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실적 급급 수입 제품이 매출 1~3위… 자체 개발 소극적 판권 회수땐 위기 불보듯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제약사로 올라선 유한양행(대표 이정희·사진)이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신약 개발을 통해 성장 기회를 찾는 국내외 주요 업체들과 달리, 여전히 다국적 제약사 제품을 들여와 파는 데 집중하고 있어 산업 흐름에 뒤처지고 미래 주력 제품을 스스로 발굴하지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한양행은 1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증가한 24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158억원으로 12.8% 늘었다. 이 회사는 전문의약품 판매와 원료의약품 수출 성장세가 이어져 올해도 순조로운 매출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수입 제품이 매출 1·2·3위 차지=하지만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11년까지 6000억원대에 머물던 유한양행을 1조 기업으로 키운 일등 공신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을 수입해 들여온 '도입 신약'이다. 유한양행의 전체 도입 신약 매출은 2010년 32억원에서 지난해 2790억원으로 90배 이상 커졌다.
현재 이 회사 매출 상위 1∼3위 제품은 해외 제약사 길리어드에서 수입한 B형간염 치료제 '비리어드'와 베링거인겔하임의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다',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다. 이들 3개 제품은 올 1분기 매출만 610억원에 달해 전체 매출의 약 25%를 차지했다.
도입 신약 매출을 빠르게 늘리는 유한양행의 막강한 영업력은 업계가 인정하지만, 문제는 제품력이다. 아무리 영업력이 뛰어나도 제품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매출 성장을 이끈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들은 원 제조사의 전략 변화에 따라 언제든 판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의 경쟁력으로 보기 어렵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유한양행의 영업력은 업계 내에서도 인정받지만 자체 제품 없이 도입 제품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과거에도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 제품을 들여와 시장을 크게 키워놓고 이후 제품 판권을 회수당해 순식간에 수백억원대 매출이 사라진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금 쌓아두고 R&D는 소극적=미래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R&D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점도 유한양행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5년 항궤양제 '레바넥스' 허가 이후, 10년 동안 자체 개발 신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유한양행이 개발 중인 신약 물질은 19개로, 레바넥스 후속 제품으로 최근 임상 2상을 끝낸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를 빼면 대부분 임상 1∼2상이나 물질연구 단계에 그치고 있다. 평균적 신약개발 기간을 고려하면 앞으로 2∼3년 내에 자체 개발 신약을 내놓을 가능성이 적다.
이 회사의 R&D 투자규모는 2011년 504억원, 2012년 477억원, 2013년 563억원, 지난해 580억원 등으로 몇 년째 500억원대에 머물고 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2013년 6%에서 지난해 5.7%로 오히려 줄었다.
최근 대부분 상위 제약사들이 10% 수준으로 비중을 늘려 자체 개발 신약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는 것과 반대된다.
이 가운데 유한양행은 현재 제약사 중 가장 많은 4000억원대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고 있다. 그동안 몇몇 바이오 업체에 지분투자를 한 적은 있지만, 신성장동력을 만들 만한 과감한 R&D 투자나 인수합병(M&A) 시도는 없었다.
업계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인 없는 회사'의 특성상 강한 리더십으로 과감한 투자를 하기 힘든 구조가 발목을 잡는다고 꼬집는다. 3년 임기에 1회만 연임 가능한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단기 성적표에는 강하지만, 장기 성장동력 발굴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른 상위 제약사들은 이미 오너의 강력한 의지를 앞세워 혁신에 나서고 있어 이미 한발 늦은 채 올해 임기를 시작한 이정희 사장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매출 2위로 유한양행 뒤를 바짝 쫓는 녹십자는 해외시장 가능성을 보고 미 식품의약국(FDA) 제품 허가를 추진하고 있고, 직접 북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캐나다에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있다.
한때 유한양행같이 영업력으로 승부 했던 한미약품은 한해 1000억 이상을 R&D에 쏟아부으며 체질을 개선해 막강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갖췄다. 그 결과 최근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7800억원 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맺는 등 성과를 얻고 있다.
유한양행이 1위에 오르기 전 40여 년 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동아제약(현 동아쏘시오그룹)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전문의약품(동아에스티)과 일반의약품(동아제약) 회사를 나눠 전문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바이오시밀러 공장과 치매연구소 등을 설립해 미래시장 개척에 나섰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유한양행이 업계 1위, 1조 매출이라는 눈에 보이는 수치에 매달리는 동안 사실상 국내 제약사끼리의 매출 순위 경쟁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며 "R&D와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거듭나려 하는 다른 상위 제약사들과 달리 유한양행은 아직 영업에만 매달리고 있어 한국 제약산업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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