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점검제 외 심사·갱신 없어
관리주체 식약처서 지자체 이관
전문관리 애로… 부실수리 야기
표준수리절차·기술자교육 절실
관리주체 식약처서 지자체 이관
전문관리 애로… 부실수리 야기
표준수리절차·기술자교육 절실
■ 이슈분석 구멍난 의료기기 수리체계 (중)
"자기공명영상(MRI)장치도 컴퓨터나 휴대폰처럼 오래 쓸수록 알 수 없는 고장이 잦습니다.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에서도 여러 오류가 수시로 나타납니다."
한 대학병원에서 MRI를 관리하는 한 박사급 연구원은 이렇게 말하며 얼마 전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 눕혀 놓고 기계가 멈춰버려 난감했던 순간을 설명했다.
그는 "MRI는 한 대에 10억원이 넘는 장비다 보니 대학병원에서도 10년 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장이 날 때마다 제조사에 연락하고 수리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컴퓨터단층촬영(CT)장치는 1891대, MRI는 1389대로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인구 100만명 당 보유 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5배 수준이고, 사용률도 매우 높다. 2014년 CT의 기관별 연간 최대 운영 건수는 1만9968건으로, 하루에 약 80건, 8시간 가동을 기준으로 휴식시간 없이 시간당 10건씩 촬영하는 수준이다. 현재 병원에 보급된 MRI·CT 중 10년 이상 사용한 장비 비율은 20%가 넘는다. 이렇게 한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운영하다 보니 고장도 빈번하다.
그런데 CT와 MRI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해외 제조사가 제공하는 정기 유지보수 비용이 장비 한 대당 월 1000만원에 달한다. 이미 장비 유지보수를 위한 수천억원대 시장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이 시장에 제조사보다 저렴한 비용을 앞세운 사설 수리업체의 진출이 활발하다. 작은 고장에도 수십만원의 '리퍼' 수리만을 받도록 고집한 애플의 아이폰 수리 정책 때문에 사설 수리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긴 것과 같은 모양새다.
현재 의료기기법에 따르면 '수리업' 신고를 한 업체는 이 시장에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수리업 신고는 간단한 신청서류만 지자체에 제출하면 된다. 이공계 대학 출신이거나 관련 업종에서 2년 경력이 있는 책임기술자를 선정하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다. 책임기술자가 해당 의료기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해도 가능하다.
또 현행 제도에서는 수리업 신고만 하면 의료기기의 등급 및 품목과 관계없이 수리행위를 할 수 있다. 수리업 신고를 신청할 때 신청서에 '수리대상 의료기기 유형'을 선택해서 써넣게 돼 있으나, 품목군 개수의 제한도 없고, 각 품목 특성에 따른 요건도 없다. 특히 환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의료기기(3·4등급)와 MRI, CT, 초음파 등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의료기기에 대한 별도 규정과 자격요건도 없는 게 문제다. 수리 행위의 기준과 절차를 적절하게 문서로 만든 '표준수리절차(SOP)'를 마련하도록 하는 규정도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수리가 이뤄지고, 이후에 문제가 발생해도 후속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수리업체에 대한 관리 체계가 부재하다. 의료기기 제조업의 경우 3년마다 GMP(품질관리기준) 정기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수리업은 자율점검제 외에 별도 심사나 갱신제도가 없어 한번 신고하면 계속 유지된다. 수리업에 대한 관리 주체도 식품의약품안전처 본청에서 지방청으로, 다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돼 전문적 관리가 어렵다. 수리기술자에 대한 교육 의무나 수리된 기기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단계도 없어 검증되지 않는 의료기기가 곧바로 의료현장에 다시 사용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일본의 경우 수리업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약사법에서 허가 취득을 위한 허가 전 요구사항과 허가 취득 이후 사후관리 업무를 구분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수리업체는 제조·판매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리 이전에 수리 범위와 방법을 제조·판매업자에게 통지하고, 제조사는 결과를 분석해 기록해야 한다. 또 수리를 하는 책임기술자에 대한 교육이 의무화돼 있고, 수리에 전문지식과 기능이 필요한 품목은 '특정보수관리 의료기기'로 지정해 차등관리한다.
