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두에게는 최고의 소식이었다.
닷컴(.com), 닷넷(.net), 그리고 닷오알지(.org)와 같은 최상위도메인(gTLD) 인터넷 주소가 고갈되고 있는 추세에 발맞추어 새로운 도메인이 개발된다니, 희두는 날아갈 듯 기뻤다.
닷비즈(.biz), 닷숍(.shop), 닷인포(.info), 그리고 닷엔지오(.ngo)와 같은 도메인이 물망에 올라 있고, 이 도메인들이 뜬다면 다시 절호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
희두는 그저 인터넷 유엔과 같은 기능을 하는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땅이 고갈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지리적 공간은 유한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 땅은 무한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말도 안돼' 희두는 땡큐, 땡규를 연발하며 텅 빈 사무실을 휘젓고 다녔다.
한때 수십 명이 북적대던 사무실이었지만 지금은 5명 남짓한 사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무실을 돌아볼 때마다 희두는 옛일을 떠올리곤 했다.그러면서 입버릇처럼 내뱉은 말이 기회는 다시 온다, 였다 희두의 자랑은 발이 빠르다는 점이다.
머리 회전도 빠르고, 무엇보다도 자랑할 만한 것은 착상과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는 그 순발력과 기민성이다.
결혼할 때만 해도 그랬다.
대학 시절 수업이 끝나 강의실 문을 나서면서 스쳐갈 듯 만난 여학생에게 다가가 데이트를 신청하고, 사귄다는 소문이 채 퍼지기도 전에 결혼식을 올린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 4학년 봄학기에 결혼식을 올리고, 졸업을 하기 전에 자식까지 보았으니…… 희두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도메인 네임이 상품으로서 기세를 올릴 무렵 희두는 수백 개가 넘는 도메인 네임을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대기업체의 이름과 유명인의 이름도 닷컴으로 등록하여 때를 기다렸다.
1996년과 97년이 희두의 전성시대였다. 희두보다 한 발 늦게 눈을 뜬 대기업과 유명인은 희두에게 거래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기업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기를 원했고, 유명인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자 했다.
그런데 도메인을 희두에게 선점당했으니…… 희두는 여유 만만했고, 곤경에 빠지고 만 것은 오히려 대기업과 유명인이었다.공개적으로 희두의 약삭빠른 행동을 비판할 수도 없었고,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할 수도 없었다.
특히 기업이 그랬다.
기업의 명예에 먹칠을 할까 두려워 희두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호승아, 대박 터졌다.
희두는 다짜고짜로 수화기에다 소리를 질렀다.
"…… 누구세요?" 크지 않은 벤처기업의 셀러리맨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호승은 희두의 목소리를 잘 기억해내지 못했다.
"야 임마, 희두야. 대박 터졌다고……" 대학 졸업 후 희두는 거의 1년 동안 친구들 앞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오지랖 넓기로 유명한 희두의 칩거에 친구들도 먼저 전화를 걸지 못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자식까지 딸린 희두의 생활에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호승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박이라니?" 그날 희두와 함께 몰려 다니던 대학 시절의 친구들이 모처럼 뭉쳤다.
국치도 나왔고, 성배도 얼굴을 내밀었다.
단발에 홈런을 날린 희두의 성공에 찬사를 보냈다.
"스톡 옵션을 제의해 왔으나 거절했어." 희두는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식 지분이 당장 돈 되는 것도 아니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 1년이 넘도록 공밥 먹고 다녔는데 언제까지 기다려? 현금이 최고지." 희두의 홈런 대가는 만만찮은 수준이었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중소기업 하나 정도는 창업할 있는 수준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국치는 침착을 잃지 않았다.
