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1개사 9501억원 … 올 역대 최대치 전망
LG생과·종근당 등 매년 두자릿수 공격적 투자
식음료 · 해외제품 치중 기업은 '1~3%대' 인색
LG생과·종근당 등 매년 두자릿수 공격적 투자
식음료 · 해외제품 치중 기업은 '1~3%대' 인색
연구개발(R&D) 역량이 제약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제약사들의 R&D 투자 증가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상위 10위권 제약사 중 절반에서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10%를 넘어섰고, 지난해와 비교해 R&D 투자액을 20∼30% 늘린 곳도 다수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제약보다는 식음료 등 다른 시장에 눈을 돌리거나 여전히 해외 도입 제품 판매에 치중하는 제약사들은 1~3%대의 낮은 R&D 투자 비중을 나타냈다.
올해 7조원이 넘는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일약 제약업계 대표기업으로 떠오른 한미약품은 올해도 3분기까지 매출의 20%가 넘는 1220억원을 R&D에 투자했다. 이 회사가 지난 201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투자한 R&D 금액은 5820억원에 달하며, 최근 몇년간 R&D 투자금액 선두를 놓친 적이 없다. 결국 한미약품은 R&D 투자에 적극적인 제약사에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R&D 투자는 제약사의 미래 경쟁력 지표=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 제약기업 81개사의 R&D 투자는 총 9501억원으로 전년보다 7.9% 늘었다. 올해 역시 대부분 회사가 R&D 투자를 늘리고 있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 2012년 정부의 일괄약가인하와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 정책으로 인해 기존 복제약 영업 중심 사업구조로는 성장이 어려워진 제약사들은 R&D를 통한 차별화로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R&D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제약사 중 하나인 LG생명과학은 최근 몇 년 실적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운데도 매년 17∼18%대의 높은 R&D 투자비율을 유지했다. 올해도 3분기까지 매출의 18.8%를 R&D에 투자했다. 이런 투자는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체 개발한 당뇨신약 '제미글로'와 히알루론산 필러 '이브아르'의 해외 수출이 늘면서 올 3분기 두자릿수 이상 매출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R&D 투자를 33.85%나 늘린 종근당은 최근 R&D 중심 제약사로 체질 변화를 하고 있다. 2003년 항암제 '캄토벨'과 2013년 당뇨치료제 '듀비에' 등 신약을 개발한 이 회사는 현재 업계 최고 수준인 22개의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상위 제약사 공격적 R&D 투자=제약업계 매출 1위인 유한양행은 그동안 R&D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매년 R&D 투자액을 높이고 있지만 아직 매출대비 비중이 6.1%로 제약업계 선두다운 수준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최근 바이오업체 제넥신에 200억원, 바이오니아에 1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유망 기술을 끌어모으며 R&D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웅제약 역시 올해 1046억을 투자해 R&D에 강점이 있는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 파이프라인 크게 늘리는 등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B형 간염치료제 '베시포비어' 등 다양한 신약을 개발 중인 일동제약은 올해 R&D 투자를 40% 넘게 늘렸다. 고혈압 신약 '카나브'를 개발한 보령제약과 지속형 성장호르몬 치료제와 자가염증질환치료제 등의 신약 개발에 나선 한독 역시 R&D 투자금액이 20% 넘게 늘었다.
◇일부 기업은 R&D 투자 여전히 인색=반면 매출 10위권 기업임에도 광동제약은 R&D 투자비중이 수년째 1%대다. 음료시장에서 '비타500' '옥수수수염차' 등을 성공시킨 이 회사는 2013년 초 시장 1위 생수 브랜드 '삼다수' 유통까지 맡아 음료사업을 크게 키웠다. 올 3분기 기준으로 이 3개 제품 매출만 2560억원에 달해 전체 매출의 절반이 넘는다. 올해는 소모성 자재구매 대행업체 '코리아이플랫폼'까지 인수해 사업영역을 더 넓혔지만, 본업인 제약 사업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낮은 R&D 투자로 인해 정부 인증 '혁신형 제약기업' 재인증에서 탈락해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다른 제약사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상품매출' 비중이 68.5%에 달하는 제일약품은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사의 블록버스터 제품 판매에 치중, R&D 투자 비중은 3.43%에 불과했다. 그동안 꾸준한 R&D 투자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를 보지 못한 동화약품, 안국약품 등은 올해 10∼20% 정도 R&D 투자가 줄어들었다.
◇R&D 투자 유도 환경 조성 필요=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면서 성공 확률도 극히 낮다. 때문에 안정적인 투자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칫 '무모한 투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적극적인 R&D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열린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약 협·단체 간담회에서 신약개발연구조합은 신약 R&D 지원 확대와 제도기반 마련, 산·학·연 역할분담을 통한 협력생태계 조성, R&D 투자 유도 정책환경 조성 등을 건의했다. 특히 제약업계는 기업들이 R&D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선 신약의 가치를 반영한 약가 산정과 출시 후 중복인하 삭제 등 약가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한미약품 같은 사례가 다시 나오려면 신약개발에 도전하는 여러 뜻있는 기업들의 의지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정책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며 "보험약가 차원에서 열심히 개발한 신약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고 가격관리 정책도 예측 가능하게 유지돼야 기업들이 R&D 의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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