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이 날 지켜보고 있어." 미리는 벌떡 일어섰다.
사이 앤 사이(Cy&Cy) 카페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녀석의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미리는 긴 한숨을 쉬며 자리에 돌아와 영철 곁에 앉았다.
미리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영철은 미리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불과 며칠 전이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미리는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취미라고는 술밖에 없는 영철에게 그렇게 전망 좋은 곳은 처음이었다.
짙게 깔린 저녁 노을이 한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노을 위로 유람선이 떠가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있고 싶어서 초대한 거야." 한 모금 마신 포도주 잔을 내려놓으며 미리는 영철을 빤히 바라보았다.
"고맙다.
내가 초대해야 하는데……" 영철은 멋쩍게 미리의 시선을 맞았다.
한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지자 이내 어둠이 깔렸다.
강변을 달리는 자동차 불빛이 긴 꼬리를 이어가고 있었다.서울의 야경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반짝거리는 불빛, 그리고 꼬리를 잇는 자동차 행렬. 미리는 그 야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지?" 약혼 후 가끔씩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함께 있고 싶다면서 오늘은 미리가 영철을 끌었다.
밤새 함께 술을 마셔주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리의 체취로 가득했다.
미리는 핸드백을 내려놓지도 않고 영철을 와락 끌어안았다.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면서, 영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영철의 모든 것을 손끝으로 새기려는 듯 확인해 나갔다.
영철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둘이 나눈 사랑의 감미로움에 취해서일까? 미리는 영철의 팔베개에서 살포시 잠이 들었다.
영철은 미리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창에서 새어드는 불빛으로 미리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든 미리의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영철은 마시다 남은 술을 한 모금 마셔보았다.
술맛이 썼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한 모금 마셔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영철은 술잔을 내려놓고 미리를 바라보았다.
미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조용히 다가가 미리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오늘 밤 미리가 영철에게 한 것처럼 손끝으로 미리의 모든 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미리의 볼, 미리의 입술, 미리의 눈, 그리고 미리의 귓불…… 미리의 입술에 입맞춤을 한 후 소파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으악, 제발 날 내버려둬! 제발 좀……" 미리는 제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서 영철을 강하게 밀쳤다.
미리의 미는 힘이 하도 강해 영철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몸을 추스르며 미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미리의 손을 꼭 잡았다.
"미리야, 왜 그래? 악몽을 꾸었구나!" "미안해, 영철아! 악몽이였으면 좋겠어. 난 지금 고문을 당하고 있단 말야! 함께 있던 니가 가고 나면 난 늘 이랬어. 그놈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무서워.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미리는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꼈다.
영철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영철의 손을 잡고 작업실로 안내했다.
미리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에 연결한 후 메일을 열었다.
영철은 같은 주소의 인물에게서 수십통의 편지가 들어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읽어봐!" 미리는 일어서면서 영철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같은 메일을 보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철은 그 중 하나를 골라 편지를 열고 읽어 내려갔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요. 미칠 것만 같아요. 당신의 잠든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늘 함께 있고 싶어요. 영철이 편지를 읽는 동안 미리는 책상 아래에서 박스를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영철에게로 밀쳤다.
"봐, 이것도 그놈에게서 온 편지야." 박스에는 편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언제부터야?" 영철은 미리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화까지 하고 있어. 집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니가 오는 날이면 어떻게 아는지 전화를 하지 않아." "전화까지? 그리고 언제부터냐고?" "그게 뭐가 중요해?" 미리는 올넷 사장 정도와의 기사가 신문에 나간 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싫었다.
그때부터라고 말하면 영철의 정도에 대한 악몽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일 년 전부터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미리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리 대신에 영철이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수화기에서 끈적끈적한 음성이 들렸다.
난 미리씨를 사랑해요, 미치도록요, 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영철은 미리와 함께 그 밤을 보냈다.
소동이 있었고, 미리의 아픔이 영철의 아픔으로 다가왔지만 아름다운 밤이기도 했다.
미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편안하게 잠든 미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잠들었는데 미리가 보이지 않았다.
영철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쏴, 하고 샤워기 소리가 욕실 쪽에서 들렸다.
영철은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짙푸른 초록의 나뭇잎이 아침 햇살을 받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햇살 사이로 하나의 단상이 날아와 영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철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욕실로 달려가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미리를 끌어안았다.
미리의 나신이 영철의 가슴에 안겼다.
영철은 미리를 안은 채 귓속말로 속삭였다. "미리야, 걱정하지 마! 생각이 났어. 내가 해결해 줄께." 영철은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무실 한쪽에 쌓여 있는 주간지에서 기사 하나를 찾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영철이 찾은 곳은 장안에서 유명한 점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산발을 한 박수 영감이 영철을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백발 머리에서 귀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부적을 부탁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물리치고, 여자는 남자를 물리칠 수 있는 부적을요. 싫어하는 사람이 따라붙으면 물리칠 수 있는 부적을 만들어 주세요." 박수 영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철은 귀기어린 얼굴에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반드시 영험한 부적을 만들 것 같았다.