"희두야, 그 돈 얼만지 모르지만 주식투자 어때?" 증권회사에 다니는 국치는 희두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희두는 국치의 제의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취기 어린 눈으로 호승, 국치, 그리고 성배를 일일이 쳐다보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나, 21세기의 봉이 김선달이 될 거야. 사이버스페이스는 땅이야. 광활한 사이버 영토를 내 앞으로 등기해서 세계 최고의 땅부자가 될 거야. 땅부자!" 도메인 네임으로 재미를 본 희두는 벤처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대기업과 거래로 챙긴 거액으로 '땅닷컴'(Ddang.com)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땅장사에 나섰다.
일 년에 한두 건만 거래하면 너댓 명 월급을 주고도 대기업 사장 못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희두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IMF 경제위기로 나라가 들썩거릴 때도 사이버 땅장사는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IMF와 구조조정 덕분에 M&A가 희두의 시장에 불을 질렀다.
머리 좋은 희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M&A가 된 후의 회사의 이름을 등록하기 시작했다.
거액은 아니었지만 만족한 수준에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1998년 경칩(驚蟄), 희두는 테헤란밸리로 입성하던 그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개구리처럼 뛰자는 의미에서 이사 날을 그렇게 정했다.
땅닷컴 소유의 사옥은 아니었으나, 한강이 펼쳐보이는 전망 좋은 고층 빌딩에 사무실을 얻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대지를 활개치는 봄날에는 희두의 사업도 확장 일로에 있었다.
홈페이지 구축과 홈페이지 인테리어에 더하여, 홈페이지 메인터넌스까지 겸하게 됨으로써 희두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땅이 있었고, 집을 짓는 사업체도 있었으며, 실내장식업도 겸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이버건축물 관리업까지 겸하고 있었다.
희두의 명함은 사장에서 회장으로 변해 있었다.
"김국치 대리님이세요? 강희두 회장님 전화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리따운 여비서의 목소리가 증권회사에 다니는 국치의 귓전에 다가왔다.
"나 희두야, 코스닥 시장 상장에 대해 의논 좀 하자." 날씨가 쾌청하여 멀리 북한산의 단풍잎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일에 파묻혀 계절을 느낄 여유마저 없어진 희두는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땅닷컴은 상장하기가 쉽지 않아. 좋은 세월 다 지나갔어. 빨리 방향을 바꿔. 그런 후에 상장을 의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국치는 일년 전 주식투자를 권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우리보다 못한 회사도 상장하여 많은 돈을 버는데 우리 회사가 뭐가 모자라서……" 기분이 상한 희두는 일어섰다.
돌아오면서도 상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사이버 땅장사나 홈페이지 사업은 사양 산업이야, 라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국치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국치의 말처럼 가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지를 뛰놀던 개구리가 겨울잠 자리를 찾을 무렵 사이버땅 거래가 뚝 끊어졌다.
홈페이지 사업도 돈이 되지 않았다.
한 건당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기막힌 홈페이지 모듈이 생기고,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가격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1998년 해를 넘기면서 웬만한 일이면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도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개구리가 동면에 들어가듯 희두의 사업도 동면상태였다. 겨울이 가고 다시 경칩이 왔음에도 개구리는 대지를 향해 뛰지 않았다.
겨울 추위가 하도 심해 모두 동사하고 말았나 보다.
희두는 경칩에 이사한 자신의 택일에 대해 무척이나 후회를 하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본 요꼬하마에서 ICANN 국제회의가 열리고 도메인 확당에 대하 긍정적인 의견이 교류될 무렵 일찍 귀가하여 제방으로 들어갔다.
희두는 닷비즈(.biz), 닷숍(.shop), 닷인포(.info), 그리고 닷엔지오(.ngo)와 같은 도메인을 가지고 혼자서 게임을 시작했다.
옛일을 떠올리며 스스로 이름 붙인'앞말 붙이기 게임'이었다.
