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학교정책이 학생 건강 위협
납 소량이라도 검출땐 재시공해야
납 소량이라도 검출땐 재시공해야
![[이덕환의 과학세상] (565) 우레탄 트랙](http://contents.dt.co.kr/images/201608/2016081002101076817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565) 우레탄 트랙")
교육 당국이 4800억을 들여 학교 운동장에 깔아놓은 우레탄 트랙에서 납이 검출됐다고 한다. 한국산업표준(KS)의 기준치(90mg/kg) 이상의 납이 검출된 학교가 무려 1767개나 된다고 한다.
우레탄 트랙의 교체에 필요한 2천억의 예산을 두고 교육부와 문체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석면으로 오염된 감람석을 운동장에 깔아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어설픈 학교 정책이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납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체에 흡수된다. 납으로 오염된 물·음식물·공기를 통해 흡수되기도 하지만 피부를 통해 몸속으로 흡수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뛰고 뒹구는 운동장에 깔아놓은 우레탄 트랙이 납으로 오염된 것을 걱정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일단 몸속으로 들어간 납은 혈액·근육·뼈·치아·모발 등에 축적된 후에 소변을 통해 배출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인체에 흡수된 납이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였다. 납이 복잡한 생리 작용에서 효소의 역할을 하는 단백질에 화학적으로 단단하게 달라붙어 버린다. 우리 몸의 거의 모든 대사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특히 중추신경계·면역계·생식계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 고농도의 납으로 오염된 산업현장에서 급성으로 중독되는 경우에는 두통·복통·구토·빈혈·경련 등의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 자칫하면 뇌와 신장 손상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납으로 오염된 우레탄 트랙 때문에 아이들이 급성 납 중독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장저농도의 납이라고 해도 장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중독된 경우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가 그렇다. 지능·학습능력·주의력이 떨어지고, 행동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만성적인 납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는 옥탄값을 높이기 위해 테트라에틸납을 첨가한 '유연' 휘발유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하면서 MTBE를 첨가한 '무연' 휘발유를 사용하는 것도 납 중독의 위험 때문이다. 수도 배관에 납을 사용하거나 주방용 도자기·독·뚝배기에 납이 포함된 유약을 사용하는 것도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어린이용 장난감이나 가구에 납이 포함된 페인트의 사용도 금지되었다.
우레탄 트랙에서 납이 검출된 이유부터 밝혀내야 한다. 우레탄 폼을 합성(경화)하기 위해 사용한 촉매나 붉은색 안료의 성분을 확인하면 당장 알아낼 수 있다. 학교 운동장의 인조잔디에 사용한 충전제('충진제'가 아님)에서 납이 검출된 적도 있었다. 우레탄 트랙의 시공 과정과 납 중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교육 당국이 납 성분이 포함된 재료의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일 가능성이 크다.
교육 당국이 강조하고 있는 바닥재의 KS 기준치가 학교의 우레탄 트랙에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어린이 가구용 페인트에는 금지된 납을 어린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우레탄 트랙이나 인조잔디에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적 비용과 편익을 견줄 수밖에 없는 산업현장의 기준을 학교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더욱이 우레탄 트랙이나 인조잔디에 굳이 납을 사용해야 할 이유도 없다.
우레탄 트랙에서 납을 검사하는 방법에 대한 논란도 의미가 없다. 시공사의 입장에서는 '용출법'이 유리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납의 총 함량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용출법으로 검출되지 않은 납도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만성 납 중독은 개인적으로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확인된 위험을 방치할 수는 없다. 진정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납이 조금이라도 검출된 우레탄 트랙은 모두 재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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