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단발성 지원많고 창구 제각각
"제때 지원 안돼" 초기창업 포기사례 급증
"제때 지원 안돼" 초기창업 포기사례 급증
현 정부 들어 '창업 활성화'가 핵심 정책 키워드로 등장했지만, 창업 현장의 체감온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여주기식 단발성 지원 프로그램이 많고 창구도 제각각이어서 창업자들이 단계에 맞는 안정적 지원을 받기 힘든 구조라는 지적이다.
얼마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창업을 준비 중인 이형진(27·가명)씨는 최근 창업을 접고 취업을 할까 고민 중이다. 이 씨는 창업동아리 경험을 바탕으로 빅데이터와 연계한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지만, 초기 자금 지원부터 벽에 부딪혔다. 대학 재학 당시만 해도 창조경제 열풍으로 창업동아리가 늘어나고 창업 준비생들도 많아 창업에 대해 낙관했지만, 현실에서는 첫 단계부터 난관이었다. 이씨는 "동아리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로 다양한 공모전에서 수상해 창업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취업을 포기하고 창업을 결심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업화에 나서고 보니 초기 자금 지원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씨는 공모전 상금이 떨어져 운영자금이 바닥나면서 대출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지만, 별다른 담보가 없어 은행 대출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년창업자금을 지원하는 신용보증기금조차 매출이나 다른 기업과의 계약실적을 요구하며 거절했다.
몇년 전 창조경제 전시회에서 우수 아이디어상을 받은 김민우(58·가명)씨도 아이디어를 이용한 창업을 시도했지만, 체계적으로 사업화까지 연결해 주는 시스템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
김씨는 "개발한 제품 보완과 금융지원, 법률, 행정업무, 마케팅 등 구체적인 조언이 필요해 생각해 정부 지원 멘토링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렸지만 멘토링 과정에서는 '내가 소비자라면 안 살 것 같다. 좀 더 고민해 봐라' 등 성의 없는 조언만 들었다"며 "금융지원이나 마케팅 관련해선 멘토와 접촉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창업 후 기업 지원도 현장의 수요와는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3년전 자동차 부품 관련 기술로 창업한 박상진(36·가명)씨는 정부 지원 사업이 대부분 초창기 기업에 집중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개발 제품을 본격적으로 시장에 유통하고 경쟁제품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투자 자금이 필요한데, 여전히 기술보다는 경영실적 등 담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출 기준 때문에 투자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벤처기업은 창업 후 몇 년이 지나면 이런 위기를 맞기 마련인데, 지원시스템은 이런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스템 미비가 계속되면서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혁신역량 평가 발표에서 우리나라 창업활동지수(TEA) 순위는 2012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창업활동지수는 18~64세 인구 중 현재 창업을 준비 중이거나 3개월 이상 42개월 미만의 신생기업을 소유·경영하고 있는 인구의 비중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창업활동지수는 2012년 0.458로 OECD 국가 중 10위였지만, 2013년에는 0.295로 15위를, 2014년 0.307로 19위였다. 2013년과 2014년 OECD의 창업활동지수 평균은 각각 0.432, 0.402로 우리나라는 평균에도 훨씬 못 미쳤다. 창업에 엄청난 규모의 금액과 정부 자원이 투자되지만 실질적 창업활동은 지지부진한 것.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1조6400억원으로, GDP 대비 벤처캐피털 투자금액 비중 순위가 OECD 중 6위로 전년 18위에서 크게 뛰었다.
벤처캐피털 업계 한 관계자는 "창업펀드를 국가가 주도해 조성하다 보니 손해가 나면 안 돼 매우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 보니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일부 기업에 투자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의 정책 기조에 따라 창업과 사업화 정책이 예측 불가능하게 바뀌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는 "정부가 창업 활성화 정책을 펴면서 창업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지원창구들이 마련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성과를 만들기 위해 조급증을 내면 경쟁력 없는 창업기업의 난립만 불러올 수 있다"며 "정권에 관계 없이 수십 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창업정책을 마련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나영기자 100na@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