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 시절, 커다란 사고나 재난 뉴스를 보면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꾸려지는 것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료센터인 것을 보고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사고가 나면 으레 사고 원인 수사와 보상 협의를 위한 사고 대책반이나 합동분향소 정도가 마련되는 것을 보고 자란 터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최근 모 방송국이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관계자 모두 심리치료를 받도록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는 우리 사회도 트라우마와 심리치료에 대한 인식이 커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변연계라는 부분에는 외부 자극에 대하여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 자극에 대하여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하는 정보 처리 시스템이 있다.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인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변연계의 정보 처리 시스템에 커다란 혼란이 생긴다. 문제는 위험한 상황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이러한 시스템의 변화가 계속 유지될 때, 그 후유증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난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트라우마의 기억이 강렬한 신체 감각들과 이미지, 정서의 상태로 조각조각 분리되어 통합적인 이야기 형식의 기억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저장됨으로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서둘러 심리치료를 하는 것은 트라우마의 기억을 언어나 이미지의 형태로 정리하고 통합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그 후유증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엄청난 외부 충격을 받은 사람이 그 강렬한 심리적 반응을 쉽사리 언어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미지의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 가장 용이하고 안전하다. 그런 점에서 심리치료 작업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미술이다. 미술은 시각언어를 통해 무의식을 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전환시켜 줄 뿐만 아니라, 미술 행위 자체를 통해 괴롭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배출하는 정화 작용이 일어나 심리적 안도감을 준다.
미술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한 미술가들의 예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대표적 실례로 독일의 대표적인 화가 오토 딕스를 꼽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기관총병으로 참전했던 오토 딕스는 `탄환 충격'이라 불리던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작가이다. 1915년 9월부터 1918년 12월까지 제1차 세계대전의 거의 전 기간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보냈던 오토 딕스는 "전쟁이 끝나고 수년 동안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는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난 길을 포복을 하여 벗어나려 애쓰지만 결국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꿈이었다." 전형적인 외상성 악몽에 시달리던 오토 딕스는 1924년 동판화 연작인 <전쟁>을 발표하고, 1929년부터 1932년까지 4년에 걸쳐 대작 <전쟁제단화>를 완성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은 일종의 퇴마 행위이다. …나는 많은 것을 그렸다. 전쟁, 악몽, 무시무시한 것들… 그림은 자신 내면에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내 안에는 엄청난 혼돈이 있다." 이 말은 전쟁이란 트라우마를 그림을 통해 이미지화 하고, 동시에 그런 과정을 통해 내면의 안정을 찾았음을 증언하고 있다. 마치 미술치료의 전도사로서 간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 간증에 감동한 나는 독일 드레스덴의 신 거장 미술관을 빛내고 있는 오토 딕스의 <전쟁 제단화>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오토 딕스가 경험한 전쟁의 이미지는 내가 직접 경험했던 군대 생활과 간접 경험했던 육이오를 포함한 걸프전, 세르비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 등등의 온갖 형태의 전쟁 트라우마를 떠올리고, 동시에 그 고통과 공포를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이러한 소통 현상을 뇌과학자들은 `변연계 공명'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미술은 이처럼 소통을 통한 치유까지 베푼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존재이다.
김승환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리 뇌의 변연계라는 부분에는 외부 자극에 대하여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 자극에 대하여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하는 정보 처리 시스템이 있다.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인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변연계의 정보 처리 시스템에 커다란 혼란이 생긴다. 문제는 위험한 상황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이러한 시스템의 변화가 계속 유지될 때, 그 후유증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난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트라우마의 기억이 강렬한 신체 감각들과 이미지, 정서의 상태로 조각조각 분리되어 통합적인 이야기 형식의 기억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저장됨으로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서둘러 심리치료를 하는 것은 트라우마의 기억을 언어나 이미지의 형태로 정리하고 통합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그 후유증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엄청난 외부 충격을 받은 사람이 그 강렬한 심리적 반응을 쉽사리 언어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미지의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 가장 용이하고 안전하다. 그런 점에서 심리치료 작업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미술이다. 미술은 시각언어를 통해 무의식을 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전환시켜 줄 뿐만 아니라, 미술 행위 자체를 통해 괴롭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배출하는 정화 작용이 일어나 심리적 안도감을 준다.
미술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한 미술가들의 예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대표적 실례로 독일의 대표적인 화가 오토 딕스를 꼽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기관총병으로 참전했던 오토 딕스는 `탄환 충격'이라 불리던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작가이다. 1915년 9월부터 1918년 12월까지 제1차 세계대전의 거의 전 기간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보냈던 오토 딕스는 "전쟁이 끝나고 수년 동안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는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난 길을 포복을 하여 벗어나려 애쓰지만 결국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꿈이었다." 전형적인 외상성 악몽에 시달리던 오토 딕스는 1924년 동판화 연작인 <전쟁>을 발표하고, 1929년부터 1932년까지 4년에 걸쳐 대작 <전쟁제단화>를 완성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은 일종의 퇴마 행위이다. …나는 많은 것을 그렸다. 전쟁, 악몽, 무시무시한 것들… 그림은 자신 내면에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내 안에는 엄청난 혼돈이 있다." 이 말은 전쟁이란 트라우마를 그림을 통해 이미지화 하고, 동시에 그런 과정을 통해 내면의 안정을 찾았음을 증언하고 있다. 마치 미술치료의 전도사로서 간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 간증에 감동한 나는 독일 드레스덴의 신 거장 미술관을 빛내고 있는 오토 딕스의 <전쟁 제단화>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오토 딕스가 경험한 전쟁의 이미지는 내가 직접 경험했던 군대 생활과 간접 경험했던 육이오를 포함한 걸프전, 세르비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 등등의 온갖 형태의 전쟁 트라우마를 떠올리고, 동시에 그 고통과 공포를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이러한 소통 현상을 뇌과학자들은 `변연계 공명'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미술은 이처럼 소통을 통한 치유까지 베푼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존재이다.
김승환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