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붐을 타고 기업들이 자체 전자결제 플랫폼을 속속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나 평소 호혜 관계의 회사보다 경쟁사와 '적과의 동침'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너도나도 간편결제·송금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문인식을 활용한 모바일 전자결제 시스템인 '삼성페이'의 공식 출시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룹 총수가 친척 간인 신세계그룹의 공식 몰인 SSG닷컴, SSG푸드마켓 등 온라인 사이트와 신세계백화점 등 신세계 계열사가 삼성페이의 테스트 버전도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삼성페이 개발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모임에서 알려졌다. 신세계 측은 최근 자사 SSG페이를 선보인 만큼 폐쇄적인 전략을 취하며 SSG페이의 영향력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KB국민카드는 최근 'KB국민 롯데빅마켓 카드'를 출시했다. 이 상품은 롯데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롯데빅마켓에서 결제할 수 있는 카드다. 업계에 경쟁사인 롯데카드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서로 윈·윈 전략을 위해 적과 손을 맞잡은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올해 5월 현대카드와 이마트는 '현대 이마트 e카드'를 출시했다. 이용금액의 최대 1.5%를 신세계 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는 이 카드 역시 현대차 그룹과 신세계의 통 큰 만남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핀테크 경쟁 역시 초기 가입자 수를 늘려야 하는 규모의 경제의 성격이 강한 만큼 도움이 된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현재 상황에 적합하느냐의 문제이지 기존 친소 관계·가족 관계 등 기존 질서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내 기업들의 전략은 국내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타진 중인 알리페이, 텐페이, 페이팔 등 해외 업체들의 움직임과도 맞물려 새로운 고민을 낳고 있다.
현재 해외 핀테크 업체들은 주로 1~2위 카드 사업자나 상위권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와 꾸준히 접촉하며 한국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꾸준한 구애를 보며 중장기적 이익을 계산하며 주판알을 튕기는 국내 금융사들이 늘고 있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시장을 모두 내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내부적으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미 알리페이(알리바바)와 손을 잡고 알리페이의 결제대행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발달한 ICT기술·전자상거래에 익숙한 고객 등 핀테크를 시험하기 가장 좋은 환경의 한국시장에서 글로벌 업체들까지 포함해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다시 적이 되는 식'의 합종연횡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규기자 dk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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