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입술이 탄다, 타!" 엠스퀘어(MSquare) 캐피털의 두치가 한 모금 들이킨 양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치는 고급 룸살롱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실감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적응은 해 가고 있었다.
오늘도 미스 양이 두치 옆에서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어디서 뽑아 왔는지 사내의 가슴을 녹일 관능미가 몸에 배어 있었다.
입술이 탄다는 두치의 말에 미스 양이 시원한 맥주를 한잔 드세요, 라며 아양을 떤다."입술만 타요? 보세요. 전 속에서 연기가 나잖아요." 두치의 회사에서 벤처 캐피털 심사역으로 일하는 2029세대 원호는 길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재떨이에는 또다시 꽁초가 수북히 쌓였다. 원호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사만 되면 주가가 또다시 수직상승 하겠지?" 돈 맛을 본 두치는 돈에 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돈이 되면 뭐든지 할 것 같았다.
돈이 좋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곳이 룸살롱이었다.
왕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으니…… 여기에다 예쁜 여자까지 있고. 두치는 돈 사냥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냥이 성공만 한다면…… 투자한 벤처기업을 모조리 사냥꾼에게 맡겨 봐?" 흔들어 거품을 일으키면 한 회사에서 10억? 두치는 천억원 대의 재산가가 된 착각에 빠졌다.
두치는 공중에 붕 떠 가는 느낌을 받았다.
몸이 솟아 연기처럼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지금껏 두치는 엔젤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엔젤은 이메일을 타고 두치에게 다가왔으니……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두치 자신의 일이었다."두리두리닷컴이 효자 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두 번째 효자가 될 회사도 있어요?" 두치와 함께 많지 않은 돈을 투자한 원호도 사냥의 전리품을 챙겨 놓고 있었다.
"모두 다야. 한번 띄워보자고! 그리고 정말 멋진 엔젤이었어. 아이스브레이크(IceBreak)는 이름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얼음을 깨뜨린 거야. 인터넷 기업 사냥에서는 후발주자이지만 손정의의 소프트뱅크와 같은 지주회사를 모델로 불같이 성장하는 회사가 우리에게 제휴를 요청했으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벌써 1백개가 넘는 회사를 사냥한 상태라고 그랬지? 한국의 벤처기업 사냥은 이번이 처음이고…… 흔들면 흔들수록 더 많은 거품이 일잖아. 거품처럼 돈도 불어나고!" 아이스브레이크에서 두치에게 전자우편을 보낸 것은 정확하게 열흘 전이었다.
그날은 비온 뒤끝이라 하늘과 땅이 수정처럼 맑았다.
가벼운 걸음으로 회사에 들어선 두치는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전자우편을 열었다.
예기치 않게 아이스브레이크에서 전자우편이 와 있었다.
아이스브레이크? 두치는 서둘러 편지를 열었다.
편지를 읽는 두치의 얼굴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고,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끝도 가늘게 떨렸다.
두리두리닷컴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귀사에서 투자한 회사이더군요.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회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회사의 가치에 비해 주가는 평가절하된 가격입니다.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두리두리닷컴? 한국의 뒷골목을 소개하는 기업, 도심의 뒷골목뿐만 아니라, 시골 동네의 뒷골목을 DB로 구축하여 제공하는 회사, 뜨기만 하면 한국의 풍물을 세계에 팔 수 있다는 것이 이 기업 창업자, 장일세의 꿈이었다.
초기에는 좋았다.
뒷골목 장사꾼들이 십시일반으로 회원으로 가입해주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회원수가 줄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이스브레이크에서 두리두리닷컴을 인수합병하겠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주가가 하늘까지 솟아오르고! 두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금덩어리가 산비탈을 타고 두치 자신에게 굴러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두치는 굴러오는 금덩어리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니 천장 가득히 돈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기회는 이렇게 오는 거구나! 하! 하! 하!" 두치는 쏟아져 내리는 돈을 받으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두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원호를 불렀다.
두리두리닷컴의 주가 동향을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수진이도 불렀다.
그리고 아이스브레이크의 인터넷 기업 사냥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를 내리고는 실리콘밸리에서 돌아온 정도를 만나러 나갔다.
"아이스브레이크 쓸만한 회사야?" 두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국이 사냥의 표적이라고 하더라!" 정도는 두치를 앞지르고 있었다.
두치는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도와 시간을 죽이며 잠시 연막탄을 뿌리다가 사이 앤 사이(Cy&Cy) 카페로 향했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건물은 벽화로 가득하고, 거리에는 꽃으로 물결을 이루는 것 같았다.
두치는 천국의 거리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무뚝뚝하게만 보이던 행인들이 그렇게 친절해 보일 수 없었다.
