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비전 제시 우선…전문인력 교육시스템도 절실
`제도ㆍ인프라` 개선으로 현장중심 융합 가능케 해야
`제도ㆍ인프라` 개선으로 현장중심 융합 가능케 해야
■ 스타트C 코리아
`과학기술과 ICT 융합` 좌담회
"융합을 이끄는 것은 소프트웨어(SW)인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젊은이들에게 SW에 대한 비전과 욕구를 심어줘야 한다." "전자와 자동차 산업에선 자연스럽게 과학기술과 ICT간 융합이 일어나고 있지만 다른 분야는 아직 미흡하다. 융합 속도를 높이기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관 주도로는 어렵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융합이 일어날 수 있게 제도와 평가,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
지난 26일 `과학기술과 ICT 융합'을 주제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나온 의견들이다. 융합의 핵심은 SW인 만큼 SW인력 육성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아울러 연구현장에서 연구자들이 융합할 수 없게 옥죄는 각종 규제를 푸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 참석자
김창경 전 교과부 차관ㆍ한양대 교수
박재근 한양대 교수ㆍ차세대메모리개발사업단장
윤석진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장
이상목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이희국 (주)LG 사장ㆍLG그룹기술협의회 의장
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ㆍ비트컴퓨터 회장(가나다순)
사회=장윤옥 디지털타임스 생활과학부장
▶사회=과학기술과 ICT, 또 다른 분야와의 융합 이슈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간점검 차원에서 그동안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융합을 추진해야 할지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희국=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최근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미래를 뒤흔들 파괴적 기술을 선정, 발표했다. 모바일인터넷, 지식작업 자동화,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무인자동차, 로봇, 3D 프린팅 등 12가지를 꼽고 각 기술이 세계 경제에 가져올 파급효과를 예측했다. 이 중에는 ICT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ICT, 그 중에서도 SW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의 삶과 일상생활에서 SW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가치를 만드는 것도 SW다. 재료, 유전공학 등 과학기술조차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ICT를 현명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각 분야에서 ICT를 얼마나 더 잘 활용할지를 논의할 때다."
▶김창경=우리나라는 MB 정부에서만 과학기술에 66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과학기술 인프라는 동북아에서 가장 훌륭한 수준이다. 가속기만 해도 5개를 지었거나 짓고 있고, 슈퍼컴퓨터나 첨단 실험장비도 엄청나게 들어서 있다. 이제는 이런 하드웨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는데 이 부분에서 ICT의 역할이 크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 처리에 ICT를 이용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대형 연구 인프라를 연계ㆍ활용하고, 엄청난 신약관련 데이터에서 유미의한 데이터를 뽑아내는 등 과학기술에 ICT가 스며들어 성과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박재근=이제 순수 하드웨어만으론 가치에 한계가 있다. 낸드플래시메모리만 해도 SW 컨트롤러를 붙여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카드로 만들면 부가가치가 딱 두 배가 된다. 대학에서도 네트워크, 반도체, 자동차 등에 ICT를 융합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과학기술 분야도 빅데이터 분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막는 장애물이 있다. 먼저 SW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또 과학기술과 SW 분야가 서로를 잘 모르는 문제가 있다. 전자와 자동차는 산업 트렌드에 따라 자연스럽게 융합으로 가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선 과학기술과 SW 융합이 잘 안되고 있다.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 R&D는 장시간이 걸리고 ICT는 빠르게 변하는 특성이 있고, 양쪽 다 서로의 업 특성을 잘 몰라 두려움도 있다. 본질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조현정=많은 사람들이 융합을 얘기하면서 SW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가장 문제는 사람, 즉 개발자가 없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전공자들조차 졸업작품이라고 내놓는 게 안드로이드 앱 정도다. 그 정도 수준의 인력은 기업이 쓸 수 없다. 고급개발자가 아니라는 거다.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은 비전도, 욕구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 3학년 때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는데, SW를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혼자 공부했다. 비전과 욕구가 있으면 스스로 공부한다. 학생들에게 비전과 욕구를 만드는 일을 사회와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가 교육과정을 대학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다. 정보통신과 컴퓨터공학의 기본은 대학이 하되 임베디드SW 등 전문 영역은 다르게 해야 한다.
