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먹거리 생산·소비문화
상업적 식품효능 정보 경계해야"
상업적 식품효능 정보 경계해야"
 식품과 의약품](http://contents.dt.co.kr/images/201506/2015060502101676650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516) 식품과 의약품")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식품의 안전도 걱정스럽고, 우리 식생활이 바람직하고 건강한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산업화에 따라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혼란스러운 정보가 넘쳐나면서 생긴 안타까운 일이다. 식품의 문화적 가치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비정상적인 식품과학 때문에 발생하는 정반대의 문제도 있다. 식품의 기능성을 강조하는 정보가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법적으로는 영양 섭취를 위한 식품과 질병의 예방·치료를 위한 의약품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래서 식품점에서는 원칙적으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고, 약국에서는 식품으로 분류되는 제품을 취급할 수 없다. 소비자가 식품을 의약품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는 표시·광고도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된다. 특정한 질병에 특효가 있다는 주장이 그렇다. 실제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의 생리적 효능을 강조하던 농민들이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의약품의 경우에는 효능과 함께 부작용이나 독성도 분명하게 표시해야 한다.
음식은 본래부터 과학이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전통식품의 안전성이 확인되었다는 생각은 어설픈 것이다. 식품의 안전성이나 효능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특히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현대 과학의 힘을 이용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독성물질의 존재와 양을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만성적인 부작용을 알아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술과 젓갈은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이다. 설탕과 소금도 너무 많이 먹으면 문제가 된다. 숯불구이에서도 벤조피렌과 같은 독성물질이 만들어진다. 감자의 솔라닌, 코코아나 후추의 사프롤, 시금치의 옥살산, 버섯의 하이드라진, 당근이나 샐러리의 미리스티신이 모두 인체에 독성을 나타낸다. 새집 증후군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하이드가 들어있는 천연 식품도 많다. 커피와 녹차에 들어있는 카페인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독성물질이 포함된 모든 식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그런 음식에 적응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음식이 면역기능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
우리의 입맛도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길들여진다. 누구나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한다. 집집마다 입맛이 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권력과 부(富)를 가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국적이고 귀한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강하다. '임금님이 드시던 음식'이라는 주장이 아직도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술·차·향신료·감미료와 같은 기호식품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실제로 인류 문명에서 음식은 집이나 의복과 함께 신분을 상징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식품을 이용하는 식이요법의 효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식품이라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식품의 생리적 기능성이 강할수록 인체 독성의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과식과 편식을 피해야 한다는 상식은 식이요법에도 적용된다.
식품과 의약품의 구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식품의 생리적 효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우리의 일그러진 전통은 경계해야 한다. 식품에 포함된 특정 성분의 의학적 효능과 기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식품과학자·식품기업·언론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 실제로 무책임한 쇼닥터와 영양학자들이 판을 치는 선정적인 언론과 홈쇼핑에서는 오래 전부터 식품과 의약품의 구분이 없어져 버렸다. '좋은 것은 확실한데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주장은 소비자의 판단력과 자존심을 무시한 것이다.
정체가 불확실한 생약으로 만든 건강기능식품은 경계해야 한다. 건강기능식품의 표시·광고뿐만 아니라 제품의 형상과 포장도 규제를 해야 한다. 똑같은 생약인데 한의사가 사용하면 의약품이 되고, 식품기업이 사용하면 식품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질병의 치유는 의사에게 맡겨두는 것이 마땅하다. 식탁은 편안한 마음으로 음식의 맛과 향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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