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의 일종인 매독은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수백년간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그 공포가 오늘날 에이즈에 견줄 만했다. 그런 매독의 공포에서 인류를 구한 것은 한 과학자의 끈질긴 집념이었다.
`화학요법'의 창시자로 불리는독일의 병리학자 폴 에를리히 박사는 10년 간 605번의 실패 끝에 1910년 `살바르산606'이라는 치료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 덕분에 에를리히는 명망높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엄청난 거부 대열에 올랐다. 특히 그 후 많은 과학자들이 치료제 연구에 뛰어들어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 등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제약산업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시작된 것이다.
발명과 발견이 새로운 산업과 성장으로 이어진 예는 그밖에도 많다. 영국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 제조기술을 토대로 제1ㆍ2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력을 떨쳤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성장한 것도 중화학, 전자, 철강, IT 등에 대한 과감한 기술투자 덕분이었다.
경기불황 시기에 과학기술의 역할은 한층 중요해진다. 성장의 씨앗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기술혁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현실로 만들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현 정부 들어 기초연구와 기초과학을 강조하다 보니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우는 대형 장기 프로젝트는 설자리가 좁아졌다. 과학기술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 R&D 사업에서 불안한 미래를 타개할 산업적 씨앗을 발굴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원천연구 사업인 글로벌 프론티어가 있지만 기존 `G7'이나 `21세기 프론티어'에 비해 `산업화 DNA'가 부족하다. 이런 사업은 과학자에게 강력한 권한과 자율성을 주고 연구 초기단계부터 시장을 염두에 둔 연구ㆍ특허전략을 세워야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나마 올해부터 신규 연구단 선정도 무산돼 사업이 크게 축소됐다.
R&D 프로세스 전반을 관통하는 사업화 정책과 지원체계도 부족하다. 첨단 기술사회에서는 실험실에서 갓 만든 기술도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데 현재 기초연구는 대부분 논문 게재로만 끝난다. 연구를 평가하고 관리만 할 게 아니라 시장을 염두에 두고 밀착지원을 해야 한다.
특히 정부부처간 `단절의 계곡' 문제가 심각하다. R&D 정보와 성과가 부처간에 흐르지 않고 부처마다 비슷한 사업을 제각각 추진하는 것. 원자력 분야만 봐도 교과부 산하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중소형원자로가 빛을 보려면 에너지 상용화부처인 지경부가 채택해야 하는데, 지경부는 소형모듈형원전(SMR)이라는 또다른 비슷한 R&D를 기획하고 있다. 교과부의 기초ㆍ원천연구와 지경부의 산업화연구 기능이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 기술이 사장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젠 두 부처의 R&D 역할 차이마저 모호하다.
기업 관계자들은 산업화하려면 너무 많은 투자가 필요해 `그림의 떡'에 가까운 교과부 연구성과를 `먹을 만한 떡'으로 만들기 위한 부처간 공조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교과부가 씨앗기술을 만들면 지경부, 중기청 등이 기업과의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직접 R&D 자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이런 시스템 문제를 풀어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은 삐걱거리는 경제ㆍ산업을 다시 돌게 하는 `엔진'이 돼야 한다. 정부부처와 담당기관들이 부처이기주의와 매너리즘을 버리고 전쟁터의 야전부대 같은 사명감으로 무장해 주기를 바란다.
안경애 정경과학부 차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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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요법'의 창시자로 불리는독일의 병리학자 폴 에를리히 박사는 10년 간 605번의 실패 끝에 1910년 `살바르산606'이라는 치료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 덕분에 에를리히는 명망높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엄청난 거부 대열에 올랐다. 특히 그 후 많은 과학자들이 치료제 연구에 뛰어들어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 등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제약산업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시작된 것이다.
발명과 발견이 새로운 산업과 성장으로 이어진 예는 그밖에도 많다. 영국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 제조기술을 토대로 제1ㆍ2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력을 떨쳤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성장한 것도 중화학, 전자, 철강, IT 등에 대한 과감한 기술투자 덕분이었다.
경기불황 시기에 과학기술의 역할은 한층 중요해진다. 성장의 씨앗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기술혁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현실로 만들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현 정부 들어 기초연구와 기초과학을 강조하다 보니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우는 대형 장기 프로젝트는 설자리가 좁아졌다. 과학기술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 R&D 사업에서 불안한 미래를 타개할 산업적 씨앗을 발굴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원천연구 사업인 글로벌 프론티어가 있지만 기존 `G7'이나 `21세기 프론티어'에 비해 `산업화 DNA'가 부족하다. 이런 사업은 과학자에게 강력한 권한과 자율성을 주고 연구 초기단계부터 시장을 염두에 둔 연구ㆍ특허전략을 세워야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나마 올해부터 신규 연구단 선정도 무산돼 사업이 크게 축소됐다.
R&D 프로세스 전반을 관통하는 사업화 정책과 지원체계도 부족하다. 첨단 기술사회에서는 실험실에서 갓 만든 기술도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데 현재 기초연구는 대부분 논문 게재로만 끝난다. 연구를 평가하고 관리만 할 게 아니라 시장을 염두에 두고 밀착지원을 해야 한다.
특히 정부부처간 `단절의 계곡' 문제가 심각하다. R&D 정보와 성과가 부처간에 흐르지 않고 부처마다 비슷한 사업을 제각각 추진하는 것. 원자력 분야만 봐도 교과부 산하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중소형원자로가 빛을 보려면 에너지 상용화부처인 지경부가 채택해야 하는데, 지경부는 소형모듈형원전(SMR)이라는 또다른 비슷한 R&D를 기획하고 있다. 교과부의 기초ㆍ원천연구와 지경부의 산업화연구 기능이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 기술이 사장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젠 두 부처의 R&D 역할 차이마저 모호하다.
기업 관계자들은 산업화하려면 너무 많은 투자가 필요해 `그림의 떡'에 가까운 교과부 연구성과를 `먹을 만한 떡'으로 만들기 위한 부처간 공조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교과부가 씨앗기술을 만들면 지경부, 중기청 등이 기업과의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직접 R&D 자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이런 시스템 문제를 풀어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은 삐걱거리는 경제ㆍ산업을 다시 돌게 하는 `엔진'이 돼야 한다. 정부부처와 담당기관들이 부처이기주의와 매너리즘을 버리고 전쟁터의 야전부대 같은 사명감으로 무장해 주기를 바란다.
안경애 정경과학부 차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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