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자기방어 위한 '살균제'
밀폐된 실내 사용 조심해야
밀폐된 실내 사용 조심해야
![[이덕환의 과학세상] (511) 피톤치드](http://contents.dt.co.kr/images/201505/2015050102101676650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511) 피톤치드")
산림욕장이 삭막한 도시의 바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듬뿍 마실 수 있다고 한다. 피톤치드는 세균이나 곰팡이를 제거해주는 항균 기능과 함께 면역력 향상, 피부질환 개선, 중추신경계 안정 등의 효능이 있는 신비의 영약이라고 한다. 음이온에 대한 찬사도 대단하다.
그런데 '피톤치드'(phytoncide)의 진짜 뜻을 알고 나면 어리둥절해진다. 웹스터 영어사전에 따르면 피톤치드는 '식물성 살균제'를 뜻한다. 실제로 '피톤'(phyton)은 '식물'이라는 뜻의 희랍어이고, '치드'(cide)는 '살인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1928년 러시아의 생화학자 보리스 토킨이 식물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독성물질을 통칭하는 뜻으로 쓰기 시작한 전문용어다.
산림욕장의 소나무·참나무·향나무만 피톤치드를 내뿜는 것이 아니다. 양파나 마늘을 비롯해 향신료로 쓰는 식물도 많은 양의 피톤치드를 방출한다. 식물이 살균제를 방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해충이나 포식자를 물리치는 역할도 한다.
실제로 피톤치드는 식물의 자기방어 또는 면역 기능의 핵심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탓에 독성물질을 이용하는 화학적 방법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야생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 피톤치드를 비롯한 다양한 독성물질을 만들어낸다. 식물 입장에서는 인간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다. 피톤치드도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독버섯을 비롯한 대부분의 야생 식물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식물에게 피톤치드 같은 독성물질을 만들어내는 일이 공짜일 수 없다. 실제로 식물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투입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국가 안보를 위해 국방비를 지출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톤치드의 기능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마늘·양파·고추냉이의 피톤치드는 박테리아·곰팡이·원생동물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낸다. 바이러스에게 강한 독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피톤치드가 곤충이나 포식 동물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생식기능을 저해하기도 하고, 곤충이나 동물에게 화학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떡갈나무의 피톤치드는 초식동물의 위와 신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소·말·양·염소가 도토리를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변비·산통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피톤치드를 이용하는 식물이 생태계에서 일방적인 우세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피톤치드의 독성을 극복하는 생물이 등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숲의 복잡한 생태계는 피톤치드의 독성을 극복한 미생물과의 공생으로 유지된다. 참나무 숲에 사는 야생 멧돼지·다람쥐·토끼도 피톤치드의 독성을 극복한 동물들이다.피톤치드의 화학적 정체도 매우 다양하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방출하는 테르펜과 테르펜류만 해도 종류가 놀라울 정도로 많다. 송진이나 테레빈유에서 풍기는 솔잎 향기가 바로 테르펜으로 분류되는 알파피넨 등의 아이소프렌 유도체 때문이다. 참나무 잎과 도토리에 들어있는 타닌은 물론 마늘이나 양파의 독특한 맛과 향기를 만들어내는 알리신과 다알릴다이설파이드도 역시 피톤치드다. 피톤치드로 분류되는 물질의 종류는 5000종이 넘는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에서는 특별한 피톤치드를 선별적으로 이용해왔다. 피톤치드의 생리활성을 이용하면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피톤치드가 유익할 수는 없다. 밀폐된 실내에 피톤치드를 마구 뿌려대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피톤치드가 아니더라도 깨끗하게 다듬어놓은 산림욕장의 숲이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소음을 차단해주는 것도 힐링에 도움이 된다. 인공적으로 다듬어놓은 산림욕장을 야생의 자연으로 오인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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