영철은 박수 영감에게서 거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나서 색깔별로 용도가 다른 일곱 가지 무지개 빛의 부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빨강은 증오의 부적 주황은 퇴치의 부적 노랑은 경고의 부적 초록은 저주의 부적 파랑은 병마의 부적 남색은 사고의 부적 보라는 죽음의 부적 돌아오는 길에 미리를 괴롭히는 스토커(stalker)를 물리치기라도 한 듯 즐겁기까지 했다.
그리고 영철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증오의 부적이 통하지 않으면 물리치는 퇴치의 부적을 보내고, 퇴치의 부적으로도 통하지 않으면 경고의 부적을 보내는 거야. 초록은 상대에게 저주를 보내는 부적이고, 파랑은 상대를 병들게 하는 부적, 여기까지 끈질기에 달라붙는 스토커는 없겠지? 지독한 놈은 사고의 부적을 보내도 달라붙을 수도 있을 걸? 그러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적을 보내는 거야." 영철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피니쉬 힘(Finish him)", 이라고 두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흔들었다.
영철은 생각했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란 것이 별 것 아니었다.
스토커도 물리치고 돈도 벌 수 있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미리야, 걱정하지 마! 이제는 다 끝났어." 영철은 미리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사이 앤 사이 카페에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 앞에 미리를 세웠다.
그리고 영철이 운영하는 마니아 클럽을 열었다.
"미리 너를 위해 만든 안티 스토킹(anti-stalking) 클럽이야. 클릭을 해봐." 미리는 영철이 시키는 대로 안티 스토킹 클럽을 열었다.
방이 열리자, "사이버 스토킹에 시달리고 계십니까. 스토커를 물리치는 부적을 보내드립니다.
라는 안내문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이버 스토킹으로 고통받는 네티즌을 위해 부적을 보내주는 클럽을 만들었다.
주문이 쏟아질 거야. 두치 녀석도 투자 제의를 해왔거든. 최고로 영험한 박수 영감이 만든 부적이라 효과가 있을 거야. 아무리 지독한 녀석이라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보라색 부적을 받기 전에 그만둘 거야. 그리고 진짜 부적은 여기에 있어." 영철은 박수 영감이 만든 원본 부적을 미리의 손에 쥐어주고는 미리를 괴롭히는 그 녀석 주소로 빨간 증오의 부적을 띄워보냈다.
사이 앤 사이(Cy&Cy) 카페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녀석의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미리는 긴 한숨을 쉬며 자리에 돌아와 영철 곁에 앉았다.
미리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영철은 미리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불과 며칠 전이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미리는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취미라고는 술밖에 없는 영철에게 그렇게 전망 좋은 곳은 처음이었다.
짙게 깔린 저녁 노을이 한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노을 위로 유람선이 떠가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있고 싶어서 초대한 거야." 한 모금 마신 포도주 잔을 내려놓으며 미리는 영철을 빤히 바라보았다.
"고맙다.
내가 초대해야 하는데……" 영철은 멋쩍게 미리의 시선을 맞았다.
한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지자 이내 어둠이 깔렸다.
강변을 달리는 자동차 불빛이 긴 꼬리를 이어가고 있었다.서울의 야경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반짝거리는 불빛, 그리고 꼬리를 잇는 자동차 행렬. 미리는 그 야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지?" 약혼 후 가끔씩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함께 있고 싶다면서 오늘은 미리가 영철을 끌었다.
밤새 함께 술을 마셔주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리의 체취로 가득했다.
미리는 핸드백을 내려놓지도 않고 영철을 와락 끌어안았다.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면서, 영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영철의 모든 것을 손끝으로 새기려는 듯 확인해 나갔다.
영철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둘이 나눈 사랑의 감미로움에 취해서일까? 미리는 영철의 팔베개에서 살포시 잠이 들었다.
영철은 미리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창에서 새어드는 불빛으로 미리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든 미리의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영철은 마시다 남은 술을 한 모금 마셔보았다.
술맛이 썼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한 모금 마셔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영철은 술잔을 내려놓고 미리를 바라보았다.
미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조용히 다가가 미리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오늘 밤 미리가 영철에게 한 것처럼 손끝으로 미리의 모든 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미리의 볼, 미리의 입술, 미리의 눈, 그리고 미리의 귓불…… 미리의 입술에 입맞춤을 한 후 소파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으악, 제발 날 내버려둬! 제발 좀……" 미리는 제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서 영철을 강하게 밀쳤다.
미리의 미는 힘이 하도 강해 영철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몸을 추스르며 미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미리의 손을 꼭 잡았다.
"미리야, 왜 그래? 악몽을 꾸었구나!" "미안해, 영철아! 악몽이였으면 좋겠어. 난 지금 고문을 당하고 있단 말야! 함께 있던 니가 가고 나면 난 늘 이랬어. 그놈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무서워.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미리는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꼈다.
