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정경과학부 차장
이달초 일본 후쿠시마 사고 1주년을 앞두고 대부분 언론은 관련 기획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느라 바빴다. 그중 상당수는 국내 원전은 안전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는 원전 현장발 르포 기사였다. 르포 기사의 주된 배경은 바로 고리1호기가 있는 고리원전이었다.
원자력의 기반을 통째로 흔든 후쿠시마 사고의 기억을 털어내고 새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도 이런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했다. 원자력계와 언론이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고리1호기 사고 소식이 터졌다.
지난 13일 원자력안전위가 짧은 자료를 내놓은 후 원자력 분야에 따뜻한 봄날같은 기사는 사라졌다. 이후 파헤쳐진 진상은 참혹했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위험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잘 관리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은 깨졌다.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 매뉴얼을 무시하는 즉흥성, 경직된 정부시스템, 기업간 갑을관계, 고질적인 납품비리 등 암적인 문제들은 원전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원전 정비 용역업체와 감독자는 시험일정을 무단으로 앞당겼고, 정비 작업자는 감독자의 지시와 절차를 무시했다. 전원중단 시 가동돼야 하는 비상디젤발전기는 정비 허술로 고장난 상태였다. 안전보다 경제성과 생산성을 강조하다 보니 100%에 가까운 원전 가동률을 자랑하면서도 매년 유지관리 비용은 줄여온 결과다.
감시시스템도 문제였다. 고리1호기 관계자들이 사고를 숨기자 한수원 본사는 물론 고리본부와 원자력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주재원들도 모두 사실을 몰랐다. 24시간 원전감시 및 비상문자시스템도 정비중인 원전에 대해서는 먹통이었다.
원자력안전위로도 화살이 돌려졌다. 안전규제를 더 잘하라고 독립기관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원전 주재인력은 더 줄었고, 사고 후 대응도 말이 많았다. 특히 지난 21일 사고 조사결과와 대책 발표현장에서 강창순 위원장이 "고리1호기를 폐쇄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라고 한 발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재가동을 결정하는 잣대는 `마음'이 아니라 엄밀한 객관적 데이터가 돼야 하는데 다른 기관도 아닌, 원자력 안전규제기관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원자력 마피아' 지적을 받을 만한 발언이었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2009년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명목 하에 늘려도 시원찮을 KINS 인력을 구조조정하도록 결정했다. 원자력안전위가 원전 주재 안전점검 인력을 20명에서 1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KINS는 할당숫자를 채우기 위해 올해도 숙련된 전문가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원자력 안전점검 인력은 채용 후 바로 현장으로 갈 수 없고 최소 수년의 기간이 걸린다. 새로운 인력을 뽑아도 기존 인력의 빈자리를 바로 채울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사정은 통하지 않는다. KINS를 비롯한 출연연들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여느 공사나 공기업과 다를 바 없이 정원 등의 규제를 받고 있다. 전문분야를 인정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정부 거버넌스가 낳은 부작용이다.
이번 사고는 국내 원자력계 최대 위기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기술은 연구와 땀으로 보완하면 되지만 한번 무너진 신뢰는 여간해서는 회복하기 힘들다. 문화와 인력, 시스템은 단기간에 쉽게 바꿀 수 없지만 그것들이 가장 핵심이다. 원전 운영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고 반성하고 다시 세우는 노력도 필요하다. 뼈를 깎는 자기 반성과 철저한 쇄신이 있어야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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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의 기반을 통째로 흔든 후쿠시마 사고의 기억을 털어내고 새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도 이런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했다. 원자력계와 언론이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고리1호기 사고 소식이 터졌다.
지난 13일 원자력안전위가 짧은 자료를 내놓은 후 원자력 분야에 따뜻한 봄날같은 기사는 사라졌다. 이후 파헤쳐진 진상은 참혹했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위험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잘 관리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은 깨졌다.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 매뉴얼을 무시하는 즉흥성, 경직된 정부시스템, 기업간 갑을관계, 고질적인 납품비리 등 암적인 문제들은 원전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원전 정비 용역업체와 감독자는 시험일정을 무단으로 앞당겼고, 정비 작업자는 감독자의 지시와 절차를 무시했다. 전원중단 시 가동돼야 하는 비상디젤발전기는 정비 허술로 고장난 상태였다. 안전보다 경제성과 생산성을 강조하다 보니 100%에 가까운 원전 가동률을 자랑하면서도 매년 유지관리 비용은 줄여온 결과다.
감시시스템도 문제였다. 고리1호기 관계자들이 사고를 숨기자 한수원 본사는 물론 고리본부와 원자력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주재원들도 모두 사실을 몰랐다. 24시간 원전감시 및 비상문자시스템도 정비중인 원전에 대해서는 먹통이었다.
원자력안전위로도 화살이 돌려졌다. 안전규제를 더 잘하라고 독립기관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원전 주재인력은 더 줄었고, 사고 후 대응도 말이 많았다. 특히 지난 21일 사고 조사결과와 대책 발표현장에서 강창순 위원장이 "고리1호기를 폐쇄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라고 한 발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재가동을 결정하는 잣대는 `마음'이 아니라 엄밀한 객관적 데이터가 돼야 하는데 다른 기관도 아닌, 원자력 안전규제기관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원자력 마피아' 지적을 받을 만한 발언이었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2009년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명목 하에 늘려도 시원찮을 KINS 인력을 구조조정하도록 결정했다. 원자력안전위가 원전 주재 안전점검 인력을 20명에서 1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KINS는 할당숫자를 채우기 위해 올해도 숙련된 전문가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원자력 안전점검 인력은 채용 후 바로 현장으로 갈 수 없고 최소 수년의 기간이 걸린다. 새로운 인력을 뽑아도 기존 인력의 빈자리를 바로 채울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사정은 통하지 않는다. KINS를 비롯한 출연연들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여느 공사나 공기업과 다를 바 없이 정원 등의 규제를 받고 있다. 전문분야를 인정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정부 거버넌스가 낳은 부작용이다.
이번 사고는 국내 원자력계 최대 위기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기술은 연구와 땀으로 보완하면 되지만 한번 무너진 신뢰는 여간해서는 회복하기 힘들다. 문화와 인력, 시스템은 단기간에 쉽게 바꿀 수 없지만 그것들이 가장 핵심이다. 원전 운영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고 반성하고 다시 세우는 노력도 필요하다. 뼈를 깎는 자기 반성과 철저한 쇄신이 있어야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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