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서는 24시간 편의점이 전자상거래의 첨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프라인의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을 결합시킨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길거리 정보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IT기술로 진화하는 일본식 네트워크 편의점을 취재했다.
도쿄 고테마쪼의 한 닷컴회사 신입사원인 시미즈 유키코(24, e코퍼레이션 재팬 직원). 게이오대학 시절부터 웹서핑 마니아였던 시미즈에게 이제 온라인 쇼핑은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흔히 벤처회사 직원들이 그렇듯 일중독에 걸려 밤낮을 바꿔 살다보니물건을 주문해 놓고도 배달받기가 갑갑해진 것. 택배직원이 빈 집을 두드리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얼마 전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 주문은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업체가 온라인에 개설한 쇼핑포털에서 하고, 물건은 집 근처 매장에서 찾아가면 된다. 세븐드림닷컴이나 패미마닷컴에 가면 30평 안팍의 오프라인 매장에는 진열해 놓을 수 없는 신간서적부터 잡지, 비디오, 음악 CD, 심지어는 여행티켓이나 보험상품까지 구비해 놓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효도선물로 안마기를 주문해 놨어요. 언제든 집 근처 편의점에 들어서 찾아가면 되니까 택배 걱정 안 해도 되죠. 대금지불도 미리 할 필요 없구요.
◆ 기차표 예매부터 e뱅킹까지, 편의점 하나면 충분하다.
요즘 일본에서는 편의점을 이용한 전자상거래(EC)가 핫 이슈다. 시미즈처럼 쇼핑을 위한 자투리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게 인터넷 쇼핑몰 결제대행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좀더 들여다 보면 결재대행 서비스는 빙산의 일각이다. 편의점 EC의 핵심은 올 가을부터 편의점에 들어서기 시작한 이른바 멀티미디어 키오스크(Multimedia Kiosk). PC가 아니라 자판기처럼 생긴 이 단말기를 이용하면 집에 PC가 없는 사람도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칸센으로 북해도까지 겨울여행을 하고 싶다면 한밤중에도 1분만에 티켓을 살 수 있다.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필요사항을 입력하고 단말기가 발행하는 신청확인서와 함께 편의점직원에게 대금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독신 샐러리맨이나 맞벌이 주부에겐 인감증명이나 호적등본 신청 같은 공공서비스가 호응이 높다. 가족나들이 가서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있다면 고화질 프린터로 e포토 서비스도 가능하다. 동전만 넣으면 게임이나 MP3파일 같은 디지털 콘텐츠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경기장입장권, 자동차 부품, 세탁물 배달, 심지어 시간제로 아이를 돌봐줄 모보 파견 같은 생활도우미 서비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 편의점과 전자상거래, 찹살궁합
이처럼 방대한 콘텐츠를 편의점업체가 혼자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제조업체는 물론 다양한 유무선 콘텐츠 제공업체와 윈윈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편의점 연구가 가와베 노부오 와세다대 교수는 이처럼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일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오프라인에 매장을 가진 편의점업계와 사이버 상의 e소매상들은 오히려 대립관계다. 도대체 왜 일본에서는편의점과 전자상거래가 찹살궁합일까.
첫째,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편의점 왕국이다. 24시간 365일 영업하는 체인점이 일본 전역에 4만 곳이 넘는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지난 74년 5월 도쿄의 고토구(區)에 첫 매장을 개설한 후 2000년 12월 현재 점포수가 8200개로 불어났다. 로손은 7000개, 패밀리 마트도 6000개를 웃돈다. 일본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인 다이에의 점포수가 300여개인 것만 봐도 편의점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철도역이 6100개, 은행은 출장소까지 합쳐봐야 1만여개, 우체국도 2만 4700개에 불과하다. 그러니 총무청 통계로 500미터에 하나 꼴이라는 편의점이 사회 인프라라는 말이 나올 만 하다.
둘째, 편의점은 유통업계 중에서도 IT혁명에 대한 대응이 가장 빨랐다. 바코드는 기본이고 본부와 점포 사이에 위성통신회선과 대용량의 전화회선에 의한 통신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체인점들이 많다. 비오는 날, 눈오는 날, 맑은 날 진열대의 상품이 바뀔 정도로 고객 DB 마케팅과 CRM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셋째 편의점은 배송과 대금지불이 안전하고 편리하다. 인터뷰를 가면 명함에 e메일 주소를 새겨넣고 다니는 대학교수가 드물 정도로 일본인들은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에 예민하다. 자연히 온라인 상의 신용카드 결제에 대해서도 심리적인 저항감이 클 수 밖에 없다. 편의점을 물류센터로 이용하면 이 모든 걸림돌들이 치워진다.
