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을 둘러볼 때 재미있고 쉽고, 생활과 밀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과학이 연계돼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MSI는 박물관 임직원 스스로가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관람객에게 훌륭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교육기관의 역할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분명히 과학교육에 있어서 박물관 역할의 패러다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박물관 교육부서는 더 많은 관람객을 끌기 위한 수단이었다. 교사교육도 좁은 의미에서만 이뤄졌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우리가 뭘 필요로 하느냐가 아니라, 교사들이 뭘 필요로 하느냐를 질문한다. 지역사회와의 상호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박물관을 더 찾게 하느냐가 아니라 박물관에 올 수 없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할지를 생각하는 식이다.
- 학교뿐만 아니라 박물관이 과학교육의 허브 역할을 하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STEAM을 확산하기 위해 비슷한 계획이 있는지.
▶강혜련 이사장=대학의 자원을 초ㆍ중ㆍ고등학교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미 노스웨스턴대학 등은 대학의 리소스가 초ㆍ중ㆍ고등학교와 연결돼 있어 공대의 실험에 고등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 단절돼 있다. 그래서 내년부터 대학을 초ㆍ중등학교 STEAM 교육에 적극 동참시키는 시도를 하려고 한다. 첨단과학기술 교사연수센터를 지정해 대학의 첨단 연구 현장을 과학교사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학이 STEAM 교육을 위해 스스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진로 비전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 MSI의 STEM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무엇으로 꼽는지.
▶잉그램 부관장=프로그램 중 하나를 꼽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과학교사 대상 교육프로그램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나중에 평가를 한 결과 교사들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교실의 학생들로 잘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략을 잘 짜는 게 매우 중요하다. 교사 교육이라는 한쪽 영역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고,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하나여야 한다.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교실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도 과학을 접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관련, MSI는 시카고 지역 74개 협력기관들과 손잡고 `사이언스클럽'을 만들었다.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들과 손잡고 이들 기관에서 과학 교육과정을 만들어 유지할 수 있도록 박물관이 직원대상 교육을 제공하고 과학관련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고 있다. 방과후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에 과학교육과정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로 취약계층 아이들이 많아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박물관에 올 수 있게 교통수단도 제공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일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4~5년 정도로 길게 진행한다.
이와 함께 고등학생들이 STEM 관련 분야로 커리어를 가질 수 있도록 진로지도를 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학생이 생활하는 영역이 많은데, 모든 생활영역에서 높은 퀄리티의 과학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자 전략이다.
- MSI는 이미 STEM을 실천하고 있는 곳인 만큼 갖고 있는 노하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두 기관간 MOU의 주된 내용과 향후 구체적인 협력계획은.
▶강혜련 이사장=개인적으로 20여년 전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MSI를 가봤을 때는 방문객으로서 전시물만 보고 왔다. 그런데 지난 8월 기관장으로서 가서 박물관 운영 전반에 교육기능에 방점이 찍힌 것을 보고 놀라웠다. 박물관 역할의 패러다임 변화를 목격하고 그 역할에 크게 감동 받았다. 이번 MOU를 통해 가장 기대하는 것은 과학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다. 실제로 가보니 연수프로그램이 고객맞춤형으로 매우 잘 짜여져 있었다. 초등, 중등, 고등 등 학교별로 서로 달리할 뿐만 아니라, 교사 수준에 따라서도 거기에 맞는 수준별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을 벤치마킹하고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 두 번째는 학생들을 위한 러닝랩 부분이다. MSI는 러닝랩이 매우 많아서 실제로 체험형 과학학습이 일어나고 있다. STEAM 교육은 융합인데, 교실에서 하는 교육만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기업들도 할 수 있는 교육기능이 제한적이다. 각 지역사회의 박물관과 과학관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등 벤치마킹할 게 많다. 조속히 아주 긴밀하게 체계를 잡고 로드맵을 만들 계획이다. 매우 기대된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1957년 서울생.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산업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5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해 입학처장, 경력개발센터 원장, 기획처장을 맡았다. 2008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 고등교육분야 정책자문위원, 2010년부터 교과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이사이기도 있다. 지난 5월 과학창의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안드레아 잉그램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 부관장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아동복지 및 인권 담당 변호사이기도 하다. 일리노이주 가정 및 아동담당국장과 전략적 제휴 및 정보책임자을 지냈으며,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의 교육 및 고객서비스 부문을 책임지는 부관장이다. 박물관을 통한 과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와 과학교육 질 향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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