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CT·내시경 등 특수 장비
사설업체 저렴한 비용만 앞세워
제대로 된 교육 없이 현장 투입
의료기기 수리업 '신고제' 운영
갱신의무도 없어 사실상 영구적
사설업체 저렴한 비용만 앞세워
제대로 된 교육 없이 현장 투입
의료기기 수리업 '신고제' 운영
갱신의무도 없어 사실상 영구적
■ 이슈분석 구멍난 의료기기 수리체계 (상)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고가 특수 의료장비 관리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의료의 질은 물론,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의료장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사설 수리업체 엔지니어들이 해외에서 수입한 중고 부품 등으로 주먹구구식 수리를 하고 있다. 의료기기 수리 영역에 대한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며 일방적으로 비싼 유지비용을 요구하는 수입 업체와 실력 없이 저렴한 비용만 앞세운 일부 사설 수리업체 사이에서 의료계는 진통을 겪고 있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특수 의료장비 관리실태와 관련 제도, 의료계의 현실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 의료기기 제조업체 엔지니어 A씨는 최근 수리를 의뢰받은 MRI 장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수리 전 정상으로 표시되던 고주파 펄스 전압이 회로기판을 교체하자 정상치보다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 장비는 병원에서 수리를 맡기기 전 사설 수리업체가 한 차례 수리를 한 이력이 있었다. 이 업체가 제대로 수리를 하지 않아 전압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던 것. 이 상태로 사용했으면 환자가 말초신경을 자극받아 화상까지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A씨는 "제조사는 기판 문제 시 전체 교체가 원칙이지만 사설 수리업체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중에 파는 소자나 직접 제작한 부품으로 일부만 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설 의료기기 수리·유지보수 업체에 대한 허술한 관리제도가 환자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일부 사설 업체가 MRI, CT, 소화기내시경 등 환자 안전과 직결된 의료기기들을 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MRI와 CT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강한 자력 때문에 부상을 입거나 방사능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또 매우 정교한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수리나 유지보수에도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병원은 의료기기 수리를 장비 제조사나 수입사, 수리업 신고를 한 사설 업체에 맡길 수 있다. 이런 제도 곳곳에 허점이 있는 게 문제다.
MRI나 CT 제조사에 정기 유지보수를 맡기면 대당 비용이 월간 1000만원을 웃돌지만 사설 업체에서는 절반 수준인 500만∼600만원이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최근 불경기로 경영이 어려워진 병원들이 사설 수리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문제는 수리 능력이 없는 일부 업체가 가격을 낮춰 계약을 맺고 허술하게 관리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의료기기 업체 엔지니어는 "작년에는 한 사설 업체가 CT용 환자 테이블을 제대로 수리하지 않아 덜렁거리다 결국 환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며 "MRI 내부에서 부품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 사설 업체에 수리를 맡겼는데, 업체가 원인을 못 찾은 채 방음 시공만 해놓고 간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엔지니어는 "CT 촬영 시 환자가 들어가는 '갠트리(Gantry)'의 회전 부분은 원심력 때문에 부품 중량의 20배가 넘는 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특수한 토크렌치를 사용해 원심력을 견디도록 해야 한다"며 "영세 업체의 경우 고가의 수리 장비인 토크렌치를 사용하지 않아 부실한 결합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 같은 상황은 정부의 안일한 관리제도가 빚은 결과다. 정부는 의료기기 승인은 까다롭게 하면서도 의료기기 수리업은 신고제로 운영해 지자체에 서류만 제출하면 누구나 수리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구비서류는 신청서, 대표자 건강진단서, 수리업소 시설 내역서와 배치도가 전부다.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3·4등급 의료기기는 제조나 수입허가와 관련해 별도 규정을 두고 엄격하게 관리하지만 수리에 대해선 등급과 관계없이 철저히 손을 놓고 것. 그렇다 보니 의료용 침대 수리업체나 MRI, CT 등 특수의료장비 수리업체가 모두 같은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기기별 표준 작업절차나 정기 교육과정도 없고, 제대로 수리됐는지 검증절차도 없는 실정이다. 의료기기 업체 한 임원은 "사설 업체의 80%가 본사에 근무하다 은퇴했거나 해외에서 잠시 교육을 받고 온 직원 한두 명을 둔 영세한 구조"라며 "최근 기술 변화가 워낙 빨라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엔지니어들이 첨단 의료기기를 제대로 수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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