두치는 거리의 행인에게 악수라도 청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떴어요!" 지나가던 젊은 여자가 두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두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모르는 여자였다. 머쓱해진 두치는 죄송합니다, 라고 한 마디 던지고는 길을 재촉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리 대신 영철이가 두치를 맞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외국인의 주식매수로 주가가 오르고 있어요. 두리두리닷컴 외에도 몇 개 회사가 더 있어요. 인터넷 기업 사냥의 대상 기업이란 루머도 나돌고 있어요." 원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빨리 돌아와! 나한테 중요한 정보가 들어와 있어!" 두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일어섰다.
영철은 커피라도 잔은 비우고 가야지, 라면서 두치를 끌어 앉혔다.
H2P의 프로 게이머 선수가 입원했다는 이야기, 정도와 함께 미국에서 돌아온 진철이가 선수를 업고 병원으로 달리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이야기, 진철과 선수가 가까워지고 선수는 원호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 영철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미리는 정도를 만나러 갔을 거야." 조금 전 정도를 만날 때 미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영철은 몇 번이나 정도, 라고 되뇌면서 씁쓸한 미소를 흘려보냈다.
어두운 그림자가 영철의 얼굴을 스쳤다.
두리두리닷컴의 주가는 며칠째 수직상승하면서 코스닥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주당 1만원 아래로 서서히 무너지던 주가가 며칠 사이에 10만원을 넘기기 시작했다.
현금 5천만원을 투자하고, 5천만원을 스톡옵션으로 받은 두치의 재산은 1주일 사이에 10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급등하는 주가를 바라보며 두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느꼈다.
협상이 결렬되면 주가가 내려갈텐데 두치는 은행가 출신답게 본전이라도, 라면서 벌써 수백 번이나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사이버 증권거래소에 클릭만 하면 되는데……" 그러다 사이버 증권거래소를 열어 매도를 하려고 하면 아이스브레이크의 이메일이 두치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리두리닷컴 사장과 엠스퀘어 사장이 주식을 매도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도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닷컴 사업주와 벤처 캐피털의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주가가 오른다는 소문은 치명적입니다.
사냥감의 심장에 화살이 꽂힐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모두를 위해서요. 일시적 주가상승이 인수합병 협상의 키를 쥐고 있지는 않습니다.
두치는 이번만은 예외를 따르기로 했다.
본전은 반드시 주머니에 감추고 도박을 한다는 철칙을 지키지 않기로 했다.
뜨는 김에 더 크게 떠야지, 라면서 불어난 풍선에 기구를 달고 하늘을 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만은 크게 벌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주식을 사들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두리두리닷컴의 주가가 올라 두치의 재산이 불어나 있을 무렵 미모의 미국인 여성이 두치를 찾았다.
인수합병을 마무리짓기 위한 방한이었다.
쉐런 월러라는 여자 변호사와 함께 브루스 킹이라는 남자 CPA가 동행하고 있었다.
한국의 벤처 인프라는 아시아의 최고입니다, 라면서 한국 인터넷 기업 사냥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원호야, 두리두리닷컴의 장일세 사장에게 전화해 봐!" 두치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원호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원호의 입에서 여보세요, 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전화기가 꺼져 있답니다.
"협상이 진행 중인가 봐! 술이나 마시자!" 폭탄주가 돌아가고, 테헤란밸리의 돈벼락 맞은 벤처 사업가들이 자주 찾는 비밀 룸살롱도 술과 여자 사이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당신 전화받으세요." 조금 전에 눈을 붙였는데 아침이었다.
아내가 전화통을 두치 앞으로 내밀었다.
전화를 받아드니 거친 숨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렸다.
"형, 끝났어!" "뭐? 협상이 다 잘되었다고? "……" "아니, 뭐야?" 두치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자동차를 몰고 테헤란밸리로 달렸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그대로 한 채 원호가 호텔 로비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오늘 재협상을 하기로 약속해 놓고 날라 버렸대요. 사들인 주식은 다 팔아버린 상태이고…… 교묘하게 협상이 성사될 것이라는 루머를 퍼뜨려 주가가 폭등하게 해 놓고 깨버린 겁니다.
어제 하루만에 더블을 쳤잖아요. 돈벼락은 그놈들이 맞았고, 우린 다시 깡통 찼어요." 원호는 두치 앞으로 불쑥 조간 신문을 내밀었다.
신문기사에 일본의 벤처 밸리를 휩쓴 M&A 사기단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유명 지주 회사를 사칭하여 주가를 올려놓은 후 치고 빠지는 전략을 사용하며,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협상을 진행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두치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코스닥 시장의 거품만 보일 뿐이었다.
거품이 두치의 돈을 싣고 날아가고 있었다.
