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AI) '알파고'에 맞선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첫 승을 품에 안았다. 3연속 패배로 승리의 트로피는 알파고에 넘어갔지만, 이 9단이 "한 판이라도 이기겠다"던 자신의 약속은 지켰다.
이 9단은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 4국에서 180수 만에 불계승(대국 도중 상대가 패배 의사를 표명해 계가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거뒀다.
이날 백돌을 잡은 이 9단은 두 귀를 점령하고 좌변과 우변에도 집을 마련하는 실리작전으로 상대를 몰아갔다. 알파고는 상변에서 중앙까지 거대한 집을 만들었으나 경기 중반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남발했다. 이 9단은 경기 막판 초읽기에 몰린 순간에도 유리한 국면을 이어가며 승기를 잡았다. 5시간여의 접전 끝에 이 9단이 집 차이를 키우며 알파고에 첫 승을 거뒀다.
바둑TV 해설을 맡은 이현욱 9단은 "이번 게임은 알파고의 끝내기, 계산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게임이었다"며 "끝내기를 잘하긴 하지만 신의 경지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1승 이상의 값어치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대국"이라며 "인간이 인공지능에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덧붙였다.
5국 3승제로 열린 이번 대국은 승패와 상관없이 제 5국까지 경기가 진행된다. 앞서 이 9단은 전날 열린 제 3국에서 1국과 2국에 이어 알파고에 불계패를 당하며, 경기는 알파고의 승리로 이미 결정됐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를 대신해 상금 100만 달러(약 12억원) 전액을 유니세프(UNICEF)와 STEM(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 교육,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 9단은 다섯 번 대국 대전료로 15만 달러(약 1억8000만원)를 받는다. 판당 승리수당은 2만 달러(약 2400만원)다.
이 9단은 패배가 결정된 3국을 마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승패는 갈렸지만 알파고의 정확한 능력을 따지기 위해선 남은 4국과 5국 경기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인간은 심리적 부분이 있기 때문에 (승패가 결정된 이후의) 4, 5국이 알파고의 능력을 파악하기에 더 정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면서 "(알파고가) 우월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분명 약점도 있다. 완벽한 신의 경지는 아니다"고 패배의식을 경계한 바 있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이 9단이 4국에서 승리하자 찬사와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9단의 스승인 권갑용 8단은 "이 9단은 이미 승자"라며 "전 세계에 바둑이 이런 것이라고 알려줬다. 앞으로 남은 승부는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경기인 5국은 오는 15일 오후 1시에 열린다. 정채희기자 poof34@dt.co.kr
이세돌 9단(왼쪽 두번째)이 13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 특별 대국장에서 진행중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 4국을 앞두고 대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 9단은 3연속 패배하며, 승리를 이미 알파고에 넘겨줬지만, 4국에선 승리하며 인간의 자존심을 지켰다. <구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