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Take out TV' 미디어 혁명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세계 최대 필름 메이커인 `이스트먼 코닥'이 끝내 정크본드 신세가 됐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S&P(스탠더드 앤 푸어스)는 지난 4월22일 코닥의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인 BB+로 한 단계 내린다고 밝혔다.
코닥은 지난 1/4분기 1억4200만 달러의 순 손실을 기록했고, 2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했다. 하지만 코닥이 정크본드 신세가 된 직접적인 이유는 적자 때문은 아니다. S&P는 등급 하향조정의 주된 이유로 "디지털 영상 시대를 맞아 수익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코닥은 지난 1980년대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다 해드립니다'라는 유명한 슬로건과 함께 뉴 트렌드를 만들어왔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코닥은 스스로 디지털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향으로 브랜드를 이끌어냄으로써 회사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됐다. 대부분 사람들은 코닥을 생각하면서 노란 필름박스를 떠올릴 뿐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연상하지는 않는다.
코닥의 정크본드 추락은 컨버전스(융ㆍ복합)의 가공할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폰과 디지털카메라의 진화 및 컨버전스는 이제 코닥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추억 속으로 밀어 넣고 있을 뿐 아니라, 2007년까지 최대 1만5000명 감원이라는 코닥 직원들의 현실적 고통을 가져오는 배경이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디지털 컨버전스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디지털 기술이 컨버전스의 최첨단 트렌드와 유행을 선도하고 있고, 외국의 디지털 제품 역시 이 땅을 `테스트 베드' 삼아 합격 판정을 얻어야만 안심하고 대량 생산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휴대폰의 정체가 전화기인가, 카메라인가, 캠코더인가, PDA인가, MP3인가, 리모콘인가, 이동 추적장치인가 라고 물어보는 행위 자체가 촌스러운 일이 돼버린 것이다. 그것도 불과 1년 사이에...
그런 만큼 이 땅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진짜 혁명 보다 더 혁명적이다. 그만큼 기회와 위기, 공존의 진폭이 심하다. 이 땅은 지난 5월1일부터 디지털 컨버전스 역사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위성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DMB 본방송으로는 지난해 10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휴대전화를 통한 실질적 서비스는 세계 최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의의 등장에서는 항상 늦었던 우리였지만, DMB로 인해 세계 미디어사를 새로 쓰기도 한다. DMB사업자인 TU미디어의 슬로건 대로 `Take out TV', 텔레비전도 커피 처럼 `테이크 아웃'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TV를 테이크 아웃하는 시대가 몰고 올 엄청난 변화다. 먼저 한 곳에 앉아 방송을 본다는 개념이 사라지게 됐다. DMB는 고속으로 이동하면서도 방송을 본다. 차안이든 지하철이든 장소도 상관없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가는 곳이 곧 거실이요, 극장이다.
따라서 소식(그것이 뉴스든 루머든)의 전파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게 됐다. 얼마 전 연예인 X파일이 불과 며칠 사이에 전 국민이 알 정도로 퍼진 전파 속도에 대해 우리 스스로 경악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보다 더 빠른 전파력을 가진 미디어를 갖게 됐다.
인터넷 보다 더 가공할 위력의 미디어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득이 많을 지, 역작용이 더 클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미디어 권력의 지형이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지난 십 수년간 미디어 권력의 핵심이 종이신문에서 방송으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새로운 헤게모니 쟁탈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미 DMB를 통해 연예ㆍ스타ㆍ스포츠 소식을 24시간 신속하게 소개하는 채널이 등장했다. 장르별로 음악을 24시간 틀어주는 음악채널도 12개나 된다. 작게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연예가 중계' 등의 연예 프로그램이나 뮤직 방송사의 위상 및 영향력에 변화가 올 것이고, 크게는 청소년 문화나 대중문화에 큰 파고를 몰고 올 것이다.
과거 1990년대의 M―TV가 청소년 문화에 미친 영향을 기억할 것이다. M―TV의 뮤직 비디오에서 하루 종일 볼 수 있던 흑인 하위문화(힙합 등)는 음악은 물론 댄스, 패션, 건축, 외식산업, 스포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거의 전 지구적 영향을 미쳤다. NBA나 `스트리트 농구'의 대유행도 그 근원은 M―TV 뮤직비디오의 영향 때문이다.
