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병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시론] 기후문제 다룰 대책기구 만들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608/2016083102102351607002[1].jpg "[시론] 기후문제 다룰 대책기구 만들자")
1994년 이래 가장 기록적인 폭염이 누그러지고 어느덧 가을로 가고 있다. 이번 폭염은 전기 누진세 폭탄이나 바다 양식장 어패류의 집단 폐사와 같은 숱한 문제점을 우리에게 던져줬고, 연일 정치계, 언론계, 학계, 재계에서 그리고 온 국민이 이에 대해 또는 분노하고 또는 토론하며 이 무더위를 보냈다. 나름의 대책도 나와서 가정용이나 교육용 전기세 인하, 심층수를 활용한 양식장 운영 등의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그러나 그 이전 봄을 뒤덮은 미세먼지의 위협은 다 잊어버린 듯 거의 논의한 바 없었으며, 이는 네이버나 구글 트렌드 검색결과에서도 명료하게 나타난다. 이렇듯 한반도에 닥친 그리고 아마도 다시 다가올 지구적 문제에 대해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된다. 이대로라면 내년 봄에 예상되는 미세먼지가 다시 하늘을 뒤덮어야 대책을 논의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여름이 되어 폭염 때문에 전기세가 하늘을 찔러야 이야기를 다시 꺼낼지 모른다. 그리도 사태는 더 심각할지 모른다. 가는 무더위를 보내는 지금 다시 올 무더위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다음의 몇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지구적 문제를 꾸준히 제시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존엄한 기관이 한국에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은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일 것이다. 로마클럽은 1968년 이탈리아 기업인 아우렐리오 페체이와 스코틀랜드 과학자 알렉산더 킹의 제안으로 출범된 기관으로 저명 학자와 기업가, 유력 정치인 등 지도자들이 참여해 '성찰 없는 기술문명'의 한계를 경고해 명성을 얻었다. 1972년 <성장의 한계> 출간 이후 <기로에 선 인류>, <사유화의 한계>,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등의 미래 예측 보고서를 다수 발간한 것으로 지구적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1960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등이 모여 창립한 World Academy of Art and Science(WAAS)도 눈여겨볼 만하다. WAAS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지구문명의 미래, 고등교육의 진전된 역할을 강조하며 일종의 '세계대학(World University)'의 기능을 수행하는 중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지도자적 선견자적 기관이 별도로 필요한 것은 미세먼지나 폭염과 같은 많은 문제들이 동아시아의 지역적 특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둘째, 지구적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와 무관하게 상시로 논의하고 대책을 강구하며 실현 가능안을 도출해 장기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안정된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예를 들어 녹색산업에 대한 현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이전 정부만 같지 못하다는 시각이 있다. 사실 생태계 보존 등은 우리의 존립에 대한 기본 쟁점이며 장기적으로 다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정책적 우선순위 변화나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 시도에 따라 그 중요도가 부침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이는 적잖이 우리의 시민 의식에 연루한다. EU의 경우 각국 시민들은 높은 환경의식을 가지고 온실가스감축을 위해 실제 생활에서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니 정부와 기업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백년대계가 필요한 사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면 시민이라도 의식을 가지고 정부를 주도해야 한다.
셋째, 정보통신 기술이 지구적 문제에 기여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반도체 등과 함께 정보통신기술은 한국이 비교우위를 점하는 대표적 기술 요소다. 이미 정보통신기술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에너지 관리를 최적화하며 미세먼지를 추적하고 저감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그 비교우위 효과는 오래가지 못할지 모른다. 미국이 당장 상용화와는 관련 없는 항공우주국(NASA)을 세우고 부단한 지원을 통해 과학 강국으로 입지를 굳힌 것처럼, 우리도 도전적이고 지구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정보통신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체계를 가지고 연구개발을 해야 할 것이다.
가는 무더위를 보되 오는 무더위를 걱정하고 준비하려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조정이 동서당쟁에 여념 없을 때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 한결같이 문제점과 대안을 제기하며 나라의 부국강병을 꾀했던 율곡 이이와 같은 이들이 많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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