▶윤석진=최근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을 많이 비교하는데, 2003년 두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지만 이스라엘은 3만달러로 올라섰고, 우리는 2만달러에 머물러 있다. 이스라엘은 창업 등 무형의 자산 덕분에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우리도 2017년까지 추진하는 3차 과기기본계획에서 R&D의 경제성장 기여도를 40%로 잡고 있다.
이걸 해내려면 ICT와 연계한 융합기술로 가야 한다. 융합연구는 위에서 밀어붙여서는 안 되고 관 주도로 해서도 안 된다. 연구비나 평가로 인센티브를 주니 비로소 연구자들이 움직인다.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평가체계와 제도,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
▶이상목=미래부가 생기기 전 과기 분야는 과기부를, ICT 쪽은 정통부를 만들어달라고 했지 두 분야를 합치는 구도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미래부가 출범하자 어떻게 두 분야를 융합시켜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융합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하지 말라고 해도 현장에서 하고 있다. 문제는 분야에 따라 어떤 곳은 많이 돼 있고, 농업, 의료 등은 규제 때문에 부분적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융합이 잘 되려면 이런 규제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과학기술과 ICT를 떼는 게 더 어렵고, 떼어낸다면 그 자체가 엄청난 퇴보다.
물론 양쪽의 일하는 행태는 약간 다르다. 과기는 장기적이고 ICT는 빠르다. ICT쪽은 과학기술의 분야에 대해 잘 모르고, 서로 알면서 잘 접근하지 못 하는 것도 있다. 정부 내에서도 그렇고 민간에서도 그렇다. 융합을 막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사회=좀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과연 과학기술과 ICT를 어떻게 접근시키는 게 효율적인가.
▶박재근=교수 입장에서는 좋은 연구를 하려면 ICT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연구성과를 우리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벤처창업까지 해보고 싶은데, 거기에 힘쓰다 승진을 못 한다. 교수 업적평가가 논문 위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교수 업적평가 기준 이원화를 추진했지만 안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ICT를 융합해서 논문 외에 응용을 시도해야 하는데, 현 평가체제로는 논문 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벤처 창업도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초기 창업 지원자금을 받기도 힘들다. 미래부가 되면서 대학교수의 벤처창업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규제가 많다.
대학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중급수준 SW교육을 시키는 게 매우 중요한데 미래부가 이같은 노력을 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준다면 빨리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교수들도 큰 그림의 ICT 트렌드는 잘 모른다. 정부가 과학기술과 ICT 융합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고 관련 기획과제에 교수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그럼 그 지식이 학생들에게도 전달되고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이희국=벤처 창업을 활성화하는 데는 토양과 생태계의 문제가 크다.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은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곳이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서 성공하면 조 단위의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벌었다고 시비 거는 사람 없이 모두 박수를 친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토양이 필요하다.
벤처는 빨리 기술과 상품을 개발해서 큰 회사에 팔거나 기업공개를 해서 투자를 회수하고, 다음 창업을 준비한다. 이런 분위기가 되니까 창업이 활발한 것이다. 우리와 분위기가 다르다. 기술과 돈으로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김창경=SW 생태계 문제가 심각하다. 국내에서 제대로 SW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 실력 있는 임베디드SW 전공교수가 10명이 채 안되는 게 우리의 실정이다. 전자상거래, 웹디자인 개발자까지 하면 수십만명이라고 하지만 핵심 SW인재도 부족하다.
SW산업 안에서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고, SW 아키텍트급 인재도 턱없이 부족하다. 삼성전자 SW 인력이 3만6000명이라고 하는데, 해외 개발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개발자를 기르는데 우리는 왜 안되나. 국가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또 원격진료, 생활방사선 모니터링 등을 통해 과학기술과 ICT 융합의 효과를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현정=융합 혁신은 전통 제조산업도 변화시키고 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독일 보쉬는 하이브리드차, 전기차에 맞게 변신하고 있고, 가솔린차가 없어져도 자동차 부품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동차 제조비용의 80%를 ICT가 차지하는 시대가 2030년대 초에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기업에서 SW 인력 수요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전체 ICT 인력 중 95%가 SW인력인데 우리는 74%가 하드웨어 인력이다.
앞으로는 주요 기업 임원진도 SW 전문가가 더 많이 차지해야 할 것이다. SW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학생들에게도 그런 변화를 잘 알리고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사회=융합을 추진하는 데 있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언하자면.
