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은 국내서만 3조이상 로열티 챙겨
블리자드도 최근 각종 중계권 등 눈독
'은인의 땅'서 수익전략 성공할지 주목
퀄컴과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통신용 칩과 게임이라는 첨단 분야에서 각각 세계 1류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두 기업은 묘하게 닮아 있다. 그리고 이들을 키워낸 것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이뤄낸 세계 최초 상용화〓`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이 지은 `꽃'의 한 부분처럼 90년대 초 퀄컴은 그야말로 몸짓에 불과했다. 퀄컴 창업자인 어윈 제이콥스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라는 통신 기술의 도면을 들고 전세계 통신 사업자를 만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때 퀄컴이 꽃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는 아시아의 통신 후진국이었던 한국에서 비롯됐다.
1992년 체신부는 CDMA 기술을 제 2이동통신의 표준화 기술로 선정했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포부였다. 서정욱 전 과학기술처 차관을 단장으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내에 구성된 이동통신기술개발단의 노력은 결국 96년 1월 1일 전세계 최초 CDMA 상용화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CDMA 상용화가 창출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무려 125조 2000억원에 이른다. 상용화에 성공한 SK텔레콤은 국내 이통 산업을 좌우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게임을 문화와 산업의 영역으로〓블리자드는 낯설어도, 국내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1997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역사를 새로 썼다. 블리자드는 이전부터 `워크래프트', `워크래프트Ⅱ' 등으로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시장에서 이름을 날려 왔지만 `거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는 전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의 패키지가 팔렸다. 주목할 점은 한국 시장에서만 450만장 이상이 판매됐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곳이 바로 한국이라는 얘기다.
한국과 스타크래프트의 만남은 `유희'에 불과했던 게임을 `문화'와 `산업'으로 확장시켰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대회가 게이머들을 유혹하고 있다. 국가대항전은 물론, 이젠 군대 내에도 게임단이 창설되며 하나의 스포츠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을 `e스포츠의 수도'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택한 다른 길〓퀄컴과 블리자드는 한국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분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가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지난 11년 간 국내기업들이 퀄컴에 지불한 기술사용료는 3조원을 넘는다. 퀄컴은 `은인'인 한국에게 관대하지 않다. 한국의 제조사들이 퀄컴에 지불하는 기술사용료는 단말기 판매가의 5% 내외로 책정돼 있지만, 중국업체들은 2.5% 수준이다. 특히 CDMA모뎀 칩 기준이 아닌 전체단말기 기준으로 책정된 기술사용료는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고가폰을 출시하면서 점차 늘어만 가고 있다.
반면, 스타크래프트는 `배틀넷'을 먹고 자랐다.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 활성화를 위해 서비스하고 있는 배틀넷은 패키지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온라인'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배틀넷을 계속해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고, 각종 방송사와 업체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이용해 e스포츠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과정에서도 순수하게 패키지 판매로만 수익을 올렸다.
◇블리자드, 퀄컴의 길 가나〓상반기 게임 업계의 최대 화두였던 `스타크래프트2'를 보면서 퀄컴의 모습이 겹쳐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10년 간 `순진'하게 사업을 해온 블리자드는 세계 최초로 스타크래프트2를 한국에서 공개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키워낸 한국 사용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2에서도 전작과 같은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블리자드는 새로운 `배틀넷'의 유료화를 시사했고, 각종 중계권 판매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기업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충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블리자드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면서,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고민해 봤을지 궁금하다. 한 때 GSM과 함께 이통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뤘던 CDMA의 시장점유율은 이제 15%에 미치지 못한다. 높은 기술사용료로 인한 업체들의 기피가 가장 크다는 분석이다. 블리자드가 속한 게임 산업은 게임 하나의 성패가 기업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굳이 스타크래프트2를 하지 않더라도 대체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퀄컴이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블리자드 역시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교집합을 줄일수록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아닐까.
블리자드도 최근 각종 중계권 등 눈독
'은인의 땅'서 수익전략 성공할지 주목
퀄컴과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통신용 칩과 게임이라는 첨단 분야에서 각각 세계 1류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두 기업은 묘하게 닮아 있다. 그리고 이들을 키워낸 것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이뤄낸 세계 최초 상용화〓`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이 지은 `꽃'의 한 부분처럼 90년대 초 퀄컴은 그야말로 몸짓에 불과했다. 퀄컴 창업자인 어윈 제이콥스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라는 통신 기술의 도면을 들고 전세계 통신 사업자를 만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때 퀄컴이 꽃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는 아시아의 통신 후진국이었던 한국에서 비롯됐다.
1992년 체신부는 CDMA 기술을 제 2이동통신의 표준화 기술로 선정했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포부였다. 서정욱 전 과학기술처 차관을 단장으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내에 구성된 이동통신기술개발단의 노력은 결국 96년 1월 1일 전세계 최초 CDMA 상용화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CDMA 상용화가 창출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무려 125조 2000억원에 이른다. 상용화에 성공한 SK텔레콤은 국내 이통 산업을 좌우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게임을 문화와 산업의 영역으로〓블리자드는 낯설어도, 국내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1997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역사를 새로 썼다. 블리자드는 이전부터 `워크래프트', `워크래프트Ⅱ' 등으로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시장에서 이름을 날려 왔지만 `거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는 전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의 패키지가 팔렸다. 주목할 점은 한국 시장에서만 450만장 이상이 판매됐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곳이 바로 한국이라는 얘기다.
한국과 스타크래프트의 만남은 `유희'에 불과했던 게임을 `문화'와 `산업'으로 확장시켰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대회가 게이머들을 유혹하고 있다. 국가대항전은 물론, 이젠 군대 내에도 게임단이 창설되며 하나의 스포츠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을 `e스포츠의 수도'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택한 다른 길〓퀄컴과 블리자드는 한국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분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가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지난 11년 간 국내기업들이 퀄컴에 지불한 기술사용료는 3조원을 넘는다. 퀄컴은 `은인'인 한국에게 관대하지 않다. 한국의 제조사들이 퀄컴에 지불하는 기술사용료는 단말기 판매가의 5% 내외로 책정돼 있지만, 중국업체들은 2.5% 수준이다. 특히 CDMA모뎀 칩 기준이 아닌 전체단말기 기준으로 책정된 기술사용료는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고가폰을 출시하면서 점차 늘어만 가고 있다.
반면, 스타크래프트는 `배틀넷'을 먹고 자랐다.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 활성화를 위해 서비스하고 있는 배틀넷은 패키지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온라인'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배틀넷을 계속해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고, 각종 방송사와 업체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이용해 e스포츠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과정에서도 순수하게 패키지 판매로만 수익을 올렸다.
◇블리자드, 퀄컴의 길 가나〓상반기 게임 업계의 최대 화두였던 `스타크래프트2'를 보면서 퀄컴의 모습이 겹쳐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10년 간 `순진'하게 사업을 해온 블리자드는 세계 최초로 스타크래프트2를 한국에서 공개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키워낸 한국 사용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2에서도 전작과 같은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블리자드는 새로운 `배틀넷'의 유료화를 시사했고, 각종 중계권 판매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기업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충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블리자드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면서,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고민해 봤을지 궁금하다. 한 때 GSM과 함께 이통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뤘던 CDMA의 시장점유율은 이제 15%에 미치지 못한다. 높은 기술사용료로 인한 업체들의 기피가 가장 크다는 분석이다. 블리자드가 속한 게임 산업은 게임 하나의 성패가 기업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굳이 스타크래프트2를 하지 않더라도 대체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퀄컴이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블리자드 역시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교집합을 줄일수록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