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기록, 진화론 `검증`자료로 충분한 의미
`한국이 창조론자의 요구에 항복했다`는 네이처의 기사가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창조론을 주장하는 단체의 요구 때문에 일부 교과서에서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라는 설명과 말의 진화에 대한 낡은 설명이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과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종교적 주장이 과학 교육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문제로 지적된 것은 주로 고등학교 1학년에서 가르치는 `과학`에서 `생명의 진화`를 다루는 부분이다. 교육과정에 따라 지질 시대에 따른 화석의 변화를 통해 생물종의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일부 출판사가 진화의 증거로 제시한 화석 자료가 과학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860년 독일에서 처음 발굴된 시조새의 정체와 말(馬)의 진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화석은 자연에 남아있는 생물의 흔적 중에서 가장 생생한 것이다. 식물이나 동물이 갑작스러운 이유로 퇴적층에 묻힌 상태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지각 작용에 의해 단단한 암석으로 변한 것이 바로 화석이다. 화석은 고생물의 해부학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지질 작용으로 변형된 지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런 화석을 근거로 고생물과 지층을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19세기에 정립된 `고생물학` 또는 `화석학`이다.
지구상에 살던 모든 생물이 화석 기록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죽고 나면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어버리거나 아무 흔적도 없이 분해되어 버린다. 화석이 되기 위해서는 죽은 후에 곧바로 퇴적층에 묻혀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자국이 남거나, 뼈나 이빨처럼 단단한 부위에 광물질이 녹아 들어가서 암석화된 화석이 만들어진다. 지구상의 암석 중에서 그런 화석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은 1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의 몸에 있는 단단한 뼈가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십억 개의 뼈 중에서 하나 정도가 화석으로 남게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의 뼈 중에서 고작 1400여 개가 화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살았던 생물종 중에서 화석 기록을 남긴 경우는 0.00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더욱이 화석 기록은 극도로 왜곡되어 있다. 오늘날 확인된 화석의 95%는 얕은 바다에 살던 생물의 것이다.
그런 화석 기록을 근거로 고생물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조새의 화석이 발견되고 1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조새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화석 기록을 근거로 구체적인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일도 쉽지 않다.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면 진화론적 설명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일부 `과학` 교과서에 소개된 말의 진화 과정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화석 기록을 통해서 생물종의 진화를 설명하는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화석 기록이 진화론을 입증해주는 유일한 과학적 증거라면 화석 기록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해 화석 기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DNA의 화학적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생명과학이 바로 진화론의 완벽한 과학적 증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 화석 기록은 진화론을 `입증`하는 자료가 아니라 `검증`하는 자료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현대 과학에 검증을 위한 치열한 논란과 논쟁은 일상적인 것이다. 그런 논란이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논란을 구실로 현대 과학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과학을 인정한다고 종교적 주장이 힘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이덕환(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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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로 지적된 것은 주로 고등학교 1학년에서 가르치는 `과학`에서 `생명의 진화`를 다루는 부분이다. 교육과정에 따라 지질 시대에 따른 화석의 변화를 통해 생물종의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일부 출판사가 진화의 증거로 제시한 화석 자료가 과학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860년 독일에서 처음 발굴된 시조새의 정체와 말(馬)의 진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화석은 자연에 남아있는 생물의 흔적 중에서 가장 생생한 것이다. 식물이나 동물이 갑작스러운 이유로 퇴적층에 묻힌 상태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지각 작용에 의해 단단한 암석으로 변한 것이 바로 화석이다. 화석은 고생물의 해부학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지질 작용으로 변형된 지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런 화석을 근거로 고생물과 지층을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19세기에 정립된 `고생물학` 또는 `화석학`이다.
지구상에 살던 모든 생물이 화석 기록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죽고 나면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어버리거나 아무 흔적도 없이 분해되어 버린다. 화석이 되기 위해서는 죽은 후에 곧바로 퇴적층에 묻혀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자국이 남거나, 뼈나 이빨처럼 단단한 부위에 광물질이 녹아 들어가서 암석화된 화석이 만들어진다. 지구상의 암석 중에서 그런 화석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은 1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의 몸에 있는 단단한 뼈가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십억 개의 뼈 중에서 하나 정도가 화석으로 남게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의 뼈 중에서 고작 1400여 개가 화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살았던 생물종 중에서 화석 기록을 남긴 경우는 0.00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더욱이 화석 기록은 극도로 왜곡되어 있다. 오늘날 확인된 화석의 95%는 얕은 바다에 살던 생물의 것이다.
그런 화석 기록을 근거로 고생물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조새의 화석이 발견되고 1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조새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화석 기록을 근거로 구체적인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일도 쉽지 않다.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면 진화론적 설명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일부 `과학` 교과서에 소개된 말의 진화 과정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화석 기록을 통해서 생물종의 진화를 설명하는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화석 기록이 진화론을 입증해주는 유일한 과학적 증거라면 화석 기록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해 화석 기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DNA의 화학적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생명과학이 바로 진화론의 완벽한 과학적 증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 화석 기록은 진화론을 `입증`하는 자료가 아니라 `검증`하는 자료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현대 과학에 검증을 위한 치열한 논란과 논쟁은 일상적인 것이다. 그런 논란이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논란을 구실로 현대 과학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과학을 인정한다고 종교적 주장이 힘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이덕환(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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