▶박재근=하드웨어 중심으로 성장해온 전자산업에서 SW 중요성이 커졌는데 대학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다. 지금까지 비전과 일자리가 명확치 않다 보니 교수들의 SW 연구 수준이 계속 떨어져 왔다. SW를 연구하는 교수들의 수명이 짧고 마흔살만 되면 교수들이 퇴보된다. 현실성 없는 연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최근 대기업이 채용을 하겠다고 하니 학생들은 많이 몰리는데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들이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이 학교와 협력해 필요한 분야를 교수들이 연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성과가 교육으로 이어진다.
기업은 길어야 5년을 내다보고 R&D를 한다. 10년 뒤를 내다보기는 힘들다. 장기적인 방향에 대한 투자는 정부가 해야 한다. 웨어러블 컴퓨터만 해도 머지 않아 상업화가 될텐데 이를 위해서는 SW가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이런 분야에 대한 장기투자가 힘들다. 위험도가 크고 장기적인 것은 정부가 투자하면 이를 통해 교수가 연구하고 학생을 교육시키고 결과가 기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윤석진=제도는 갖춰져 있는데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일이 많다. 산업계와 교육계, 연구기관간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산촉법)이 만들어졌지만 연구소와 교육기관의 융합이 여전히 쉽지 않다. 출연연과 대학이 융합대학원을 만드는 경우 미래부는 출연연 연구원도 교수로 인정해 주는데 교육 쪽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부처별로 융합에 대한 분위기가 다르다. 융합이 현장에서 일어나려면 이런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
▶이상목=무엇보다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IMF 이후로 이공계 기피문제 얘기가 계속 나온다. 과학기술도 SW도 비전이 없으면 우수한 사람이 안 온다. 이번 기회에 성공사례를 보여줘서 실력 있는 인재들에게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할 역할이 크다.
▶조현정=정부부터 제값 주는 게 필요하다. SW 유지보수비를 올린다고 해도 걱정인 게, 전체 SW예산을 늘리지 않으면서 유지보수비만 올리면 나아지는 게 없다. SW 최저입찰제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다. 머릿수 세기 식으로 고급기술자 몇 명, 중급기술자 몇 명 세어서 돈을 주는 방식을 유지하는 한 절대로 창의적 개발자가 안 나온다. 미래부에 힘이 주어질 때 그걸 깨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우리 회사는 정부 사업을 안 해서 30년간 살아 남아있는 것이다.
▶박재근=정부가 이런저런 발표는 하는데 대학도 그렇고 중소기업도 그렇고 피부로 다가오는 게 없다. 몇 가지 규제만 풀어주면 된다.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벤처기업 CEO 연대보증 완화가 대표적이다. 대학교수의 벤처창업을 위한 휴직제 도입, R&BD(사업화연계기술개발) 사업 규모 획기적 확대도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자동으로 벤처창업이나 기술사업화가 된다.
▶김창경=국가의 중요한 역할은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 사례에서 보듯이 국민들에게 유전자 검사에 대한 수요가 있다. 국가가 그런 수요에 대응해 보조금을 주든지 해서 시장을 만들어줄 것을 제안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3D 프린팅 분야도 아직은 우리의 경쟁력이 약한데 국가가 시장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미래부의 무한상상실, 산업부의 기술공작실도 3D 프린터 시장 형성과 연계할 수 있다.
아울러 대학 반값등록금 예산이 올해 2조7000억원인데, 이를 그냥 학생들에게 줄 게 아니라 사회적 기업 등 학생들이 뭔가를 시도하게 하는 시드머니로 쓰면 좋겠다. 실패하더라도 실패를 통해 배우면 나가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SW업계가 양극화돼 있어서 삼성이나 현대차가 인력을 싹쓸이하면 중소기업은 데려갈 인력이 없는데, 이런 건 국가가 해줘야 한다. 국가적으로 `중소기업 SW119' 같은 조직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희국=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문제의식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문제를 잘 정의하면 좋은 SW를 만들 수 있다. 그걸 직접 구현하는 것은 인재를 고용해서 하면 된다. 뭐가 돈이 되고 남들에게 환영받을지 문제를 잘 정의할 수 있으면 벤처 활성화로도 이어진다.
