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955.42원 3개월새 최저점 … 가격경쟁력 수익성 악화
원·엔 재정환율이 지난달 초 최근 3개월 간 최고점을 찍은 뒤 한 달 넘게 하강곡선을 그리며 엔저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지며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종가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955.42원으로 최근 3개월 간 최저점을 기록했다. 원·엔 환율은 지난달 8일 1017.48원으로 3개월 간 최고점을 찍은 이후 이달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997.46원으로 1000원대가 무너졌고, 같은 달 27일 975원까지 내려갔다. 이달 12일에는 964.56원을 기록하며 2008년 8월 이후 최저점을 찍었다. 특히 18일에는 958.06원까지 내려앉아 900원대 중반대 벽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외에서도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가 유지되면서 엔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까지 105엔대에 머물던 엔·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상승하기 시작해 지난 11일 106엔대 후반까지 올라 2008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지난 19일 오전에는 109.46엔까지 치솟았다. 한 외환 전문가는 "지난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일본 경제지표가 악화되면서 일본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확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엔저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엔저가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빨간불이 켜졌다. 무역협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수출을 하는 기업 중 92.6%가 엔저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일본 수입수요 감소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해외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싸워야 하는 기업은 낮아진 가격경쟁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과 경쟁 품목이 겹치는 IT·전자, 자동차 업종에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한 디스플레이 제조사 관계자는 "일본 기업과 가격으로 경쟁을 하다보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보다 엔저가 더 심화되면 한국 제조사들의 어려움은 더 가중될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엔저는 수출 중소기업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세계경기 둔화로 수요가 늘지 않는 상황에 엔저가 겹치면서 국내 기업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상대적으로 가격경쟁력 의존도가 높은 중소 수출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엔저 현상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일 여력이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플라스틱 제조업체 대표는 "엔저 현상이 일시적인 상황이 아닌 만큼 일본 업체와 경쟁 분야에 있는 업체들은 이미 수출 지역을 변경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책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본에 직접 수출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굳이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대비할 여력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 올 상반기 중소기업중앙회가 86개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기업의 30% 이상은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거나 품질 기술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환율 변동 보험 또는 선물환을 활용해 엔저에 대비하겠다는 기업의 비중은 3.2% 수준에 불과했다.
무역보험공사가 최근 수출 중소·중견기업 35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기업의 74%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 대비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환변동보험을 이용한다고 답한 중소·중견기업은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중소기업들의 이 같은 인식을 반영한 듯 무보는 지난 19일 중소기업청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중소기업의 무역보험(보증)과 환변동보험 가입 우대, 가입비 지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워 엔저로 인한 일본 기업들의 강세에 대응하는 것 외에도 환율 변동 등 대외변수에 따른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수출중소기업과 수출초보기업의 경우 무역거래에 대한 환율 변동 지원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영진·유근일기자 artjuc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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