따라서 DMB가 과거 M―TV와 유사한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DMB는 쌍방향 방송이 가능하다. DMB는 단말기가 브라운관이자 리모콘이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매체다. 방송을 보면서 투표로 우승자를 결정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당장 5월부터 시작됐듯이 방송의 쌍방향 경향은 새로운 유행과 흐름을 이끌어내면서 새 개념의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방송은 유통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지난 4월부터 `TV 주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입자가 리모콘으로 피자의 종류와 가격 등을 검색해 주문하면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배달한다. 내년부터는 품목이 치킨과 자장면 등으로 확대된다. 방송을 보면서 주인공이 입고 있는 것, 먹는 것, 바르는 것 등을 실시간으로 주문하는 일 역시 머지 않았다.
이처럼 휴대전화로 방송을 보고, TV로 인터넷을 하며, 상품주문까지 하는 세상에서 경계를 가르는 일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신문+방송+인터넷+통신+유통+……. 앞으로도 이러한 융합, 복합의 더하기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지난 2월 일본에서는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라이브도어'라는 한 인터넷 벤처기업의 33세 젊은 사장이 매출 수 천억원대의 일본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민영방송 `후지TV'에 매수의 손길을 뻗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라이브도어는 후지TV의 대주주인 닛폰방송의 주식 30% 이상을 하루아침에 사들이면서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라이브도어의 후리에 사장은 "라디오 방송과 인터넷을 융합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될 것"이라고 컨버전스론을 내세웠다. 물론 그 속셈은 닛폰방송을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후지TV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TV와 인터넷을 융합한 새 모델을 만들 계산이었는지도 모른다.
후지TV의 몇 개월간의 결사항전과 `같은 심정'인 방송계의 지원에 힘입어 지금은 "업무 제휴하자"(후지TV), "경영권 넘보지 않겠다"(라이브도어)라고 서로 잠시 화해한 상태지만, 갈수록 영역을 확대하는 컨버전스 경향은 이들의 휴전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떤 면에서는 일본 보다 더 보수적인 우리의 미디어 시장에도 이 같은 빅뱅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노동환경에도 커다란 변화를 요구한다. 산업시대의 출범과 더불어 시계가 노동과 직업의 정의를 뒤흔든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이전까지 직업은 해야 하는 일정한 양의 일과 관련이 있었지만, 시계가 등장함으로써 작업의 개념은 시간에 종속됐고, `정규직' 고용의 시초가 됐다.
일부 학자는 산업시대의 핵심적인 기계장치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라고 주장한다. 출근시간 기록제가 도입되고 시간관리가 노동관리의 가장 큰 목적이 되는 등, 일과 노동의 근본적 의미 내지는 고용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지식정보사회 혹은 지능정보사회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에도 노동의 개념은 계속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은 인터넷과 이동전화다. `사무실'이라는 전통적 일터를 벗어나서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어느 기기를 통해서든, 그야말로 유비쿼터스적으로 노동이 가능한, 일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이런 노동환경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빅 브라더의 감시의 눈길 역시 날이 가면 갈수록 융ㆍ복합화된 첨단의 기능을 보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고용 없는 성장'을 더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지난 5년간 대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직원 수는 오히려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50대 상장사의 경우 매출은 67%, 이익은 115%가 늘었지만 직원은 오히려 0.4%가 줄었다. 예를 들어 이동통신업체 3사는 휴대전화의 급성장 속에서 50대 상장사 총매출의 4.5%를 차지하지만, 직원 수는 1.7%에 불과하다. 매출에 비해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IT산업의 특성이 반영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감시의 눈길 뿐 아니라 놀거리 역시 다양하게 제공한다. 사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놀이에 대한 요구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놀이와 일이 행복하게 결합할 수만 있다면, 노동과 여가가 즐겁게 결합할 수만 있다면, 디지털 컨버전스에 의한 노동환경의 미래가 그리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일자리를 늘릴 해법은 아무래도 전체 고용의 8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부문과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업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 부문과 서비스업의 고용 확대의 기초는 아무래도 정보화, 생산적 정보활용에 달려 있다. 정보격차 해소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세계 최대 필름 메이커인 `이스트먼 코닥'이 끝내 정크본드 신세가 됐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S&P(스탠더드 앤 푸어스)는 지난 4월22일 코닥의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인 BB+로 한 단계 내린다고 밝혔다.