▶김창경=그렇다. 결국 창의적인 생각은 교육의 문제다. 교사를 기르는 사범대학부터 과학과 ICT 융합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과학기술과 ICT 융합` 좌담회
"융합을 이끄는 것은 소프트웨어(SW)인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젊은이들에게 SW에 대한 비전과 욕구를 심어줘야 한다." "전자와 자동차 산업에선 자연스럽게 과학기술과 ICT간 융합이 일어나고 있지만 다른 분야는 아직 미흡하다. 융합 속도를 높이기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관 주도로는 어렵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융합이 일어날 수 있게 제도와 평가,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
지난 26일 `과학기술과 ICT 융합'을 주제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나온 의견들이다. 융합의 핵심은 SW인 만큼 SW인력 육성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아울러 연구현장에서 연구자들이 융합할 수 없게 옥죄는 각종 규제를 푸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 참석자
김창경 전 교과부 차관ㆍ한양대 교수
박재근 한양대 교수ㆍ차세대메모리개발사업단장
윤석진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장
이상목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이희국 (주)LG 사장ㆍLG그룹기술협의회 의장
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ㆍ비트컴퓨터 회장(가나다순)
사회=장윤옥 디지털타임스 생활과학부장
▶사회=과학기술과 ICT, 또 다른 분야와의 융합 이슈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간점검 차원에서 그동안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융합을 추진해야 할지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희국=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최근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미래를 뒤흔들 파괴적 기술을 선정, 발표했다. 모바일인터넷, 지식작업 자동화,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무인자동차, 로봇, 3D 프린팅 등 12가지를 꼽고 각 기술이 세계 경제에 가져올 파급효과를 예측했다. 이 중에는 ICT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ICT, 그 중에서도 SW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의 삶과 일상생활에서 SW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가치를 만드는 것도 SW다. 재료, 유전공학 등 과학기술조차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ICT를 현명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각 분야에서 ICT를 얼마나 더 잘 활용할지를 논의할 때다."
▶김창경=우리나라는 MB 정부에서만 과학기술에 66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과학기술 인프라는 동북아에서 가장 훌륭한 수준이다. 가속기만 해도 5개를 지었거나 짓고 있고, 슈퍼컴퓨터나 첨단 실험장비도 엄청나게 들어서 있다. 이제는 이런 하드웨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는데 이 부분에서 ICT의 역할이 크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 처리에 ICT를 이용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대형 연구 인프라를 연계ㆍ활용하고, 엄청난 신약관련 데이터에서 유미의한 데이터를 뽑아내는 등 과학기술에 ICT가 스며들어 성과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박재근=이제 순수 하드웨어만으론 가치에 한계가 있다. 낸드플래시메모리만 해도 SW 컨트롤러를 붙여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카드로 만들면 부가가치가 딱 두 배가 된다. 대학에서도 네트워크, 반도체, 자동차 등에 ICT를 융합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과학기술 분야도 빅데이터 분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막는 장애물이 있다. 먼저 SW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또 과학기술과 SW 분야가 서로를 잘 모르는 문제가 있다. 전자와 자동차는 산업 트렌드에 따라 자연스럽게 융합으로 가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선 과학기술과 SW 융합이 잘 안되고 있다.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 R&D는 장시간이 걸리고 ICT는 빠르게 변하는 특성이 있고, 양쪽 다 서로의 업 특성을 잘 몰라 두려움도 있다. 본질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조현정=많은 사람들이 융합을 얘기하면서 SW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가장 문제는 사람, 즉 개발자가 없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전공자들조차 졸업작품이라고 내놓는 게 안드로이드 앱 정도다. 그 정도 수준의 인력은 기업이 쓸 수 없다. 고급개발자가 아니라는 거다.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은 비전도, 욕구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 3학년 때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는데, SW를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혼자 공부했다. 비전과 욕구가 있으면 스스로 공부한다. 학생들에게 비전과 욕구를 만드는 일을 사회와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가 교육과정을 대학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다. 정보통신과 컴퓨터공학의 기본은 대학이 하되 임베디드SW 등 전문 영역은 다르게 해야 한다.
▶윤석진=최근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을 많이 비교하는데, 2003년 두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지만 이스라엘은 3만달러로 올라섰고, 우리는 2만달러에 머물러 있다. 이스라엘은 창업 등 무형의 자산 덕분에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우리도 2017년까지 추진하는 3차 과기기본계획에서 R&D의 경제성장 기여도를 40%로 잡고 있다.
