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곱씹어 봐도 왜 `꼴`이 안 좋은 뜻으로 쓰이는지 그 영문을 모르겠다. 순 한글보단 한자어가 격식을 갖춘, 한층 격조 높은 표현이란 편견에서 벗어나면 말이다. `세모 모양', `네모난 모양'이란 표현보단 `세모꼴', `네모꼴'이 왠지 더 정겹게 느껴져서만은 아니다. 글자 그대로 `꼴값을 하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던가?
공자에겐 자로(子路)라는 우락부락한 제자가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캐릭터의 선행주자라고나 할까? 행동이 늘 앞서는 그였기에 공자는, 그가 제 명에 죽지 못할까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 자로가 하루는 공자의 방으로 우당탕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대뜸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께 정사를 맡기고자 하시는데, 선생님께선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라 여쭸다. 이에 공자는 차분한 어조로 "반드시 이름값을 바로잡을 것이다."고 답했다. 뭔가 거창한 일을 하실 거라며 잔뜩 기대했던 자로는 순간 "고작 그거십니까? 역시 선생님께선 세상물정에 어두우시군요. 그걸 뭐 하자고 바로잡자는 겁니까?"며 돌직구를 날렸다. 공자 또한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 들판 같은 녀석아!"라는 말로.
사실 공자는 다른 제자에 비해 자로를 무척 아꼈고, 자로 또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넘칠 정도로 각별했다. 그런 사제지간에 이런 험한 말이 오고갔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표면적으로는 말뿐 아니라 행동도 돌직구였던 자로의 언행이 사단이 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름값[名分]'과 `이름[名]'을 구분하지 못했던 자로의 모자람이 놓여 있었다. 곧 위의 일화는, 공자가 말한 것은 이름값이었는데 자로가 이를 이름으로 오인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이름과 이름값은 매우 다르다. 이름은 사회적 현실과 괴리될 수도 있지만 이름값은 결코 그럴 수가 없다. 예컨대 임금의 자리가 필요 없는 민주공화국이 들어섰다고 하여 임금이란 이름도 덩달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임금의 이름값은 무의미해진다. 아무리 그 이름값을 잘 구현한다고 해도, 하여 봉건시대였다면 틀림없이 성군이라 칭송받았을지라도, 임금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 없으면 그건 사족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이름값을 바로잡는 행위는 철저하게 사회적 현실과 연동되어 있지만, 이름을 바로잡는 행위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행위에 머물 수도 있다. 자로는 공자가 이름을 중시하는 줄로 알고는 그만 "세상물정에 어둡다"고 거칠게 비판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자로는 이름값에 주목하는 태도가 얼마나 매서운 일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삼국지>를 보면 날선 질문을 던져 조조를 종종 궁지로 몰던 공융(孔融)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는 조조에게 미움을 받아 결국 죽임을 당했는데, 실제 역사에서 조조가 그를 죽일 때 붙인 죄목은 `불효죄'였다. 언젠가 공융은,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으면 설사 그가 굶주린다고 해도 자신의 식량은 다른 좋은 이에게 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조조는 이를 빌미 삼아 눈엣가시 같던 공융을 죽였는데, 실제로 공융은 당시에 이름난 효자였다. 그의 부친은 이름만 아버지였던 이가 아니라 그 이름값을 온전히 행한 `아버지다운' 아버지였던 것이다.
`꼴`과 `꼴값`의 차이도 이러하다. 사회적 현실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꼴이 아니라 그것의 값이다. 꼴 그 자체가 아니라 꼴값을 치렀냐가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꼴은 분명 사람인데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한다면 사람이 아닌 것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금메달리스트에 값하지 못했다면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살아다보면, 경우에 따라선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까지 적잖은 꼴을 띠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그 꼴에 값하며 살아왔을까? 하여 `꼴값` 하는 삶은 기본을 넘어 정말로 멋진 삶인 게다. 꼴값도 못하는 주책 같은 인생들이 득세하든 말든 간에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공자에겐 자로(子路)라는 우락부락한 제자가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캐릭터의 선행주자라고나 할까? 행동이 늘 앞서는 그였기에 공자는, 그가 제 명에 죽지 못할까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 자로가 하루는 공자의 방으로 우당탕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대뜸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께 정사를 맡기고자 하시는데, 선생님께선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라 여쭸다. 이에 공자는 차분한 어조로 "반드시 이름값을 바로잡을 것이다."고 답했다. 뭔가 거창한 일을 하실 거라며 잔뜩 기대했던 자로는 순간 "고작 그거십니까? 역시 선생님께선 세상물정에 어두우시군요. 그걸 뭐 하자고 바로잡자는 겁니까?"며 돌직구를 날렸다. 공자 또한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 들판 같은 녀석아!"라는 말로.
사실 공자는 다른 제자에 비해 자로를 무척 아꼈고, 자로 또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넘칠 정도로 각별했다. 그런 사제지간에 이런 험한 말이 오고갔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표면적으로는 말뿐 아니라 행동도 돌직구였던 자로의 언행이 사단이 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름값[名分]'과 `이름[名]'을 구분하지 못했던 자로의 모자람이 놓여 있었다. 곧 위의 일화는, 공자가 말한 것은 이름값이었는데 자로가 이를 이름으로 오인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이름과 이름값은 매우 다르다. 이름은 사회적 현실과 괴리될 수도 있지만 이름값은 결코 그럴 수가 없다. 예컨대 임금의 자리가 필요 없는 민주공화국이 들어섰다고 하여 임금이란 이름도 덩달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임금의 이름값은 무의미해진다. 아무리 그 이름값을 잘 구현한다고 해도, 하여 봉건시대였다면 틀림없이 성군이라 칭송받았을지라도, 임금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 없으면 그건 사족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이름값을 바로잡는 행위는 철저하게 사회적 현실과 연동되어 있지만, 이름을 바로잡는 행위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행위에 머물 수도 있다. 자로는 공자가 이름을 중시하는 줄로 알고는 그만 "세상물정에 어둡다"고 거칠게 비판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자로는 이름값에 주목하는 태도가 얼마나 매서운 일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삼국지>를 보면 날선 질문을 던져 조조를 종종 궁지로 몰던 공융(孔融)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는 조조에게 미움을 받아 결국 죽임을 당했는데, 실제 역사에서 조조가 그를 죽일 때 붙인 죄목은 `불효죄'였다. 언젠가 공융은,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으면 설사 그가 굶주린다고 해도 자신의 식량은 다른 좋은 이에게 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조조는 이를 빌미 삼아 눈엣가시 같던 공융을 죽였는데, 실제로 공융은 당시에 이름난 효자였다. 그의 부친은 이름만 아버지였던 이가 아니라 그 이름값을 온전히 행한 `아버지다운' 아버지였던 것이다.
`꼴`과 `꼴값`의 차이도 이러하다. 사회적 현실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꼴이 아니라 그것의 값이다. 꼴 그 자체가 아니라 꼴값을 치렀냐가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꼴은 분명 사람인데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한다면 사람이 아닌 것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금메달리스트에 값하지 못했다면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살아다보면, 경우에 따라선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까지 적잖은 꼴을 띠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그 꼴에 값하며 살아왔을까? 하여 `꼴값` 하는 삶은 기본을 넘어 정말로 멋진 삶인 게다. 꼴값도 못하는 주책 같은 인생들이 득세하든 말든 간에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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