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퀄컴, CDMA 상용화 기술 개발 손잡아
95년 6월 이동버스서 기자단과 통화시연 '첫선'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이통시장 주도국 '우뚝'
95년 6월 이동버스서 기자단과 통화시연 '첫선'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이통시장 주도국 '우뚝'
■ 또 다른 신화가 시작된다 2020 IT코리아
Ⅰ. 통신서비스 부문 - 2부 - 카폰에서 4G까지
(2) 무에서 유를 창조한 CDMA
"감도가 어떻습니까?"
"깨끗하고 선명한데요. 유선전화 같네요. 디지털이니까 마치 기계음 같기도 하고.."
1995년 6월12일. 서울 KOEX(현 COEX)에서 정보통신 전시관 행사가 개최됐다. 이 행사에는 당시 이동통신사업자인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이 세계 최초의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이동전화 기술을 시연하는 행사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국내 통신시장은 이동통신 국가표준 기술 채택을 앞두고 심각한 분열양상을 보였다. 상공부(현 지경부)와 PCS 예비사업자 진영이 미국, 유럽 등지에서 이미 상용화한 TDMA(시분할다중접속기술) 기술을 들고 나왔고, 정보통신부(현 방통위)와 한국이동통신, 신세기통신, ETRI(전자통신연구원) 등은 독자 개발한 CDMA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속에 CDMA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첫 데뷔전이라는 점에서 통신업계 전체는 물론 정치권, 언론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될만한 이벤트였다.
한국이동통신 서정욱 사장이 정면승부에 나선다. 광화문 정통부건물에서 KOEX까지 이동하는 기자단 버스안에서 CDMA 시연회를 개최한 것이다. 통화가 안되거나 끊어지는 상황이 언론을 통해 그대로 노출될 경우, 통신업계 전체에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표준화 논쟁에서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큰 도박이었다.
남산 하얏트호텔에서부터 KOEX까지 이동하는 기자단 버스로 서 사장이 통화를 시도했다. 서 사장과 기자단과의 통화는 목적지인 KOEX까지 이동하는 내내 이어졌다. 통화품질도 기존의 아날로그 이동통신 기술보다 더 선명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순간은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 퀄컴이 가지고 있던 CDMA 실험실 기술이 국내 이동통신 표준으로 채택되고, 한국을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국가, 모바일 선진국으로 올라서게 한 출발점이 됐다.
글 싣는 순서
Ⅰ. 통신서비스부문
1부 유선통신-TDX에서 유무선통합까지
2부 이동통신-카폰에서 4G까지
2. 무에서 유를 창조한 CDMA
3부 선순환고리 창출하는 통신3사
1980년대 TDX(전전자교환기) 개발 사업으로 큰 성과를 거둔 국내 정보통신 업계는 1988년부터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사업'에 착수한다. 교환기 기술개발로 유선전화 수요를 충족한데 이어, 당시 급증하고 있는 이동통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 이동전화 기술수준은 사실상 황무지였다. 이동통신을 군사적인 목적으로만 활용하고 있었던 당시, 디지털은 물론 아날로그 이동통신 시스템에 대한 기초기술도 전무한 실정이었다. TDX 개발당시와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다.
이에 반해,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이동전화 수요는 폭발 직전으로 치닫는다. 카폰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이동전화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이동전화 기술과 서비스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당시 카폰 한 대값이 고급자동차 한 대와 맞먹었다.
1990년대 국내 이동통신 보급률이 인구 1000명당 1.72대로 소수만을 위한 서비스에 그칠 정도였다. 선진국인 미국은 20.76대, 스웨덴 53.53대, 일본 5.56대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통화단절, 혼선 등 통화품질 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동통신 기술 및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릴 만한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최초 디지털 이동통신 연구개발 사업을 시작한 ETRI의 연구과제는 미국, 유럽의 상용화 기술을 따라잡는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이동통신 표준방식인 IS-54 TDMA를 표준모델로 삼고, 총 연구개발비 441억원이 투입됐다. TDMA는 이미 검증된 상용화 기술인데다, 국내 장비업체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의미까지 포장돼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1996년까지 TDMA를 상용화하고 이동통신 기술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TDMA로 굳어지던 1990년도부터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 퀄컴이 들고 나온 CDMA가 눈길을 끌었다. CDMA는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다수의 사용자에게 각각의 신호를 구분할 수 있는 코드를 제공함으로써, 넓은 전파대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었다.