이걸 해내려면 ICT와 연계한 융합기술로 가야 한다. 융합연구는 위에서 밀어붙여서는 안 되고 관 주도로 해서도 안 된다. 연구비나 평가로 인센티브를 주니 비로소 연구자들이 움직인다.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평가체계와 제도,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
▶이상목=미래부가 생기기 전 과기 분야는 과기부를, ICT 쪽은 정통부를 만들어달라고 했지 두 분야를 합치는 구도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미래부가 출범하자 어떻게 두 분야를 융합시켜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융합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하지 말라고 해도 현장에서 하고 있다. 문제는 분야에 따라 어떤 곳은 많이 돼 있고, 농업, 의료 등은 규제 때문에 부분적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융합이 잘 되려면 이런 규제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과학기술과 ICT를 떼는 게 더 어렵고, 떼어낸다면 그 자체가 엄청난 퇴보다.
물론 양쪽의 일하는 행태는 약간 다르다. 과기는 장기적이고 ICT는 빠르다. ICT쪽은 과학기술의 분야에 대해 잘 모르고, 서로 알면서 잘 접근하지 못 하는 것도 있다. 정부 내에서도 그렇고 민간에서도 그렇다. 융합을 막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사회=좀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과연 과학기술과 ICT를 어떻게 접근시키는 게 효율적인가.
▶박재근=교수 입장에서는 좋은 연구를 하려면 ICT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연구성과를 우리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벤처창업까지 해보고 싶은데, 거기에 힘쓰다 승진을 못 한다. 교수 업적평가가 논문 위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교수 업적평가 기준 이원화를 추진했지만 안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ICT를 융합해서 논문 외에 응용을 시도해야 하는데, 현 평가체제로는 논문 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벤처 창업도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초기 창업 지원자금을 받기도 힘들다. 미래부가 되면서 대학교수의 벤처창업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규제가 많다.
대학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중급수준 SW교육을 시키는 게 매우 중요한데 미래부가 이같은 노력을 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준다면 빨리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교수들도 큰 그림의 ICT 트렌드는 잘 모른다. 정부가 과학기술과 ICT 융합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고 관련 기획과제에 교수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그럼 그 지식이 학생들에게도 전달되고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이희국=벤처 창업을 활성화하는 데는 토양과 생태계의 문제가 크다.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은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곳이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서 성공하면 조 단위의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벌었다고 시비 거는 사람 없이 모두 박수를 친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토양이 필요하다.
벤처는 빨리 기술과 상품을 개발해서 큰 회사에 팔거나 기업공개를 해서 투자를 회수하고, 다음 창업을 준비한다. 이런 분위기가 되니까 창업이 활발한 것이다. 우리와 분위기가 다르다. 기술과 돈으로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김창경=SW 생태계 문제가 심각하다. 국내에서 제대로 SW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 실력 있는 임베디드SW 전공교수가 10명이 채 안되는 게 우리의 실정이다. 전자상거래, 웹디자인 개발자까지 하면 수십만명이라고 하지만 핵심 SW인재도 부족하다.
SW산업 안에서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고, SW 아키텍트급 인재도 턱없이 부족하다. 삼성전자 SW 인력이 3만6000명이라고 하는데, 해외 개발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개발자를 기르는데 우리는 왜 안되나. 국가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또 원격진료, 생활방사선 모니터링 등을 통해 과학기술과 ICT 융합의 효과를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현정=융합 혁신은 전통 제조산업도 변화시키고 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독일 보쉬는 하이브리드차, 전기차에 맞게 변신하고 있고, 가솔린차가 없어져도 자동차 부품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동차 제조비용의 80%를 ICT가 차지하는 시대가 2030년대 초에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기업에서 SW 인력 수요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전체 ICT 인력 중 95%가 SW인력인데 우리는 74%가 하드웨어 인력이다.
앞으로는 주요 기업 임원진도 SW 전문가가 더 많이 차지해야 할 것이다. SW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학생들에게도 그런 변화를 잘 알리고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사회=융합을 추진하는 데 있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언하자면.