돈을 잡으려 팔을 휘저었으나 바람만 일으킬 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치는 고급 룸살롱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실감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적응은 해 가고 있었다.
오늘도 미스 양이 두치 옆에서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어디서 뽑아 왔는지 사내의 가슴을 녹일 관능미가 몸에 배어 있었다.
입술이 탄다는 두치의 말에 미스 양이 시원한 맥주를 한잔 드세요, 라며 아양을 떤다."입술만 타요? 보세요. 전 속에서 연기가 나잖아요." 두치의 회사에서 벤처 캐피털 심사역으로 일하는 2029세대 원호는 길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재떨이에는 또다시 꽁초가 수북히 쌓였다. 원호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사만 되면 주가가 또다시 수직상승 하겠지?" 돈 맛을 본 두치는 돈에 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돈이 되면 뭐든지 할 것 같았다.
돈이 좋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곳이 룸살롱이었다.
왕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으니…… 여기에다 예쁜 여자까지 있고. 두치는 돈 사냥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냥이 성공만 한다면…… 투자한 벤처기업을 모조리 사냥꾼에게 맡겨 봐?" 흔들어 거품을 일으키면 한 회사에서 10억? 두치는 천억원 대의 재산가가 된 착각에 빠졌다.
두치는 공중에 붕 떠 가는 느낌을 받았다.
몸이 솟아 연기처럼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지금껏 두치는 엔젤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엔젤은 이메일을 타고 두치에게 다가왔으니……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두치 자신의 일이었다."두리두리닷컴이 효자 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두 번째 효자가 될 회사도 있어요?" 두치와 함께 많지 않은 돈을 투자한 원호도 사냥의 전리품을 챙겨 놓고 있었다.
"모두 다야. 한번 띄워보자고! 그리고 정말 멋진 엔젤이었어. 아이스브레이크(IceBreak)는 이름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얼음을 깨뜨린 거야. 인터넷 기업 사냥에서는 후발주자이지만 손정의의 소프트뱅크와 같은 지주회사를 모델로 불같이 성장하는 회사가 우리에게 제휴를 요청했으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벌써 1백개가 넘는 회사를 사냥한 상태라고 그랬지? 한국의 벤처기업 사냥은 이번이 처음이고…… 흔들면 흔들수록 더 많은 거품이 일잖아. 거품처럼 돈도 불어나고!" 아이스브레이크에서 두치에게 전자우편을 보낸 것은 정확하게 열흘 전이었다.
그날은 비온 뒤끝이라 하늘과 땅이 수정처럼 맑았다.
가벼운 걸음으로 회사에 들어선 두치는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전자우편을 열었다.
예기치 않게 아이스브레이크에서 전자우편이 와 있었다.
아이스브레이크? 두치는 서둘러 편지를 열었다.
편지를 읽는 두치의 얼굴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고,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끝도 가늘게 떨렸다.
두리두리닷컴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귀사에서 투자한 회사이더군요.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회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회사의 가치에 비해 주가는 평가절하된 가격입니다.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두리두리닷컴? 한국의 뒷골목을 소개하는 기업, 도심의 뒷골목뿐만 아니라, 시골 동네의 뒷골목을 DB로 구축하여 제공하는 회사, 뜨기만 하면 한국의 풍물을 세계에 팔 수 있다는 것이 이 기업 창업자, 장일세의 꿈이었다.
초기에는 좋았다.
뒷골목 장사꾼들이 십시일반으로 회원으로 가입해주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회원수가 줄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이스브레이크에서 두리두리닷컴을 인수합병하겠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주가가 하늘까지 솟아오르고! 두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금덩어리가 산비탈을 타고 두치 자신에게 굴러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두치는 굴러오는 금덩어리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니 천장 가득히 돈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기회는 이렇게 오는 거구나! 하! 하! 하!" 두치는 쏟아져 내리는 돈을 받으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두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원호를 불렀다.
두리두리닷컴의 주가 동향을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수진이도 불렀다.
그리고 아이스브레이크의 인터넷 기업 사냥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를 내리고는 실리콘밸리에서 돌아온 정도를 만나러 나갔다.
"아이스브레이크 쓸만한 회사야?" 두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국이 사냥의 표적이라고 하더라!" 정도는 두치를 앞지르고 있었다.
두치는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도와 시간을 죽이며 잠시 연막탄을 뿌리다가 사이 앤 사이(Cy&Cy) 카페로 향했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건물은 벽화로 가득하고, 거리에는 꽃으로 물결을 이루는 것 같았다.
두치는 천국의 거리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무뚝뚝하게만 보이던 행인들이 그렇게 친절해 보일 수 없었다.