기존 TDMA 기술보다 용량이나 전파효율성, 기지국 배치 등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시 실험실 기술수준인 CDMA를 상용화 기술로 발전시킬 파트너를 찾고 있던 퀄컴도 ETRI를 비롯한 국내 통신업계에 결사적으로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ETRI가 퀄컴과 손을 잡는다. TDMA 기술개발을 지속하면서, 한편으로는 CDMA 상용화 기술개발을 병행하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ETRI와 퀄컴이 주도한 CDMA 상용화 기술개발은 두 번의 큰 난관에 부닥친다. 첫 번째는 1993년초 당시 상공부가 제2 이동통신사업자의 기술방식을 TDMA방식을 채택키로 한 것이다. CDMA 상용화 기술이 윤곽을 드러내던 1995년에는 당시 제2 이동통신 사업자와 신세기통신이 TDMA 기술을 채택하겠다고 나서면서 또 한번의 시련을 겪는다.
당시 상공부의 논리는 간단했다. TDMA를 도입할 경우, 상용화 기술 개발일정도 2년이면 충분하고 무엇보다 수출전망이 밝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에서 CDMA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고도 정작, 상용서비스를 띄우지 못해 기술이 사장될 가능성도 커 보였다.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CDMA 개발완료 시점을 1995년으로 단축하고, 기술개발 경쟁이 불가피했다. ETRI내에 작전본부를 연상케 하는 CDMA 연구동이 풀 가동되기 시작했고 CDMA 지원에 나선 한국이동통신도 광화문 이마빌딩에 이동통신 기술개발 사업관리단을 출범시키고 상용화 기술 지원에 착수했다.
특히, ETRI에 설치된 CDMA 작전본부실은 매일매일 야근과 밤샘작업이 이어졌고, 새벽에 긴급호출을 받고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 ETRI 소장이던 양승택 박사는 "가장 큰 성과는 CDMA 상용화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참 뒤늦었는데 비결이라고 하면, 단지 죽기살기를 각오하고 했을 뿐이다"고 당시의 절박함을 회고했다.
CDMA 연구개발 작업은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혹시 제2 이동통신사업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상용화 기술을 내놓지 못하거나 치명적인 기술결함이 인정되면 모든 연구성과가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ETRI는 개발기간 단축을 위한 주간보고제를 도입하는 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 장비인 KCS-1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토대로 시험 제품인 KCS-2 시연에 성공했다. 이들 KCS 장비는 ETRI가 확보하고 있던 TDX-10 교환기에 이동통신 시스템 기술을 결합한 모델이다.
1980년대 당시 투자규모로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TDX를 개발했던 성과가 국내 이동통신 기술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CDMA 상용화의 기초가 된 것이다.
CDMA 상용화 기술의 구현으로, 1994년 CDMA는 국내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표준규격으로 채택된다. 이후 1995년 6월 세계 최초의 CDMA 상용기술이 첫선을 보이면서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데뷔한다.
그러나 기술개발이 끝난 시점에서도 표준화 논쟁은 또 재연된다. 이번에는 신규 이동통신사업을 준비중인 한국통신(현 KT)이 PCS 무선접속기술을 TDMA방식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2위 사업자인 신세기통신이 CDMA 방식으로 가입자를 선점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CDMA냐 TDMA냐 하는 논쟁은 한국이동통신과 한국통신간 대결뿐만 아니라, 정치권 공방, 무역분쟁 문제로까지 비화되며 뜨거운 논란을 연출했다. 특히 미국무역대표부까지 동원돼 TDMA를 채택하도록 종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당시 한-미간 통상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당시 경상현 정보통신부장관은 1995년 예정돼 있던 PCS 사업자 선정시점을 1996년 6월로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CDMA 진영은 세계 이동통신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기술주권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정부에 일관된 통신정책을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TDMA를 채택할 경우, 해외 글로벌 장비개발 업체들에 막대한 기술료를 물어줘야 하는 반면에, CDMA를 상용화할 경우,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세계 이동통신시장에서 중심적인 축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기업이 5000억원을 투자해 공들인 연구개발 성과를 사장시킬 수 없다는 논리도 제기됐다.
결국, 정보통신부는 강공카드를 들고나왔다. 국내표준은 하나라는 것이다. TDMA 채택을 선언한 신세기통신에 "허가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며 압박했다. CDMA와 TDMA간 표준화 경쟁은 CDMA의 승리로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서정욱 전 과기부장관은 "CDMA의 성공은 국내 표준을 하나로 결정한 경상현 정통부장관의 결단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국내 연구진과 서비스업체의 노력으로, 2006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CDMA는 대한민국 이동통신 산업이 세계 무대에 올라설 수 있는 출발점이 됐다.
특히 TDX-CDMA 연구개발 성과가 누적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과 기획력을 인정받은 점은 무엇보다 값진 성과였다.
