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 등 보장해 연구현장 신뢰도 높여야
무분별 해외제도 도입은 경계하고 본질 접근해야
과학자에 책임과 권한 줘 창조형 사회 도약해야
무분별 해외제도 도입은 경계하고 본질 접근해야
과학자에 책임과 권한 줘 창조형 사회 도약해야
![[시론] R&D 효율화, 제도부터 바꾸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506/2015060102102351607001[1].jpg "[시론] R&D 효율화, 제도부터 바꾸자")
정부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정부 R&D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투자 규모에 걸맞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정부 R&D의 효율화가 목표라고 한다.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 개편, 과학기술전략본부·과학기술정책원 설치, 기관장 임기 연장 등이 주요 내용이다. 중소·중견 기업과의 협력 강화도 있고, PBS 제도 개선, 자유로운 R&D 생태계 조성 등의 낯익은 메뉴도 있다. 부처별로 분산된 전문관리기관의 통폐합도 장기과제로 제시했다.
핵심은 단연 독일의 프라운호퍼 모델이다. 막스플랑크·헬름홀츠·라이프니츠와 함께 독일의 4대 연구회 중 산업화 기술을 전담하고 있는 프라운호퍼 연구회가 40여 년 전부터 추구해왔던 성공적인 성장·운영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라운호퍼는 재정의 70퍼센트를 기업과 정부 과제로 충당하고,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연방과 주 정부의 보조금은 미래를 위한 과제 기획에 사용한다. 우리의 정부 R&D도 기업 과제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 제도의 어설픈 모방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다. KIST, 기초·산업·공공기술 연구회, 연구재단, 지역 분산형 IBS가 모두 남의 것을 베껴서 만든 것이다. 심지어 PBS도 우리 것이 아니다. 물론 어느 것도 제대로 베끼지는 못했다. 이번 혁신방안도 낡은 추격형 사고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도는 남의 것을 베끼면서 R&D는 선진·창조형으로 가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독일에서 프라운호퍼 모델이 성공한 진짜 이유는 외면하고 껍데기만 베낀다고 될 일이 아니다.
중소·중견 기업의 R&D 역량과 투자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은 17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부족한 역량과 투자여력을 채워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충분한 투자만 보장해주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윤리성의 문제다. 연구자가 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해왔다는 산업부 고위 인사의 발언은 현실을 정반대로 왜곡한 것이다. 상대를 정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연구자다. 기업과의 공동연구에서 연구자가 감수하게 될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성공의 열매는 고스란히 기업에게 돌아갈 것이고, 실패의 책임만 온전하게 연구자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영·관리의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 떠맡게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연구자가 기업의 신뢰도와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시중은행 대출담당자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파에 익숙한 기업가로부터 연구자를 보호해줄 사회적·제도적 방패막이도 없다. 괜한 공명심에 나선 연구자가 꿩과 매를 모두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실제로 정부 과제에서 발생한 열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결국 투명성과 윤리성도 부족하고, 공정한 성과 배분에 대한 공감대도 없는 우리 사회에서 프라운호퍼 모델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 혁신방안이 기재부가 인문사회연구회에 맡겨서 준비한 것이라는 소문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 R&D 사업의 전략과 정책이 철철 넘쳐나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잘못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연구 현장의 자율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거버넌스와 컨트롤타워 개편은 의미가 없다. 연구 현장에 대해 문외한인 문과 출신의 관료와 정책 전문가들로 채워질 전략본부와 정책원의 무기력과 어설픔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기획재정과학기술부'를 만들어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기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학자가 직접 호랑이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ICT에만 올인하는 미래부나 존재감을 찾아볼 수 없는 과학기술자문회의에 대한 기대는 버려야 할 모양이다. 자율은커녕 관리의 대상으로 추락해버린 과학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돌려주지 못하면 창조형 사회로의 도약은 그림의 떡이 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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