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필요성에만 공감 실효성있는 정책은 없어
정책 주체성 회복해 선제적 정책 펴야
좋은 정책 성과 내도록 국가의제 저속화 막아야
정책 주체성 회복해 선제적 정책 펴야
좋은 정책 성과 내도록 국가의제 저속화 막아야
![[시론] IMF가 지적한 한국경제 과제](http://contents.dt.co.kr/images/201502/2015022302102351607002[1].jpg "[시론] IMF가 지적한 한국경제 과제")
지난 2월 13일 IMF(국제통화기금)는 "한국경제가 저조한 내수, 낮은 인플레, 대외 불확실성 증가, 비제조업분야 생산성 저하, 과도한 수출의존도와 수출성장세 정체, 급속한 고령화로 위험하나, 낮은 단기 차입금, 풍부한 외환보유고, 가계부채 안정성과 구조개선 여지 등을 발판으로 잘만 개혁하면, 올해 3.7%내외의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내 놓았다. 정확한 분석이고 고마운 지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처방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 멋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처방은 내게 참으로 허망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 진단은 "시험문제가 어렵게 출제되면 시험성적이 떨어질 것이나, 시험이 점차 쉽게 출제되고 있어 열심히 하면 앞으로 성적이 오를 것이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게 들렸기 때문이다.
잘 안다! 올바른 진단과 올바른 처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어렵지 않다면,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몸을 상하는 일도, 의료사고도 자주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암치료를 포기하고 죽기 전까지의 고통이나마 줄여보자는 무기력한 처방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 무려 45억년 동안 진화한, 그 복잡한 생명체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질병을 치료해 내는 진료도 이미 보편화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비해, 불과 수백년의 짧은 역사속에서 제도화된 국가경제사회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가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이것은 지식인으로서, 정책담당자로서, 위정자로서 '직무유기'임에 틀림없다.
IMF의 한국경제 진단, "앞으로 시험문제가 어렵게 출제될 소지도 없지 않으니, 개혁하여 열심히 준비해 두라"는 고언,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진단과 경고는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IMF의 충고가 효과를 발하기 전에 충족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는 얘기다.
첫째 다가오는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하고 있는 위기상황이 무엇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위기상황을 누가, 어떻게 조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주체가 정치적 야합에 의해 나뉘어 있어 늘 갈등과 싸움만 반복하고 있고, 개혁의 필요성에만 공감할 뿐 실효성이 있는 개혁 프로그램은 못 만들어 내고 있다. 창조경제, 상생협력, 경제민주화, 복지, 신성장동력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둘째, 조속히 '정책의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내가 진단하는 우리의 최대 약점중 하나는 '남의 시선에 판단을 의존하려는 심리적 열등감'이다. 우리나라의 토착질병을 치유하는데 백인 또는 흑인을 위한 외국의 처방을 적용할 수는 없다.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이 아무리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시간과 대상을 무시한 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미국의 '양적완화'가 성공한 이유는 그 정책이 '선제적'이었다는 데에 있다. 늘 남의 눈치만 보는 우리가 정책의 주체성을 먼저 확보하지 않으면, 절대로 '선제적 정책'을 펴지 못할 것이며, 선제성이 가져다 주는 정책효과를 얻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셋째, 국가정책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 국가의 주요 정치, 사회, 경제에 관한 정책이 이해관계자간 야합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주요 국가의제가 세속화, 저속화되어서는 곤란하다. 국가정책이 이해관계자간 타협의 대상이 되거나,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김영란법, 관피아방지법, 클라우드발전법, 700㎒대역 할당, 광고총량규제, 유료방송합산규제 등에 관한 논쟁이 그러하다.
좋은 정책성과는 좋은 풍토에서 나온다. 풍토를 황폐화시키면서, 내 작물이 좋으니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쟁은 허망할 뿐이다. 무엇이 좋은 정책인가를 따지기에 앞서서, 어떠한 정책이라도 좋은 정책성과로 이어지는 풍토를 조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풍토에서는 IMF의 평이한 처방도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다.
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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