CDMA를 출발점으로 국내 통신서비스 산업도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1995∼1998년 통신서비스산업 파급효과분석을 통해, 이 기간동안 실질 국민소득 증가의 7.84%, 총 산출액은 12.8%를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서구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가는 손쉬운 전략을 버리고, 10년 앞을 내다보고 우리가 기술주도국이 되는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이 큰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 기획취재팀
팀장=임윤규 정보미디어부장 yklim@
최경섭차장 kschoi@
강희종기자 mindle@
박지성기자 jspark@
Ⅰ. 통신서비스 부문 - 2부 - 카폰에서 4G까지
(2) 무에서 유를 창조한 CDMA
"감도가 어떻습니까?"
"깨끗하고 선명한데요. 유선전화 같네요. 디지털이니까 마치 기계음 같기도 하고.."
1995년 6월12일. 서울 KOEX(현 COEX)에서 정보통신 전시관 행사가 개최됐다. 이 행사에는 당시 이동통신사업자인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이 세계 최초의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이동전화 기술을 시연하는 행사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국내 통신시장은 이동통신 국가표준 기술 채택을 앞두고 심각한 분열양상을 보였다. 상공부(현 지경부)와 PCS 예비사업자 진영이 미국, 유럽 등지에서 이미 상용화한 TDMA(시분할다중접속기술) 기술을 들고 나왔고, 정보통신부(현 방통위)와 한국이동통신, 신세기통신, ETRI(전자통신연구원) 등은 독자 개발한 CDMA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속에 CDMA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첫 데뷔전이라는 점에서 통신업계 전체는 물론 정치권, 언론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될만한 이벤트였다.
한국이동통신 서정욱 사장이 정면승부에 나선다. 광화문 정통부건물에서 KOEX까지 이동하는 기자단 버스안에서 CDMA 시연회를 개최한 것이다. 통화가 안되거나 끊어지는 상황이 언론을 통해 그대로 노출될 경우, 통신업계 전체에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표준화 논쟁에서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큰 도박이었다.
남산 하얏트호텔에서부터 KOEX까지 이동하는 기자단 버스로 서 사장이 통화를 시도했다. 서 사장과 기자단과의 통화는 목적지인 KOEX까지 이동하는 내내 이어졌다. 통화품질도 기존의 아날로그 이동통신 기술보다 더 선명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순간은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 퀄컴이 가지고 있던 CDMA 실험실 기술이 국내 이동통신 표준으로 채택되고, 한국을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국가, 모바일 선진국으로 올라서게 한 출발점이 됐다.
글 싣는 순서
Ⅰ. 통신서비스부문
1부 유선통신-TDX에서 유무선통합까지
2부 이동통신-카폰에서 4G까지
2. 무에서 유를 창조한 CDMA
3부 선순환고리 창출하는 통신3사
1980년대 TDX(전전자교환기) 개발 사업으로 큰 성과를 거둔 국내 정보통신 업계는 1988년부터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사업'에 착수한다. 교환기 기술개발로 유선전화 수요를 충족한데 이어, 당시 급증하고 있는 이동통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 이동전화 기술수준은 사실상 황무지였다. 이동통신을 군사적인 목적으로만 활용하고 있었던 당시, 디지털은 물론 아날로그 이동통신 시스템에 대한 기초기술도 전무한 실정이었다. TDX 개발당시와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다.
이에 반해,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이동전화 수요는 폭발 직전으로 치닫는다. 카폰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이동전화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이동전화 기술과 서비스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당시 카폰 한 대값이 고급자동차 한 대와 맞먹었다.
1990년대 국내 이동통신 보급률이 인구 1000명당 1.72대로 소수만을 위한 서비스에 그칠 정도였다. 선진국인 미국은 20.76대, 스웨덴 53.53대, 일본 5.56대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통화단절, 혼선 등 통화품질 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동통신 기술 및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릴 만한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최초 디지털 이동통신 연구개발 사업을 시작한 ETRI의 연구과제는 미국, 유럽의 상용화 기술을 따라잡는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이동통신 표준방식인 IS-54 TDMA를 표준모델로 삼고, 총 연구개발비 441억원이 투입됐다. TDMA는 이미 검증된 상용화 기술인데다, 국내 장비업체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의미까지 포장돼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1996년까지 TDMA를 상용화하고 이동통신 기술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TDMA로 굳어지던 1990년도부터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 퀄컴이 들고 나온 CDMA가 눈길을 끌었다. CDMA는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다수의 사용자에게 각각의 신호를 구분할 수 있는 코드를 제공함으로써, 넓은 전파대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었다.
기존 TDMA 기술보다 용량이나 전파효율성, 기지국 배치 등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시 실험실 기술수준인 CDMA를 상용화 기술로 발전시킬 파트너를 찾고 있던 퀄컴도 ETRI를 비롯한 국내 통신업계에 결사적으로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ETRI가 퀄컴과 손을 잡는다. TDMA 기술개발을 지속하면서, 한편으로는 CDMA 상용화 기술개발을 병행하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ETRI와 퀄컴이 주도한 CDMA 상용화 기술개발은 두 번의 큰 난관에 부닥친다. 첫 번째는 1993년초 당시 상공부가 제2 이동통신사업자의 기술방식을 TDMA방식을 채택키로 한 것이다. CDMA 상용화 기술이 윤곽을 드러내던 1995년에는 당시 제2 이동통신 사업자와 신세기통신이 TDMA 기술을 채택하겠다고 나서면서 또 한번의 시련을 겪는다.