이같은 이유들 때문에 일본의 전통적인 편의점은 EC의 거점으로 한 발 먼저 변신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사업 진출을 원하는 오프라인의 대기업은 물론 수익모델이 없어 고민하는 온라인상점들이 편의점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 것이다.
◆ 막오른 편의점 전쟁
지금 일본에서는 편의점 업계 빅3업체인 세븐일레븐재팬, 로손, 패밀리마트가 EC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세븐일레븐 재팬의 경우 올초 자본금 50억엔으로 EC 전위부대인 세븐드림닷컴을 설립했다. 세븐드림 진영에는 NEC, 소니, 노무라종합연구소, 미쓰이물산을 비롯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모여 이름 그대로 드림팀을 이뤘다. 알고 보면 세븐일레븐 저팬의 모회사인 이토요카도 그룹이 이들의 전략지휘본부다. 지난 7월 1일부터 홈페이지(www.7dream.com)를 개설했고, 내년봄까지는 전국 8200개 매장에 멀티미디어 키오스크를 보급할 계획이다.
2위업체 로손은 세븐일레븐보다도 먼저 EC에 눈을 돌려 지난 98년부터 롯피(Loppi)라는 이름의 정보단말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롯피는 특히 테마파크와 스키장 등 국내외 여행상품을 할인가격으로 취급해 인기를 끌었다. 로손의 롯피를 이용한 전자상거래 매출액이 98년 일본 EC매출액 650억엔의 3분의 2를 차지했을 정도. 자신감을 얻은 로손은 @LAWSON을 설립, CD 및 DVD 소프트웨어 등으로 아이템을 늘려가며 EC시장에서만은 세븐일레븐을 누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토추상사계의 패밀리마트도 중견업체들인 서클케이, 선크스앤어소시에이츠, 미니스톱, 스리에프 등과 전자상거래 편의점연합을 결성, 지난 4월 공동출자회사 패미마닷컴을 출범시켰다. 그밖에 AM/PM, 산쿠스, 미니스톱, 데일리야마자키 등도 앞다퉈 EC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제 편의점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머지 않아 가정의 PC와 매장의 멀티미디어 키오스크, 그리고 휴대전화 같은 정보가전으로도 결재가 가능해 진다. 그렇게 되면 편의점은 길거리의 e 뱅킹 e쇼핑 그리고 e엔터테인먼트 센터로 일본식 길거리 정보문화를 만들어갈 전망이다.
<이선기기자>
도쿄 고테마쪼의 한 닷컴회사 신입사원인 시미즈 유키코(24, e코퍼레이션 재팬 직원). 게이오대학 시절부터 웹서핑 마니아였던 시미즈에게 이제 온라인 쇼핑은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흔히 벤처회사 직원들이 그렇듯 일중독에 걸려 밤낮을 바꿔 살다보니물건을 주문해 놓고도 배달받기가 갑갑해진 것. 택배직원이 빈 집을 두드리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얼마 전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 주문은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업체가 온라인에 개설한 쇼핑포털에서 하고, 물건은 집 근처 매장에서 찾아가면 된다. 세븐드림닷컴이나 패미마닷컴에 가면 30평 안팍의 오프라인 매장에는 진열해 놓을 수 없는 신간서적부터 잡지, 비디오, 음악 CD, 심지어는 여행티켓이나 보험상품까지 구비해 놓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효도선물로 안마기를 주문해 놨어요. 언제든 집 근처 편의점에 들어서 찾아가면 되니까 택배 걱정 안 해도 되죠. 대금지불도 미리 할 필요 없구요.
◆ 기차표 예매부터 e뱅킹까지, 편의점 하나면 충분하다.
요즘 일본에서는 편의점을 이용한 전자상거래(EC)가 핫 이슈다. 시미즈처럼 쇼핑을 위한 자투리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게 인터넷 쇼핑몰 결제대행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좀더 들여다 보면 결재대행 서비스는 빙산의 일각이다. 편의점 EC의 핵심은 올 가을부터 편의점에 들어서기 시작한 이른바 멀티미디어 키오스크(Multimedia Kiosk). PC가 아니라 자판기처럼 생긴 이 단말기를 이용하면 집에 PC가 없는 사람도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칸센으로 북해도까지 겨울여행을 하고 싶다면 한밤중에도 1분만에 티켓을 살 수 있다.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필요사항을 입력하고 단말기가 발행하는 신청확인서와 함께 편의점직원에게 대금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독신 샐러리맨이나 맞벌이 주부에겐 인감증명이나 호적등본 신청 같은 공공서비스가 호응이 높다. 가족나들이 가서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있다면 고화질 프린터로 e포토 서비스도 가능하다. 동전만 넣으면 게임이나 MP3파일 같은 디지털 콘텐츠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경기장입장권, 자동차 부품, 세탁물 배달, 심지어 시간제로 아이를 돌봐줄 모보 파견 같은 생활도우미 서비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 편의점과 전자상거래, 찹살궁합
이처럼 방대한 콘텐츠를 편의점업체가 혼자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제조업체는 물론 다양한 유무선 콘텐츠 제공업체와 윈윈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편의점 연구가 가와베 노부오 와세다대 교수는 이처럼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일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오프라인에 매장을 가진 편의점업계와 사이버 상의 e소매상들은 오히려 대립관계다. 도대체 왜 일본에서는편의점과 전자상거래가 찹살궁합일까.