킹닷비즈, 킹닷숍, 킹닷인포, 킹닷엔지오 문닷비즈, 문닷숍, 문닷인포, 문닷엔지오 비즈닷비즈, 비즈닷숍, 비즈닷인포, 비즈닷엔지오 러브닷비즈, 러브닷숍, 러브닷인포, 러브닷엔지오 코리아닷비즈, 코리아닷숍, 코리아닷인포, 코리아닷엔지오 스포츠닷비즈, 스포츠닷숍, 스포츠닷인포, 스포츠닷엔지오 …… 희두는 '앞말 붙이기 게임'을 한 음절에서 시작하여 두 음절로 이어갔고, 세 음절, 그리고 네 음절로 늘여갔다.
"네 음절 이상은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져." 앞말 붙이기 게임'은 위력적이었다.
수백 개의 도메인 네임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줄과 칸으로 연결되어 규격을 갖춘 도메인 네임이 수십 장으로 연결되었다.
희두는 '앞말 붙이기 게임'을 그만두고 '땅따먹기 게임'을 시작했다.
잘 팔릴 이름은 금색으로 칠하고, 보통 이름은 은색으로 칠하고, 팔기가 쉽지 않을 이름은 구리색으로 칠했다.
희두는 수십장을 꼼꼼히 색칠해나갔다.
금색과 은색으로 장식된 종이가 늘어나 방안을 가득 매웠다.
희두는 일어서서 종이를 날려보냈다.
방안은 순식간에 금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궁전처럼 변해갔다.
사업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떠나간 직원이 다시 찾아오고,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주문이 쇄도하고 있었다.
북한산의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도 없었고, 한강물도 수정처럼 맑아 보였다. 희두는 수화기를 들어 제2의 도약을 위한 자축연을 열기 위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다니던 벤처기업에서 월급 인상 대신에 조금씩 얹어준 스톡이 효자가 되어 떼부자가 된 호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승아, 대박 한 번 더 터졌다.
호승이 전화를 받자 희두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 일어나세요. 출근해야지……" 들려오는 목소리는 희두가 아니라 아내였다. 웬 잠꼬대는 아침까지 그렇게 심하게 하느냐며 책망하고 있었다.
희두는 번쩍 눈을 떴다.
이른 아침인데도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귓바퀴를 때리고 있었다.
닷컴(.com), 닷넷(.net), 그리고 닷오알지(.org)와 같은 최상위도메인(gTLD) 인터넷 주소가 고갈되고 있는 추세에 발맞추어 새로운 도메인이 개발된다니, 희두는 날아갈 듯 기뻤다.
닷비즈(.biz), 닷숍(.shop), 닷인포(.info), 그리고 닷엔지오(.ngo)와 같은 도메인이 물망에 올라 있고, 이 도메인들이 뜬다면 다시 절호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
희두는 그저 인터넷 유엔과 같은 기능을 하는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땅이 고갈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지리적 공간은 유한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 땅은 무한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말도 안돼' 희두는 땡큐, 땡규를 연발하며 텅 빈 사무실을 휘젓고 다녔다.
한때 수십 명이 북적대던 사무실이었지만 지금은 5명 남짓한 사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무실을 돌아볼 때마다 희두는 옛일을 떠올리곤 했다.그러면서 입버릇처럼 내뱉은 말이 기회는 다시 온다, 였다 희두의 자랑은 발이 빠르다는 점이다.
머리 회전도 빠르고, 무엇보다도 자랑할 만한 것은 착상과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는 그 순발력과 기민성이다.
결혼할 때만 해도 그랬다.
대학 시절 수업이 끝나 강의실 문을 나서면서 스쳐갈 듯 만난 여학생에게 다가가 데이트를 신청하고, 사귄다는 소문이 채 퍼지기도 전에 결혼식을 올린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 4학년 봄학기에 결혼식을 올리고, 졸업을 하기 전에 자식까지 보았으니…… 희두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도메인 네임이 상품으로서 기세를 올릴 무렵 희두는 수백 개가 넘는 도메인 네임을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대기업체의 이름과 유명인의 이름도 닷컴으로 등록하여 때를 기다렸다.
