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아침이었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다.
땅에 발이 닫지 않고 살짝 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영철은 휘파람을 불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마니아 클럽이 화면에 떴다.영철은 흐뭇한 표정으로 화면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마니아 스퀘어(Mania Square)를 열었다.
마니아 스퀘어에는 예상대로 수십 건의 편지가 올라와 있었다.
시작할 때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열 건도 안되는 편지가 왔지만 지금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음주 마니아 모임도 자라나 스스로 굴러가고 있고, 안티 스토킹 클럽도 의외로 반응이 괜찮은걸." 영철은 중얼거리며 내용을 살펴보았다.
음주 마니아들의 술타령이 가장 많았다.
사이버 스토커를 물리치는 부적의 효험에 관한 내용도 한 두건 실려 있었다.
영철의 시선은 한 자극적인 제목에 시선이 멎었다.
"셀포유(Sell4U) 부도!?" 영철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눈을 감았다.
"테헤란밸리에서 최고로 성공한 도대박 사장이 운영하는 사이버 백화점?" 사실이라면 대단한 뉴스였다. 영철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었다.길지 않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도사장의 행적이나 부도 사실이 구체적이어서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영철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T밸리 최고의 스타, 도대박 사장이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름처럼 대박을 맞은 후로 가정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금을 많이 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고급 룸살롱에서 도대박 사장 모르는 마담 없다더군요. 부인과 이혼한 후 허리가 꺾였다던데 설상가상으로 자금줄이 꽉 막혔답니다.
거래처에서 돌아온 5억짜리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를 맞았다는군요. 참으로 안됐습니다.
사실이지 도대박의 사생활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많은 돈을 번 386세대답게 가정과 사업을 철저히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가정을 공개하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룸살롱을 드나들며 돈을 물 쓰듯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몇이 없었고, 부인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영철은 두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두치야, 셀포유의 주식을 가지고 있지?" "응, 근데 왜?" "빨리 팔아! 도대박이가 부도를 맞았데. 내게 메일이 와 있는데 한번 살펴봐! 그리고 알아서 대처해라!" 영철은 두치에게 편지를 전송하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박의 셀포유는 불야성이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 사이버 백화점이 돌아가고, 순익을 분당 얼마로 계산할 정도로 대단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사이버 유통구조 혁명의 산실이라고 할 정도로 성공을 거듭한 장본인이었다.
"짜씩, 까불더니……" 영철은 중얼거리며, 코스닥 시장의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열었다.
개장한 지 10분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셀포유의 주가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코스닥 시장을 확인한 후 마니아 스퀘어에 있는 그 문제의 편지를 지워버렸다.
"영철아, 고맙다.
통화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두치가 영철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한 번 더 꼬일 뻔했는데 니 덕에 살았다.
두치는 아이스브레이크(IceBreak) 고문 변호사를 가장한 미국인의 사기극에 걸려 세상을 다 얻은 듯 흥청대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치는 그 후로 인터넷 기업을 사냥하는 지주회사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
표적 대상이던 두리두리닷컴의 장일세 사장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사업을 거의 포기한 상태이고…… 두치는 두리두리에 투자한 돈을 몽땅 날릴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움직임이 없던데?" "친한 놈, 아니 나와 거래 관계가 있는 몇 놈에게만 은밀히 알려줬어. 곧 난리가 날거야." 두치의 말은 사실이었다.
인터넷 증권 정보 사이트에 셀포유 부도설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팔려는 투자자의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빅 뉴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도대박 사장은 부인하지만 사실인 것 같다는 추측 기사도 한 몫을 장식하고 있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있었다.
주당 20만원이 넘던 주가는 부도 기사가 나가자 하한가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증권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어디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다는 내용도 실려 있었다.
"휴지 조각이 될 뻔했어." 두치와 영철의 눈이 마주쳤다.
두치는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한 사실이 믿기지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니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 그래, 손해본 건 없어? 영철의 물음에 두치는 말없이 고개만 가로 저었다.