첫째,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편의점 왕국이다. 24시간 365일 영업하는 체인점이 일본 전역에 4만 곳이 넘는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지난 74년 5월 도쿄의 고토구(區)에 첫 매장을 개설한 후 2000년 12월 현재 점포수가 8200개로 불어났다. 로손은 7000개, 패밀리 마트도 6000개를 웃돈다. 일본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인 다이에의 점포수가 300여개인 것만 봐도 편의점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철도역이 6100개, 은행은 출장소까지 합쳐봐야 1만여개, 우체국도 2만 4700개에 불과하다. 그러니 총무청 통계로 500미터에 하나 꼴이라는 편의점이 사회 인프라라는 말이 나올 만 하다.
둘째, 편의점은 유통업계 중에서도 IT혁명에 대한 대응이 가장 빨랐다. 바코드는 기본이고 본부와 점포 사이에 위성통신회선과 대용량의 전화회선에 의한 통신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체인점들이 많다. 비오는 날, 눈오는 날, 맑은 날 진열대의 상품이 바뀔 정도로 고객 DB 마케팅과 CRM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셋째 편의점은 배송과 대금지불이 안전하고 편리하다. 인터뷰를 가면 명함에 e메일 주소를 새겨넣고 다니는 대학교수가 드물 정도로 일본인들은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에 예민하다. 자연히 온라인 상의 신용카드 결제에 대해서도 심리적인 저항감이 클 수 밖에 없다. 편의점을 물류센터로 이용하면 이 모든 걸림돌들이 치워진다.
이같은 이유들 때문에 일본의 전통적인 편의점은 EC의 거점으로 한 발 먼저 변신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사업 진출을 원하는 오프라인의 대기업은 물론 수익모델이 없어 고민하는 온라인상점들이 편의점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 것이다.
◆ 막오른 편의점 전쟁
지금 일본에서는 편의점 업계 빅3업체인 세븐일레븐재팬, 로손, 패밀리마트가 EC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세븐일레븐 재팬의 경우 올초 자본금 50억엔으로 EC 전위부대인 세븐드림닷컴을 설립했다. 세븐드림 진영에는 NEC, 소니, 노무라종합연구소, 미쓰이물산을 비롯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모여 이름 그대로 드림팀을 이뤘다. 알고 보면 세븐일레븐 저팬의 모회사인 이토요카도 그룹이 이들의 전략지휘본부다. 지난 7월 1일부터 홈페이지(www.7dream.com)를 개설했고, 내년봄까지는 전국 8200개 매장에 멀티미디어 키오스크를 보급할 계획이다.
2위업체 로손은 세븐일레븐보다도 먼저 EC에 눈을 돌려 지난 98년부터 롯피(Loppi)라는 이름의 정보단말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롯피는 특히 테마파크와 스키장 등 국내외 여행상품을 할인가격으로 취급해 인기를 끌었다. 로손의 롯피를 이용한 전자상거래 매출액이 98년 일본 EC매출액 650억엔의 3분의 2를 차지했을 정도. 자신감을 얻은 로손은 @LAWSON을 설립, CD 및 DVD 소프트웨어 등으로 아이템을 늘려가며 EC시장에서만은 세븐일레븐을 누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토추상사계의 패밀리마트도 중견업체들인 서클케이, 선크스앤어소시에이츠, 미니스톱, 스리에프 등과 전자상거래 편의점연합을 결성, 지난 4월 공동출자회사 패미마닷컴을 출범시켰다. 그밖에 AM/PM, 산쿠스, 미니스톱, 데일리야마자키 등도 앞다퉈 EC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제 편의점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머지 않아 가정의 PC와 매장의 멀티미디어 키오스크, 그리고 휴대전화 같은 정보가전으로도 결재가 가능해 진다. 그렇게 되면 편의점은 길거리의 e 뱅킹 e쇼핑 그리고 e엔터테인먼트 센터로 일본식 길거리 정보문화를 만들어갈 전망이다.
<이선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