1996년과 97년이 희두의 전성시대였다. 희두보다 한 발 늦게 눈을 뜬 대기업과 유명인은 희두에게 거래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기업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기를 원했고, 유명인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자 했다.
그런데 도메인을 희두에게 선점당했으니…… 희두는 여유 만만했고, 곤경에 빠지고 만 것은 오히려 대기업과 유명인이었다.공개적으로 희두의 약삭빠른 행동을 비판할 수도 없었고,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할 수도 없었다.
특히 기업이 그랬다.
기업의 명예에 먹칠을 할까 두려워 희두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호승아, 대박 터졌다.
희두는 다짜고짜로 수화기에다 소리를 질렀다.
"…… 누구세요?" 크지 않은 벤처기업의 셀러리맨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호승은 희두의 목소리를 잘 기억해내지 못했다.
"야 임마, 희두야. 대박 터졌다고……" 대학 졸업 후 희두는 거의 1년 동안 친구들 앞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오지랖 넓기로 유명한 희두의 칩거에 친구들도 먼저 전화를 걸지 못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자식까지 딸린 희두의 생활에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호승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박이라니?" 그날 희두와 함께 몰려 다니던 대학 시절의 친구들이 모처럼 뭉쳤다.
국치도 나왔고, 성배도 얼굴을 내밀었다.
단발에 홈런을 날린 희두의 성공에 찬사를 보냈다.
"스톡 옵션을 제의해 왔으나 거절했어." 희두는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식 지분이 당장 돈 되는 것도 아니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 1년이 넘도록 공밥 먹고 다녔는데 언제까지 기다려? 현금이 최고지." 희두의 홈런 대가는 만만찮은 수준이었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중소기업 하나 정도는 창업할 있는 수준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국치는 침착을 잃지 않았다.
"희두야, 그 돈 얼만지 모르지만 주식투자 어때?" 증권회사에 다니는 국치는 희두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희두는 국치의 제의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취기 어린 눈으로 호승, 국치, 그리고 성배를 일일이 쳐다보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나, 21세기의 봉이 김선달이 될 거야. 사이버스페이스는 땅이야. 광활한 사이버 영토를 내 앞으로 등기해서 세계 최고의 땅부자가 될 거야. 땅부자!" 도메인 네임으로 재미를 본 희두는 벤처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대기업과 거래로 챙긴 거액으로 '땅닷컴'(Ddang.com)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땅장사에 나섰다.
일 년에 한두 건만 거래하면 너댓 명 월급을 주고도 대기업 사장 못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희두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IMF 경제위기로 나라가 들썩거릴 때도 사이버 땅장사는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IMF와 구조조정 덕분에 M&A가 희두의 시장에 불을 질렀다.
머리 좋은 희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M&A가 된 후의 회사의 이름을 등록하기 시작했다.
거액은 아니었지만 만족한 수준에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1998년 경칩(驚蟄), 희두는 테헤란밸리로 입성하던 그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개구리처럼 뛰자는 의미에서 이사 날을 그렇게 정했다.
땅닷컴 소유의 사옥은 아니었으나, 한강이 펼쳐보이는 전망 좋은 고층 빌딩에 사무실을 얻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대지를 활개치는 봄날에는 희두의 사업도 확장 일로에 있었다.
홈페이지 구축과 홈페이지 인테리어에 더하여, 홈페이지 메인터넌스까지 겸하게 됨으로써 희두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땅이 있었고, 집을 짓는 사업체도 있었으며, 실내장식업도 겸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이버건축물 관리업까지 겸하고 있었다.
희두의 명함은 사장에서 회장으로 변해 있었다.
"김국치 대리님이세요? 강희두 회장님 전화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리따운 여비서의 목소리가 증권회사에 다니는 국치의 귓전에 다가왔다.