당시 상공부의 논리는 간단했다. TDMA를 도입할 경우, 상용화 기술 개발일정도 2년이면 충분하고 무엇보다 수출전망이 밝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에서 CDMA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고도 정작, 상용서비스를 띄우지 못해 기술이 사장될 가능성도 커 보였다.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CDMA 개발완료 시점을 1995년으로 단축하고, 기술개발 경쟁이 불가피했다. ETRI내에 작전본부를 연상케 하는 CDMA 연구동이 풀 가동되기 시작했고 CDMA 지원에 나선 한국이동통신도 광화문 이마빌딩에 이동통신 기술개발 사업관리단을 출범시키고 상용화 기술 지원에 착수했다.
특히, ETRI에 설치된 CDMA 작전본부실은 매일매일 야근과 밤샘작업이 이어졌고, 새벽에 긴급호출을 받고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 ETRI 소장이던 양승택 박사는 "가장 큰 성과는 CDMA 상용화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참 뒤늦었는데 비결이라고 하면, 단지 죽기살기를 각오하고 했을 뿐이다"고 당시의 절박함을 회고했다.
CDMA 연구개발 작업은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혹시 제2 이동통신사업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상용화 기술을 내놓지 못하거나 치명적인 기술결함이 인정되면 모든 연구성과가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ETRI는 개발기간 단축을 위한 주간보고제를 도입하는 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 장비인 KCS-1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토대로 시험 제품인 KCS-2 시연에 성공했다. 이들 KCS 장비는 ETRI가 확보하고 있던 TDX-10 교환기에 이동통신 시스템 기술을 결합한 모델이다.
1980년대 당시 투자규모로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TDX를 개발했던 성과가 국내 이동통신 기술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CDMA 상용화의 기초가 된 것이다.
CDMA 상용화 기술의 구현으로, 1994년 CDMA는 국내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표준규격으로 채택된다. 이후 1995년 6월 세계 최초의 CDMA 상용기술이 첫선을 보이면서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데뷔한다.
그러나 기술개발이 끝난 시점에서도 표준화 논쟁은 또 재연된다. 이번에는 신규 이동통신사업을 준비중인 한국통신(현 KT)이 PCS 무선접속기술을 TDMA방식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2위 사업자인 신세기통신이 CDMA 방식으로 가입자를 선점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CDMA냐 TDMA냐 하는 논쟁은 한국이동통신과 한국통신간 대결뿐만 아니라, 정치권 공방, 무역분쟁 문제로까지 비화되며 뜨거운 논란을 연출했다. 특히 미국무역대표부까지 동원돼 TDMA를 채택하도록 종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당시 한-미간 통상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당시 경상현 정보통신부장관은 1995년 예정돼 있던 PCS 사업자 선정시점을 1996년 6월로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CDMA 진영은 세계 이동통신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기술주권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정부에 일관된 통신정책을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TDMA를 채택할 경우, 해외 글로벌 장비개발 업체들에 막대한 기술료를 물어줘야 하는 반면에, CDMA를 상용화할 경우,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세계 이동통신시장에서 중심적인 축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기업이 5000억원을 투자해 공들인 연구개발 성과를 사장시킬 수 없다는 논리도 제기됐다.
결국, 정보통신부는 강공카드를 들고나왔다. 국내표준은 하나라는 것이다. TDMA 채택을 선언한 신세기통신에 "허가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며 압박했다. CDMA와 TDMA간 표준화 경쟁은 CDMA의 승리로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서정욱 전 과기부장관은 "CDMA의 성공은 국내 표준을 하나로 결정한 경상현 정통부장관의 결단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국내 연구진과 서비스업체의 노력으로, 2006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CDMA는 대한민국 이동통신 산업이 세계 무대에 올라설 수 있는 출발점이 됐다.
특히 TDX-CDMA 연구개발 성과가 누적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과 기획력을 인정받은 점은 무엇보다 값진 성과였다.
CDMA를 출발점으로 국내 통신서비스 산업도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1995∼1998년 통신서비스산업 파급효과분석을 통해, 이 기간동안 실질 국민소득 증가의 7.84%, 총 산출액은 12.8%를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서구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가는 손쉬운 전략을 버리고, 10년 앞을 내다보고 우리가 기술주도국이 되는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이 큰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 기획취재팀
팀장=임윤규 정보미디어부장 yklim@
최경섭차장 kschoi@
강희종기자 mindle@
박지성기자 js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