코닥은 지난 1/4분기 1억4200만 달러의 순 손실을 기록했고, 2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했다. 하지만 코닥이 정크본드 신세가 된 직접적인 이유는 적자 때문은 아니다. S&P는 등급 하향조정의 주된 이유로 "디지털 영상 시대를 맞아 수익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코닥은 지난 1980년대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다 해드립니다'라는 유명한 슬로건과 함께 뉴 트렌드를 만들어왔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코닥은 스스로 디지털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향으로 브랜드를 이끌어냄으로써 회사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됐다. 대부분 사람들은 코닥을 생각하면서 노란 필름박스를 떠올릴 뿐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연상하지는 않는다.
코닥의 정크본드 추락은 컨버전스(융ㆍ복합)의 가공할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폰과 디지털카메라의 진화 및 컨버전스는 이제 코닥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추억 속으로 밀어 넣고 있을 뿐 아니라, 2007년까지 최대 1만5000명 감원이라는 코닥 직원들의 현실적 고통을 가져오는 배경이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디지털 컨버전스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디지털 기술이 컨버전스의 최첨단 트렌드와 유행을 선도하고 있고, 외국의 디지털 제품 역시 이 땅을 `테스트 베드' 삼아 합격 판정을 얻어야만 안심하고 대량 생산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휴대폰의 정체가 전화기인가, 카메라인가, 캠코더인가, PDA인가, MP3인가, 리모콘인가, 이동 추적장치인가 라고 물어보는 행위 자체가 촌스러운 일이 돼버린 것이다. 그것도 불과 1년 사이에...
그런 만큼 이 땅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진짜 혁명 보다 더 혁명적이다. 그만큼 기회와 위기, 공존의 진폭이 심하다. 이 땅은 지난 5월1일부터 디지털 컨버전스 역사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위성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DMB 본방송으로는 지난해 10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휴대전화를 통한 실질적 서비스는 세계 최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의의 등장에서는 항상 늦었던 우리였지만, DMB로 인해 세계 미디어사를 새로 쓰기도 한다. DMB사업자인 TU미디어의 슬로건 대로 `Take out TV', 텔레비전도 커피 처럼 `테이크 아웃'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TV를 테이크 아웃하는 시대가 몰고 올 엄청난 변화다. 먼저 한 곳에 앉아 방송을 본다는 개념이 사라지게 됐다. DMB는 고속으로 이동하면서도 방송을 본다. 차안이든 지하철이든 장소도 상관없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가는 곳이 곧 거실이요, 극장이다.
따라서 소식(그것이 뉴스든 루머든)의 전파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게 됐다. 얼마 전 연예인 X파일이 불과 며칠 사이에 전 국민이 알 정도로 퍼진 전파 속도에 대해 우리 스스로 경악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보다 더 빠른 전파력을 가진 미디어를 갖게 됐다.
인터넷 보다 더 가공할 위력의 미디어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득이 많을 지, 역작용이 더 클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미디어 권력의 지형이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지난 십 수년간 미디어 권력의 핵심이 종이신문에서 방송으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새로운 헤게모니 쟁탈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미 DMB를 통해 연예ㆍ스타ㆍ스포츠 소식을 24시간 신속하게 소개하는 채널이 등장했다. 장르별로 음악을 24시간 틀어주는 음악채널도 12개나 된다. 작게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연예가 중계' 등의 연예 프로그램이나 뮤직 방송사의 위상 및 영향력에 변화가 올 것이고, 크게는 청소년 문화나 대중문화에 큰 파고를 몰고 올 것이다.
과거 1990년대의 M―TV가 청소년 문화에 미친 영향을 기억할 것이다. M―TV의 뮤직 비디오에서 하루 종일 볼 수 있던 흑인 하위문화(힙합 등)는 음악은 물론 댄스, 패션, 건축, 외식산업, 스포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거의 전 지구적 영향을 미쳤다. NBA나 `스트리트 농구'의 대유행도 그 근원은 M―TV 뮤직비디오의 영향 때문이다.