영철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영철의 손을 잡고 작업실로 안내했다.
미리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에 연결한 후 메일을 열었다.
영철은 같은 주소의 인물에게서 수십통의 편지가 들어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읽어봐!" 미리는 일어서면서 영철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같은 메일을 보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철은 그 중 하나를 골라 편지를 열고 읽어 내려갔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요. 미칠 것만 같아요. 당신의 잠든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늘 함께 있고 싶어요. 영철이 편지를 읽는 동안 미리는 책상 아래에서 박스를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영철에게로 밀쳤다.
"봐, 이것도 그놈에게서 온 편지야." 박스에는 편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언제부터야?" 영철은 미리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화까지 하고 있어. 집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니가 오는 날이면 어떻게 아는지 전화를 하지 않아." "전화까지? 그리고 언제부터냐고?" "그게 뭐가 중요해?" 미리는 올넷 사장 정도와의 기사가 신문에 나간 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싫었다.
그때부터라고 말하면 영철의 정도에 대한 악몽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일 년 전부터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미리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리 대신에 영철이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수화기에서 끈적끈적한 음성이 들렸다.
난 미리씨를 사랑해요, 미치도록요, 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영철은 미리와 함께 그 밤을 보냈다.
소동이 있었고, 미리의 아픔이 영철의 아픔으로 다가왔지만 아름다운 밤이기도 했다.
미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편안하게 잠든 미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잠들었는데 미리가 보이지 않았다.
영철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쏴, 하고 샤워기 소리가 욕실 쪽에서 들렸다.
영철은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짙푸른 초록의 나뭇잎이 아침 햇살을 받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햇살 사이로 하나의 단상이 날아와 영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철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욕실로 달려가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미리를 끌어안았다.
미리의 나신이 영철의 가슴에 안겼다.
영철은 미리를 안은 채 귓속말로 속삭였다. "미리야, 걱정하지 마! 생각이 났어. 내가 해결해 줄께." 영철은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무실 한쪽에 쌓여 있는 주간지에서 기사 하나를 찾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영철이 찾은 곳은 장안에서 유명한 점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산발을 한 박수 영감이 영철을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백발 머리에서 귀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부적을 부탁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물리치고, 여자는 남자를 물리칠 수 있는 부적을요. 싫어하는 사람이 따라붙으면 물리칠 수 있는 부적을 만들어 주세요." 박수 영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철은 귀기어린 얼굴에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반드시 영험한 부적을 만들 것 같았다.
영철은 박수 영감에게서 거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나서 색깔별로 용도가 다른 일곱 가지 무지개 빛의 부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빨강은 증오의 부적 주황은 퇴치의 부적 노랑은 경고의 부적 초록은 저주의 부적 파랑은 병마의 부적 남색은 사고의 부적 보라는 죽음의 부적 돌아오는 길에 미리를 괴롭히는 스토커(stalker)를 물리치기라도 한 듯 즐겁기까지 했다.
그리고 영철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증오의 부적이 통하지 않으면 물리치는 퇴치의 부적을 보내고, 퇴치의 부적으로도 통하지 않으면 경고의 부적을 보내는 거야. 초록은 상대에게 저주를 보내는 부적이고, 파랑은 상대를 병들게 하는 부적, 여기까지 끈질기에 달라붙는 스토커는 없겠지? 지독한 놈은 사고의 부적을 보내도 달라붙을 수도 있을 걸? 그러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적을 보내는 거야." 영철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피니쉬 힘(Finish him)", 이라고 두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흔들었다.
영철은 생각했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란 것이 별 것 아니었다.
스토커도 물리치고 돈도 벌 수 있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미리야, 걱정하지 마! 이제는 다 끝났어." 영철은 미리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사이 앤 사이 카페에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 앞에 미리를 세웠다.
그리고 영철이 운영하는 마니아 클럽을 열었다.
"미리 너를 위해 만든 안티 스토킹(anti-stalking) 클럽이야. 클릭을 해봐." 미리는 영철이 시키는 대로 안티 스토킹 클럽을 열었다.
방이 열리자, "사이버 스토킹에 시달리고 계십니까. 스토커를 물리치는 부적을 보내드립니다.
라는 안내문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이버 스토킹으로 고통받는 네티즌을 위해 부적을 보내주는 클럽을 만들었다.
주문이 쏟아질 거야. 두치 녀석도 투자 제의를 해왔거든. 최고로 영험한 박수 영감이 만든 부적이라 효과가 있을 거야. 아무리 지독한 녀석이라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보라색 부적을 받기 전에 그만둘 거야. 그리고 진짜 부적은 여기에 있어." 영철은 박수 영감이 만든 원본 부적을 미리의 손에 쥐어주고는 미리를 괴롭히는 그 녀석 주소로 빨간 증오의 부적을 띄워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