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수 있는 방역 대책 필요
공기·지역사회 감염도 염두해야"
공기·지역사회 감염도 염두해야"
![[이덕환의 과학세상] (517) 중동호흡기증후군](http://contents.dt.co.kr/images/201506/2015061202101676650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517) 중동호흡기증후군")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겼던 메르스(Middle-East Respiratory Syndrome)가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버렸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2003년 사스(SARS)와 2009년 신종플루도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성 호흡기 질병이었다. 조류독감(AI)과 구제역도 겪었다. 3.1운동 직전에 전파된 스페인 독감으로 20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메르스처럼 당혹스러운 경험은 처음이다. 보건당국의 안이한 자세와 구시대적 비밀주의 탓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메르스는 2012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발생한 환자에게서 처음 확인된 치명적인 감염성 호흡기 질환이다. 중동의 단봉낙타와 이집트의 박쥐의 몸에서도 발견되는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가 낙타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경로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대략 5일 정도의 잠복기가 끝나면 극심한 고열·기침·가래·호흡곤란·근육통이 시작되고, 설사·구토·복통이 나타나다가 결국에는 폐렴이나 신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달 3일 현재 세계 25개국에서 1179명의 감염자가 발생해서 442명이 사망했다. 감염자의 66%가 남성이었고, 평균 연령은 49세였다. 80% 이상의 환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했고, 우리나라와 아랍에미리트(UAE)가 그 뒤를 잇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염이 확산된 경우라고 한다. 대부분의 감염은 시설과 관리가 부실한 병원에서의 근접 접촉에 의한 것이었고, 다행히 지역사회에서의 대규모 감염 사례는 없었다.
메르스의 감염성이 낮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독성도 약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치사율은 38%에 이른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증상 없이 항체를 갖게 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메르스의 독성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감염 이후에 아무 증상 없이 항체를 갖게 된 사람이 사우디아라비아에만 4만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파악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는 무증상 항체 보유자를 근거로 메르스의 독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성 질병이 흔히 그렇듯이 메르스도 감염 확산을 차단하는 길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고열·기침·가래 같은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대증요법이 고작이다. 환자 스스로의 면역 기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예방 백신 개발이 쉬운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백신이나 치료제에 대한 환상은 버리고 확실한 방역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의 독성은 시간에 따라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감염자가 사망할 정도의 강한 독성은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감염자가 사망하면 더 이상의 증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는 퇴화되고, 독성이 비교적 약한 바이러스만 남게 된다. 메르스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가 처음 등장했던 첫해의 치사율은 56%나 됐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메르스 같은 RNA 바이러스는 언제든지 치명적인 독성과 감당하기 어려운 감염성을 가진 변종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염성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은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이어야 한다. 공기를 통한 감염이나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도 절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소극적인 방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의료시설·인력에 대한 과신도 금물이다. 중동의 민간병원은 최초의 메르스 환자로부터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는 확실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증폭과 확산의 거점 역할을 했던 우리 병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확한 정보 공개가 방역의 기본 원칙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의 어설픈 비밀주의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많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사태가 끝날 때까지는 개인적인 불편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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