따라서 DMB가 과거 M―TV와 유사한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DMB는 쌍방향 방송이 가능하다. DMB는 단말기가 브라운관이자 리모콘이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매체다. 방송을 보면서 투표로 우승자를 결정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당장 5월부터 시작됐듯이 방송의 쌍방향 경향은 새로운 유행과 흐름을 이끌어내면서 새 개념의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방송은 유통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지난 4월부터 `TV 주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입자가 리모콘으로 피자의 종류와 가격 등을 검색해 주문하면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배달한다. 내년부터는 품목이 치킨과 자장면 등으로 확대된다. 방송을 보면서 주인공이 입고 있는 것, 먹는 것, 바르는 것 등을 실시간으로 주문하는 일 역시 머지 않았다.
이처럼 휴대전화로 방송을 보고, TV로 인터넷을 하며, 상품주문까지 하는 세상에서 경계를 가르는 일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신문+방송+인터넷+통신+유통+……. 앞으로도 이러한 융합, 복합의 더하기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지난 2월 일본에서는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라이브도어'라는 한 인터넷 벤처기업의 33세 젊은 사장이 매출 수 천억원대의 일본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민영방송 `후지TV'에 매수의 손길을 뻗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라이브도어는 후지TV의 대주주인 닛폰방송의 주식 30% 이상을 하루아침에 사들이면서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라이브도어의 후리에 사장은 "라디오 방송과 인터넷을 융합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될 것"이라고 컨버전스론을 내세웠다. 물론 그 속셈은 닛폰방송을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후지TV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TV와 인터넷을 융합한 새 모델을 만들 계산이었는지도 모른다.
후지TV의 몇 개월간의 결사항전과 `같은 심정'인 방송계의 지원에 힘입어 지금은 "업무 제휴하자"(후지TV), "경영권 넘보지 않겠다"(라이브도어)라고 서로 잠시 화해한 상태지만, 갈수록 영역을 확대하는 컨버전스 경향은 이들의 휴전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떤 면에서는 일본 보다 더 보수적인 우리의 미디어 시장에도 이 같은 빅뱅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노동환경에도 커다란 변화를 요구한다. 산업시대의 출범과 더불어 시계가 노동과 직업의 정의를 뒤흔든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이전까지 직업은 해야 하는 일정한 양의 일과 관련이 있었지만, 시계가 등장함으로써 작업의 개념은 시간에 종속됐고, `정규직' 고용의 시초가 됐다.
일부 학자는 산업시대의 핵심적인 기계장치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라고 주장한다. 출근시간 기록제가 도입되고 시간관리가 노동관리의 가장 큰 목적이 되는 등, 일과 노동의 근본적 의미 내지는 고용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지식정보사회 혹은 지능정보사회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에도 노동의 개념은 계속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은 인터넷과 이동전화다. `사무실'이라는 전통적 일터를 벗어나서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어느 기기를 통해서든, 그야말로 유비쿼터스적으로 노동이 가능한, 일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이런 노동환경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빅 브라더의 감시의 눈길 역시 날이 가면 갈수록 융ㆍ복합화된 첨단의 기능을 보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고용 없는 성장'을 더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지난 5년간 대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직원 수는 오히려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50대 상장사의 경우 매출은 67%, 이익은 115%가 늘었지만 직원은 오히려 0.4%가 줄었다. 예를 들어 이동통신업체 3사는 휴대전화의 급성장 속에서 50대 상장사 총매출의 4.5%를 차지하지만, 직원 수는 1.7%에 불과하다. 매출에 비해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IT산업의 특성이 반영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감시의 눈길 뿐 아니라 놀거리 역시 다양하게 제공한다. 사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놀이에 대한 요구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놀이와 일이 행복하게 결합할 수만 있다면, 노동과 여가가 즐겁게 결합할 수만 있다면, 디지털 컨버전스에 의한 노동환경의 미래가 그리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일자리를 늘릴 해법은 아무래도 전체 고용의 8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부문과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업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 부문과 서비스업의 고용 확대의 기초는 아무래도 정보화, 생산적 정보활용에 달려 있다. 정보격차 해소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