이와 달리 국내는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업체가 부실한 수리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의료기기 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전자제품과 달리 의료기기는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수리업체의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제대로 된 수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과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자기공명영상(MRI)장치도 컴퓨터나 휴대폰처럼 오래 쓸수록 알 수 없는 고장이 잦습니다.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에서도 여러 오류가 수시로 나타납니다."
한 대학병원에서 MRI를 관리하는 한 박사급 연구원은 이렇게 말하며 얼마 전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 눕혀 놓고 기계가 멈춰버려 난감했던 순간을 설명했다.
그는 "MRI는 한 대에 10억원이 넘는 장비다 보니 대학병원에서도 10년 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장이 날 때마다 제조사에 연락하고 수리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컴퓨터단층촬영(CT)장치는 1891대, MRI는 1389대로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인구 100만명 당 보유 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5배 수준이고, 사용률도 매우 높다. 2014년 CT의 기관별 연간 최대 운영 건수는 1만9968건으로, 하루에 약 80건, 8시간 가동을 기준으로 휴식시간 없이 시간당 10건씩 촬영하는 수준이다. 현재 병원에 보급된 MRI·CT 중 10년 이상 사용한 장비 비율은 20%가 넘는다. 이렇게 한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운영하다 보니 고장도 빈번하다.
그런데 CT와 MRI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해외 제조사가 제공하는 정기 유지보수 비용이 장비 한 대당 월 1000만원에 달한다. 이미 장비 유지보수를 위한 수천억원대 시장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이 시장에 제조사보다 저렴한 비용을 앞세운 사설 수리업체의 진출이 활발하다. 작은 고장에도 수십만원의 '리퍼' 수리만을 받도록 고집한 애플의 아이폰 수리 정책 때문에 사설 수리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긴 것과 같은 모양새다.
현재 의료기기법에 따르면 '수리업' 신고를 한 업체는 이 시장에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수리업 신고는 간단한 신청서류만 지자체에 제출하면 된다. 이공계 대학 출신이거나 관련 업종에서 2년 경력이 있는 책임기술자를 선정하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다. 책임기술자가 해당 의료기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해도 가능하다.
또 현행 제도에서는 수리업 신고만 하면 의료기기의 등급 및 품목과 관계없이 수리행위를 할 수 있다. 수리업 신고를 신청할 때 신청서에 '수리대상 의료기기 유형'을 선택해서 써넣게 돼 있으나, 품목군 개수의 제한도 없고, 각 품목 특성에 따른 요건도 없다. 특히 환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의료기기(3·4등급)와 MRI, CT, 초음파 등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의료기기에 대한 별도 규정과 자격요건도 없는 게 문제다. 수리 행위의 기준과 절차를 적절하게 문서로 만든 '표준수리절차(SOP)'를 마련하도록 하는 규정도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수리가 이뤄지고, 이후에 문제가 발생해도 후속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수리업체에 대한 관리 체계가 부재하다. 의료기기 제조업의 경우 3년마다 GMP(품질관리기준) 정기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수리업은 자율점검제 외에 별도 심사나 갱신제도가 없어 한번 신고하면 계속 유지된다. 수리업에 대한 관리 주체도 식품의약품안전처 본청에서 지방청으로, 다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돼 전문적 관리가 어렵다. 수리기술자에 대한 교육 의무나 수리된 기기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단계도 없어 검증되지 않는 의료기기가 곧바로 의료현장에 다시 사용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일본의 경우 수리업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약사법에서 허가 취득을 위한 허가 전 요구사항과 허가 취득 이후 사후관리 업무를 구분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수리업체는 제조·판매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리 이전에 수리 범위와 방법을 제조·판매업자에게 통지하고, 제조사는 결과를 분석해 기록해야 한다. 또 수리를 하는 책임기술자에 대한 교육이 의무화돼 있고, 수리에 전문지식과 기능이 필요한 품목은 '특정보수관리 의료기기'로 지정해 차등관리한다.
이와 달리 국내는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업체가 부실한 수리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의료기기 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전자제품과 달리 의료기기는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수리업체의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제대로 된 수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과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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