▶박재근=하드웨어 중심으로 성장해온 전자산업에서 SW 중요성이 커졌는데 대학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다. 지금까지 비전과 일자리가 명확치 않다 보니 교수들의 SW 연구 수준이 계속 떨어져 왔다. SW를 연구하는 교수들의 수명이 짧고 마흔살만 되면 교수들이 퇴보된다. 현실성 없는 연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최근 대기업이 채용을 하겠다고 하니 학생들은 많이 몰리는데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들이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이 학교와 협력해 필요한 분야를 교수들이 연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성과가 교육으로 이어진다.
기업은 길어야 5년을 내다보고 R&D를 한다. 10년 뒤를 내다보기는 힘들다. 장기적인 방향에 대한 투자는 정부가 해야 한다. 웨어러블 컴퓨터만 해도 머지 않아 상업화가 될텐데 이를 위해서는 SW가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이런 분야에 대한 장기투자가 힘들다. 위험도가 크고 장기적인 것은 정부가 투자하면 이를 통해 교수가 연구하고 학생을 교육시키고 결과가 기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윤석진=제도는 갖춰져 있는데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일이 많다. 산업계와 교육계, 연구기관간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산촉법)이 만들어졌지만 연구소와 교육기관의 융합이 여전히 쉽지 않다. 출연연과 대학이 융합대학원을 만드는 경우 미래부는 출연연 연구원도 교수로 인정해 주는데 교육 쪽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부처별로 융합에 대한 분위기가 다르다. 융합이 현장에서 일어나려면 이런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
▶이상목=무엇보다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IMF 이후로 이공계 기피문제 얘기가 계속 나온다. 과학기술도 SW도 비전이 없으면 우수한 사람이 안 온다. 이번 기회에 성공사례를 보여줘서 실력 있는 인재들에게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할 역할이 크다.
▶조현정=정부부터 제값 주는 게 필요하다. SW 유지보수비를 올린다고 해도 걱정인 게, 전체 SW예산을 늘리지 않으면서 유지보수비만 올리면 나아지는 게 없다. SW 최저입찰제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다. 머릿수 세기 식으로 고급기술자 몇 명, 중급기술자 몇 명 세어서 돈을 주는 방식을 유지하는 한 절대로 창의적 개발자가 안 나온다. 미래부에 힘이 주어질 때 그걸 깨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우리 회사는 정부 사업을 안 해서 30년간 살아 남아있는 것이다.
▶박재근=정부가 이런저런 발표는 하는데 대학도 그렇고 중소기업도 그렇고 피부로 다가오는 게 없다. 몇 가지 규제만 풀어주면 된다.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벤처기업 CEO 연대보증 완화가 대표적이다. 대학교수의 벤처창업을 위한 휴직제 도입, R&BD(사업화연계기술개발) 사업 규모 획기적 확대도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자동으로 벤처창업이나 기술사업화가 된다.
▶김창경=국가의 중요한 역할은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 사례에서 보듯이 국민들에게 유전자 검사에 대한 수요가 있다. 국가가 그런 수요에 대응해 보조금을 주든지 해서 시장을 만들어줄 것을 제안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3D 프린팅 분야도 아직은 우리의 경쟁력이 약한데 국가가 시장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미래부의 무한상상실, 산업부의 기술공작실도 3D 프린터 시장 형성과 연계할 수 있다.
아울러 대학 반값등록금 예산이 올해 2조7000억원인데, 이를 그냥 학생들에게 줄 게 아니라 사회적 기업 등 학생들이 뭔가를 시도하게 하는 시드머니로 쓰면 좋겠다. 실패하더라도 실패를 통해 배우면 나가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SW업계가 양극화돼 있어서 삼성이나 현대차가 인력을 싹쓸이하면 중소기업은 데려갈 인력이 없는데, 이런 건 국가가 해줘야 한다. 국가적으로 `중소기업 SW119' 같은 조직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희국=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문제의식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문제를 잘 정의하면 좋은 SW를 만들 수 있다. 그걸 직접 구현하는 것은 인재를 고용해서 하면 된다. 뭐가 돈이 되고 남들에게 환영받을지 문제를 잘 정의할 수 있으면 벤처 활성화로도 이어진다.
▶김창경=그렇다. 결국 창의적인 생각은 교육의 문제다. 교사를 기르는 사범대학부터 과학과 ICT 융합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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