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인간 중심으로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과 통섭이 창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떠들썩하다. 그런데 인간을 표방하고 있는 이러한 외침들이 과연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진정성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인간이란 브랜드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판매 전략에 불과한가.
최근 학계나 산업계에서 가장 많이 유포되고 남용되고 있는 용어가 있다면 융합과 통섭일 것이다. 융합은 그 출처가 사실 첨단과학기술의 수렴(convergence)을 오역함으로써 비롯된 해프닝이라고 한다면, 통섭은 인간과 사회를 생물학을 통해서 설명하려는 시도인 통섭(Consilience)을 불교식으로 너무 멋있게 번역하며 생긴 과대광고의 오류이다. 어쨌거나 통섭이란 말이 유행한 이후,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마멸시키며 동일하게 파악하는 지식권력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으로써 인간에게 고유한 삶의 방식과 동물에게 고유한 생존방식이 뒤섞이며 혼돈에 빠진다는 점이다. 과연 동물도 인간도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가?
발칸 반도의 타라캐년에는 산양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 산양이 사는 곳은 모골이 송연하도록 험준한 절벽이다. 이 절벽을 산양은 아슬 아슬하게 타고 넘으며 그곳에 먹이를 구하고 때에 따라서는 가파른 바위틈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생존방식은 위험천만하다. 실제로 이 환경에서 산양은 치명적 사고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생존하는 산양의 경우 포식자에 잡혀 죽는 것보다 절벽에서 추락사하는 비율이 높다.그럼에도 산양은 이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또 이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더 안전한 환경을 찾지도 않는다. 그들은 위험한 그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왜 그럴까. 산양에게는 이곳이 위험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산양이 산양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자신들 고유의 환경이며 그곳에 살며 추락사하는 것도 그들에게 독특한 생존방식이다.그들이 절벽을 기어오르면 사는 것은 인간이 산을 오르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 예컨대 산악인은 위험한곳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오르며 위험을 극복하는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추락사라는 불운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양은 산악인처럼 위험을 선택하는 않는다. 산양은 선택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존재하는 그 생존환경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양들에게는 절벽은 절벽이 아니며 따라서 추락사도 추락사가 아니다. 산양에게는 인간에게 추락사인 그 불운이 그것들이 생존하는 정상적인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그가 사는 곳이 절벽인 경우 그곳을 추락을 위협하는 절벽으로 밝혀내고 그 위험을 피하는 방안을 강구하거나 그곳을 떠난다. 아니면 산악인처럼 절벽을 위험한 절벽으로서 밝혀내고 그 위험을 삶의 어떤 의미로 해석하며 그 의미에 삶을 거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렇게 인간은 존재하는 사물의 의미를 밝혀내고 그 의미에 어떤 태도를 취하며 그 의미와 함께 삶을 창조해가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인간은 동물에 대해서도 동물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내며 동물과 관계하는 동물학이란 학문을 창조한다. 그러나 인간을 닮은 정도로 지능이 높아 보여 유인원이라 불리는 동물조차도 동물학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그가 창조한 동물학을 통해 자신을 동물로 오인하는 융합과 통섭의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인간중심 기술이니 인본주의적 디자인을 외치면서도 스스로를 동물의 세계 속으로 실종시킨다. 이미 일단의 철학자들은 늘 강조했다. 동물은 동물로서의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인간은 인간으로서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동물은 생존하지만, 인간은 실존한다고. 동물은 환경에 살지만, 인간은 풍경에 산다고. 인간의 관계는 사회적이지만, 동물은 무리지어 산다고.
융합과 통섭은 그냥 뒤섞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태를 잘 구별하고 그렇게 구별된 사태들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작업이 없으면, 무지의 향연일 뿐이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최근 학계나 산업계에서 가장 많이 유포되고 남용되고 있는 용어가 있다면 융합과 통섭일 것이다. 융합은 그 출처가 사실 첨단과학기술의 수렴(convergence)을 오역함으로써 비롯된 해프닝이라고 한다면, 통섭은 인간과 사회를 생물학을 통해서 설명하려는 시도인 통섭(Consilience)을 불교식으로 너무 멋있게 번역하며 생긴 과대광고의 오류이다. 어쨌거나 통섭이란 말이 유행한 이후,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마멸시키며 동일하게 파악하는 지식권력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으로써 인간에게 고유한 삶의 방식과 동물에게 고유한 생존방식이 뒤섞이며 혼돈에 빠진다는 점이다. 과연 동물도 인간도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가?
발칸 반도의 타라캐년에는 산양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 산양이 사는 곳은 모골이 송연하도록 험준한 절벽이다. 이 절벽을 산양은 아슬 아슬하게 타고 넘으며 그곳에 먹이를 구하고 때에 따라서는 가파른 바위틈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생존방식은 위험천만하다. 실제로 이 환경에서 산양은 치명적 사고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생존하는 산양의 경우 포식자에 잡혀 죽는 것보다 절벽에서 추락사하는 비율이 높다.그럼에도 산양은 이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또 이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더 안전한 환경을 찾지도 않는다. 그들은 위험한 그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왜 그럴까. 산양에게는 이곳이 위험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산양이 산양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자신들 고유의 환경이며 그곳에 살며 추락사하는 것도 그들에게 독특한 생존방식이다.그들이 절벽을 기어오르면 사는 것은 인간이 산을 오르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 예컨대 산악인은 위험한곳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오르며 위험을 극복하는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추락사라는 불운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양은 산악인처럼 위험을 선택하는 않는다. 산양은 선택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존재하는 그 생존환경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양들에게는 절벽은 절벽이 아니며 따라서 추락사도 추락사가 아니다. 산양에게는 인간에게 추락사인 그 불운이 그것들이 생존하는 정상적인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그가 사는 곳이 절벽인 경우 그곳을 추락을 위협하는 절벽으로 밝혀내고 그 위험을 피하는 방안을 강구하거나 그곳을 떠난다. 아니면 산악인처럼 절벽을 위험한 절벽으로서 밝혀내고 그 위험을 삶의 어떤 의미로 해석하며 그 의미에 삶을 거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렇게 인간은 존재하는 사물의 의미를 밝혀내고 그 의미에 어떤 태도를 취하며 그 의미와 함께 삶을 창조해가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인간은 동물에 대해서도 동물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내며 동물과 관계하는 동물학이란 학문을 창조한다. 그러나 인간을 닮은 정도로 지능이 높아 보여 유인원이라 불리는 동물조차도 동물학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그가 창조한 동물학을 통해 자신을 동물로 오인하는 융합과 통섭의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인간중심 기술이니 인본주의적 디자인을 외치면서도 스스로를 동물의 세계 속으로 실종시킨다. 이미 일단의 철학자들은 늘 강조했다. 동물은 동물로서의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인간은 인간으로서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동물은 생존하지만, 인간은 실존한다고. 동물은 환경에 살지만, 인간은 풍경에 산다고. 인간의 관계는 사회적이지만, 동물은 무리지어 산다고.
융합과 통섭은 그냥 뒤섞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태를 잘 구별하고 그렇게 구별된 사태들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작업이 없으면, 무지의 향연일 뿐이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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