"문제는 거래처야. 셀포유 주식을 가진 거래처가 있으면 연쇄 부도를 맞을 수 있거든." 두치는 생각났다는 듯 휴대폰으로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그만두었다.
"벌써 셀포유 사건으로 코스닥 시장에 난리가 났는데 지금 연락해봤자 도움이 되겠어?" 도대박이가 안됐다, 면서 두치는 영철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시계를 보니 점심 시간이었다.
영철도 두치의 뒤를 따랐다.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웬 사내가 두치와 영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앞으로 내민 신분증을 보니 경찰이었다.
둘은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경찰서로 함께 가 주셔야 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자 경찰 몇 명이 더 달려와 영철과 두치의 팔짱을 끼고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입니까?" 영철은 두치를 힐끔 쳐다보고는 경찰을 향해 말했다.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일에 대해 조사를 하고자 합니다.
"허위사실이라뇨?" 두치가 거들었다.
"모르십니까? 지금 코스닥 시장이 난리잖아요?" "허위사실? 그러면 셀포유 부도가 사실이 아니란 말입니까?" 영철은 믿을 수가 없었다.
경찰은 역시 그랬었군요, 라면서 영철과 두치를 범인 취급하고 있었다.
경찰은 수갑을 채울 수도 있지만 영장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면서 협박조로 말하고 있었다.
영철은 불안하기는 했지만 경찰의 말을 백 퍼센트 믿을 수도 없었다.
셀포유의 로비로 경찰이 도대박의 편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셀포유가 무너질 정도로 코스닥 시장의 체질 약화를 우려한 기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두치와 내가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에 여기에 이르자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경찰의 안내로 조사실로 들어섰다.
창문이라곤 하나도 없는 밀폐된 장소에 책상과 전화기 하나만 놓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두치가 없었다.
영철은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끄집어내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해 보았지만 경찰서에 끌려올 정도로 나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재떨이에는 영철이 피운 꽁초로 가득찼다.
노크도 없이 한 사내가 불쑥 들어섰다.
단단한 체구였다. 두치와 영철을 연행한 경찰이 뒤따라 조사실로 들어섰다.
경찰 옆에는 초췌한 모습의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단단한 체구의 사내는 영철을 쏘아보았다.
"일단 귀가하도록 하십시오. 범인은 이 사람이었습니다.
확인하지 않고 사실을 전파한 사장님도 완전한 무혐의는 아닙니다.
영철은 경찰 옆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문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음주 마니아 회원으로서 영철에게는 고객이었다.
선량한 셀러리맨이기는 하지만 자제력이 부족하여 말썽을 일으키곤 하던…… 그 친구는 아직 취해 있었다.
영철은 다가가 그 친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사내는 미안해요, 라면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울음 섞인 음성으로 영철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음주 마니아 모임이 있은 후 그랬나 봅니다.
술이 취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셀포유 주식을 샀다가 손해를 좀 봤거든요. 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사장이 방탕한 생활을 하고, 이혼까지 했다는 소문을 듣고 흥분을 했나 봅니다.
도사장이 이혼한 그 여자는 제 친구입니다.
남다른 친구 사이였어요." 경찰서에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두치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 출근 때와는 달리 구두 밑창에 본드를 붙인 듯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하늘을 보니 비라도 올 듯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제길, 한바탕 비라도 내렸으면……" 영철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발견하고는 구둣발로 찼다.
돌멩이가 날아간 그 자리에 한 사내가 쪼그리고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두치였다. 담뱃불을 길바닥에 비벼 끄고 있었다.
영철이 다가가자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다 들킨 사람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딴청을 부렸다.
"벌겋게 취한 그 녀석이 내게 귀를 빌려 달라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 손해를 봤습니까? 한번 더 취하면 떼돈 버는 정보를 올려놓겠습니다.
두치는 죄 없는 사람을 불러 놓고 택시 값도 주지 않는다, 면서 투덜거렸다.
영철의 귀에는 두치의 너스레가 들리지 않았다.
우연히 엿듣게 된 두치의 통화 내용이 귓전에 맴돌 뿐이었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다.