두치는 거리의 행인에게 악수라도 청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떴어요!" 지나가던 젊은 여자가 두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두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모르는 여자였다. 머쓱해진 두치는 죄송합니다, 라고 한 마디 던지고는 길을 재촉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리 대신 영철이가 두치를 맞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외국인의 주식매수로 주가가 오르고 있어요. 두리두리닷컴 외에도 몇 개 회사가 더 있어요. 인터넷 기업 사냥의 대상 기업이란 루머도 나돌고 있어요." 원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빨리 돌아와! 나한테 중요한 정보가 들어와 있어!" 두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일어섰다.
영철은 커피라도 잔은 비우고 가야지, 라면서 두치를 끌어 앉혔다.
H2P의 프로 게이머 선수가 입원했다는 이야기, 정도와 함께 미국에서 돌아온 진철이가 선수를 업고 병원으로 달리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이야기, 진철과 선수가 가까워지고 선수는 원호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 영철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미리는 정도를 만나러 갔을 거야." 조금 전 정도를 만날 때 미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영철은 몇 번이나 정도, 라고 되뇌면서 씁쓸한 미소를 흘려보냈다.
어두운 그림자가 영철의 얼굴을 스쳤다.
두리두리닷컴의 주가는 며칠째 수직상승하면서 코스닥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주당 1만원 아래로 서서히 무너지던 주가가 며칠 사이에 10만원을 넘기기 시작했다.
현금 5천만원을 투자하고, 5천만원을 스톡옵션으로 받은 두치의 재산은 1주일 사이에 10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급등하는 주가를 바라보며 두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느꼈다.
협상이 결렬되면 주가가 내려갈텐데 두치는 은행가 출신답게 본전이라도, 라면서 벌써 수백 번이나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사이버 증권거래소에 클릭만 하면 되는데……" 그러다 사이버 증권거래소를 열어 매도를 하려고 하면 아이스브레이크의 이메일이 두치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리두리닷컴 사장과 엠스퀘어 사장이 주식을 매도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도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닷컴 사업주와 벤처 캐피털의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주가가 오른다는 소문은 치명적입니다.
사냥감의 심장에 화살이 꽂힐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모두를 위해서요. 일시적 주가상승이 인수합병 협상의 키를 쥐고 있지는 않습니다.
두치는 이번만은 예외를 따르기로 했다.
본전은 반드시 주머니에 감추고 도박을 한다는 철칙을 지키지 않기로 했다.
뜨는 김에 더 크게 떠야지, 라면서 불어난 풍선에 기구를 달고 하늘을 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만은 크게 벌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주식을 사들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두리두리닷컴의 주가가 올라 두치의 재산이 불어나 있을 무렵 미모의 미국인 여성이 두치를 찾았다.
인수합병을 마무리짓기 위한 방한이었다.
쉐런 월러라는 여자 변호사와 함께 브루스 킹이라는 남자 CPA가 동행하고 있었다.
한국의 벤처 인프라는 아시아의 최고입니다, 라면서 한국 인터넷 기업 사냥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원호야, 두리두리닷컴의 장일세 사장에게 전화해 봐!" 두치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원호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원호의 입에서 여보세요, 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전화기가 꺼져 있답니다.
"협상이 진행 중인가 봐! 술이나 마시자!" 폭탄주가 돌아가고, 테헤란밸리의 돈벼락 맞은 벤처 사업가들이 자주 찾는 비밀 룸살롱도 술과 여자 사이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당신 전화받으세요." 조금 전에 눈을 붙였는데 아침이었다.
아내가 전화통을 두치 앞으로 내밀었다.
전화를 받아드니 거친 숨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렸다.
"형, 끝났어!" "뭐? 협상이 다 잘되었다고? "……" "아니, 뭐야?" 두치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자동차를 몰고 테헤란밸리로 달렸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그대로 한 채 원호가 호텔 로비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오늘 재협상을 하기로 약속해 놓고 날라 버렸대요. 사들인 주식은 다 팔아버린 상태이고…… 교묘하게 협상이 성사될 것이라는 루머를 퍼뜨려 주가가 폭등하게 해 놓고 깨버린 겁니다.
어제 하루만에 더블을 쳤잖아요. 돈벼락은 그놈들이 맞았고, 우린 다시 깡통 찼어요." 원호는 두치 앞으로 불쑥 조간 신문을 내밀었다.
신문기사에 일본의 벤처 밸리를 휩쓴 M&A 사기단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유명 지주 회사를 사칭하여 주가를 올려놓은 후 치고 빠지는 전략을 사용하며,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협상을 진행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두치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코스닥 시장의 거품만 보일 뿐이었다.
거품이 두치의 돈을 싣고 날아가고 있었다.
돈을 잡으려 팔을 휘저었으나 바람만 일으킬 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