"나 희두야, 코스닥 시장 상장에 대해 의논 좀 하자." 날씨가 쾌청하여 멀리 북한산의 단풍잎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일에 파묻혀 계절을 느낄 여유마저 없어진 희두는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땅닷컴은 상장하기가 쉽지 않아. 좋은 세월 다 지나갔어. 빨리 방향을 바꿔. 그런 후에 상장을 의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국치는 일년 전 주식투자를 권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우리보다 못한 회사도 상장하여 많은 돈을 버는데 우리 회사가 뭐가 모자라서……" 기분이 상한 희두는 일어섰다.
돌아오면서도 상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사이버 땅장사나 홈페이지 사업은 사양 산업이야, 라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국치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국치의 말처럼 가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지를 뛰놀던 개구리가 겨울잠 자리를 찾을 무렵 사이버땅 거래가 뚝 끊어졌다.
홈페이지 사업도 돈이 되지 않았다.
한 건당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기막힌 홈페이지 모듈이 생기고,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가격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1998년 해를 넘기면서 웬만한 일이면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도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개구리가 동면에 들어가듯 희두의 사업도 동면상태였다. 겨울이 가고 다시 경칩이 왔음에도 개구리는 대지를 향해 뛰지 않았다.
겨울 추위가 하도 심해 모두 동사하고 말았나 보다.
희두는 경칩에 이사한 자신의 택일에 대해 무척이나 후회를 하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본 요꼬하마에서 ICANN 국제회의가 열리고 도메인 확당에 대하 긍정적인 의견이 교류될 무렵 일찍 귀가하여 제방으로 들어갔다.
희두는 닷비즈(.biz), 닷숍(.shop), 닷인포(.info), 그리고 닷엔지오(.ngo)와 같은 도메인을 가지고 혼자서 게임을 시작했다.
옛일을 떠올리며 스스로 이름 붙인'앞말 붙이기 게임'이었다.
킹닷비즈, 킹닷숍, 킹닷인포, 킹닷엔지오 문닷비즈, 문닷숍, 문닷인포, 문닷엔지오 비즈닷비즈, 비즈닷숍, 비즈닷인포, 비즈닷엔지오 러브닷비즈, 러브닷숍, 러브닷인포, 러브닷엔지오 코리아닷비즈, 코리아닷숍, 코리아닷인포, 코리아닷엔지오 스포츠닷비즈, 스포츠닷숍, 스포츠닷인포, 스포츠닷엔지오 …… 희두는 '앞말 붙이기 게임'을 한 음절에서 시작하여 두 음절로 이어갔고, 세 음절, 그리고 네 음절로 늘여갔다.
"네 음절 이상은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져." 앞말 붙이기 게임'은 위력적이었다.
수백 개의 도메인 네임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줄과 칸으로 연결되어 규격을 갖춘 도메인 네임이 수십 장으로 연결되었다.
희두는 '앞말 붙이기 게임'을 그만두고 '땅따먹기 게임'을 시작했다.
잘 팔릴 이름은 금색으로 칠하고, 보통 이름은 은색으로 칠하고, 팔기가 쉽지 않을 이름은 구리색으로 칠했다.
희두는 수십장을 꼼꼼히 색칠해나갔다.
금색과 은색으로 장식된 종이가 늘어나 방안을 가득 매웠다.
희두는 일어서서 종이를 날려보냈다.
방안은 순식간에 금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궁전처럼 변해갔다.
사업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떠나간 직원이 다시 찾아오고,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주문이 쇄도하고 있었다.
북한산의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도 없었고, 한강물도 수정처럼 맑아 보였다. 희두는 수화기를 들어 제2의 도약을 위한 자축연을 열기 위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다니던 벤처기업에서 월급 인상 대신에 조금씩 얹어준 스톡이 효자가 되어 떼부자가 된 호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승아, 대박 한 번 더 터졌다.
호승이 전화를 받자 희두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 일어나세요. 출근해야지……" 들려오는 목소리는 희두가 아니라 아내였다. 웬 잠꼬대는 아침까지 그렇게 심하게 하느냐며 책망하고 있었다.
희두는 번쩍 눈을 떴다.
이른 아침인데도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귓바퀴를 때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