땅에 발이 닫지 않고 살짝 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영철은 휘파람을 불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마니아 클럽이 화면에 떴다.영철은 흐뭇한 표정으로 화면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마니아 스퀘어(Mania Square)를 열었다.
마니아 스퀘어에는 예상대로 수십 건의 편지가 올라와 있었다.
시작할 때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열 건도 안되는 편지가 왔지만 지금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음주 마니아 모임도 자라나 스스로 굴러가고 있고, 안티 스토킹 클럽도 의외로 반응이 괜찮은걸." 영철은 중얼거리며 내용을 살펴보았다.
음주 마니아들의 술타령이 가장 많았다.
사이버 스토커를 물리치는 부적의 효험에 관한 내용도 한 두건 실려 있었다.
영철의 시선은 한 자극적인 제목에 시선이 멎었다.
"셀포유(Sell4U) 부도!?" 영철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눈을 감았다.
"테헤란밸리에서 최고로 성공한 도대박 사장이 운영하는 사이버 백화점?" 사실이라면 대단한 뉴스였다. 영철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었다.길지 않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도사장의 행적이나 부도 사실이 구체적이어서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영철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T밸리 최고의 스타, 도대박 사장이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름처럼 대박을 맞은 후로 가정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금을 많이 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고급 룸살롱에서 도대박 사장 모르는 마담 없다더군요. 부인과 이혼한 후 허리가 꺾였다던데 설상가상으로 자금줄이 꽉 막혔답니다.
거래처에서 돌아온 5억짜리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를 맞았다는군요. 참으로 안됐습니다.
사실이지 도대박의 사생활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많은 돈을 번 386세대답게 가정과 사업을 철저히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가정을 공개하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룸살롱을 드나들며 돈을 물 쓰듯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몇이 없었고, 부인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영철은 두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두치야, 셀포유의 주식을 가지고 있지?" "응, 근데 왜?" "빨리 팔아! 도대박이가 부도를 맞았데. 내게 메일이 와 있는데 한번 살펴봐! 그리고 알아서 대처해라!" 영철은 두치에게 편지를 전송하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박의 셀포유는 불야성이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 사이버 백화점이 돌아가고, 순익을 분당 얼마로 계산할 정도로 대단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사이버 유통구조 혁명의 산실이라고 할 정도로 성공을 거듭한 장본인이었다.
"짜씩, 까불더니……" 영철은 중얼거리며, 코스닥 시장의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열었다.
개장한 지 10분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셀포유의 주가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코스닥 시장을 확인한 후 마니아 스퀘어에 있는 그 문제의 편지를 지워버렸다.
"영철아, 고맙다.
통화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두치가 영철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한 번 더 꼬일 뻔했는데 니 덕에 살았다.
두치는 아이스브레이크(IceBreak) 고문 변호사를 가장한 미국인의 사기극에 걸려 세상을 다 얻은 듯 흥청대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치는 그 후로 인터넷 기업을 사냥하는 지주회사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
표적 대상이던 두리두리닷컴의 장일세 사장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사업을 거의 포기한 상태이고…… 두치는 두리두리에 투자한 돈을 몽땅 날릴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움직임이 없던데?" "친한 놈, 아니 나와 거래 관계가 있는 몇 놈에게만 은밀히 알려줬어. 곧 난리가 날거야." 두치의 말은 사실이었다.
인터넷 증권 정보 사이트에 셀포유 부도설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팔려는 투자자의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빅 뉴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도대박 사장은 부인하지만 사실인 것 같다는 추측 기사도 한 몫을 장식하고 있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있었다.
주당 20만원이 넘던 주가는 부도 기사가 나가자 하한가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증권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어디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다는 내용도 실려 있었다.
"휴지 조각이 될 뻔했어." 두치와 영철의 눈이 마주쳤다.
두치는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한 사실이 믿기지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니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 그래, 손해본 건 없어? 영철의 물음에 두치는 말없이 고개만 가로 저었다.
"문제는 거래처야. 셀포유 주식을 가진 거래처가 있으면 연쇄 부도를 맞을 수 있거든." 두치는 생각났다는 듯 휴대폰으로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그만두었다.
"벌써 셀포유 사건으로 코스닥 시장에 난리가 났는데 지금 연락해봤자 도움이 되겠어?" 도대박이가 안됐다, 면서 두치는 영철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시계를 보니 점심 시간이었다.
영철도 두치의 뒤를 따랐다.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웬 사내가 두치와 영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앞으로 내민 신분증을 보니 경찰이었다.
둘은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경찰서로 함께 가 주셔야 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자 경찰 몇 명이 더 달려와 영철과 두치의 팔짱을 끼고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입니까?" 영철은 두치를 힐끔 쳐다보고는 경찰을 향해 말했다.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일에 대해 조사를 하고자 합니다.
"허위사실이라뇨?" 두치가 거들었다.
"모르십니까? 지금 코스닥 시장이 난리잖아요?" "허위사실? 그러면 셀포유 부도가 사실이 아니란 말입니까?" 영철은 믿을 수가 없었다.
경찰은 역시 그랬었군요, 라면서 영철과 두치를 범인 취급하고 있었다.
경찰은 수갑을 채울 수도 있지만 영장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면서 협박조로 말하고 있었다.
영철은 불안하기는 했지만 경찰의 말을 백 퍼센트 믿을 수도 없었다.
셀포유의 로비로 경찰이 도대박의 편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셀포유가 무너질 정도로 코스닥 시장의 체질 약화를 우려한 기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두치와 내가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에 여기에 이르자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경찰의 안내로 조사실로 들어섰다.
창문이라곤 하나도 없는 밀폐된 장소에 책상과 전화기 하나만 놓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두치가 없었다.
영철은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끄집어내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해 보았지만 경찰서에 끌려올 정도로 나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재떨이에는 영철이 피운 꽁초로 가득찼다.
노크도 없이 한 사내가 불쑥 들어섰다.
단단한 체구였다. 두치와 영철을 연행한 경찰이 뒤따라 조사실로 들어섰다.
경찰 옆에는 초췌한 모습의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단단한 체구의 사내는 영철을 쏘아보았다.
"일단 귀가하도록 하십시오. 범인은 이 사람이었습니다.
확인하지 않고 사실을 전파한 사장님도 완전한 무혐의는 아닙니다.
영철은 경찰 옆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문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음주 마니아 회원으로서 영철에게는 고객이었다.
선량한 셀러리맨이기는 하지만 자제력이 부족하여 말썽을 일으키곤 하던…… 그 친구는 아직 취해 있었다.
영철은 다가가 그 친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사내는 미안해요, 라면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울음 섞인 음성으로 영철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음주 마니아 모임이 있은 후 그랬나 봅니다.
술이 취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셀포유 주식을 샀다가 손해를 좀 봤거든요. 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사장이 방탕한 생활을 하고, 이혼까지 했다는 소문을 듣고 흥분을 했나 봅니다.
도사장이 이혼한 그 여자는 제 친구입니다.
남다른 친구 사이였어요." 경찰서에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두치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 출근 때와는 달리 구두 밑창에 본드를 붙인 듯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하늘을 보니 비라도 올 듯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제길, 한바탕 비라도 내렸으면……" 영철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발견하고는 구둣발로 찼다.
돌멩이가 날아간 그 자리에 한 사내가 쪼그리고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두치였다. 담뱃불을 길바닥에 비벼 끄고 있었다.
영철이 다가가자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다 들킨 사람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딴청을 부렸다.
"벌겋게 취한 그 녀석이 내게 귀를 빌려 달라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 손해를 봤습니까? 한번 더 취하면 떼돈 버는 정보를 올려놓겠습니다.
두치는 죄 없는 사람을 불러 놓고 택시 값도 주지 않는다, 면서 투덜거렸다.
영철의 귀에는 두치의 너스레가 들리지 않았다.
우연히 엿듣게 된 두치의 통화 내용이 귓전에 맴돌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