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정치학
![[시론] 무너진 민주주의… 대통령이 책임져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611/2016110102102351607001[1].jpg "[시론] 무너진 민주주의… 대통령이 책임져야")
최순실로 대표되는 '비선세력'들의 국정 농단에 온 국민이 통탄을 넘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행사가 정당한 권한을 갖고 있는 제도화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지 못하고 '비선세력'들의 자의적인 개입에 의해 그것도 상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경악할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개입과 영향력이 실제 행사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제동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현 정부의 정책결정이 얼마나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비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지도자를 선출함으로써 이들에게 정치권력의 행사를 위임하고, 위임된 권력이 실제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처벌하거나 보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대통령중심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정치체제에 있어서 권력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으며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정치권력의 행사를 위임한다. 당연히 권력은 대통령 개인에 의해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이 아니며 주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이 제시한 정책방향과 공약을 믿고 공적으로 빌려준 것이 된다.
따라서 국민의 위임을 벗어난 어떠한 권력행사도 정당할 수 없으며 더욱이 그것이 위임받지 않은 행위자에 의해 행사된다면 이는 민주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결국 민주주의의 작동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임자인 국민과 위임받는 정치지도자 간의 기본적인 신뢰의 존재이며, 위임된 정치권력의 행사를 담당하는 정치지도자의 책임의식은 신뢰를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다.
소위 '비선세력'들의 비공식적인 국정에의 개입과 전횡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믿고 선거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의 믿음과 우리의 정치시스템이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견제 받지 않은 권력과 권력의 비호 아래 호가호위하는 측근들, 그리고 그들의 전횡에 눈감으며 비굴하게 스스로의 안위를 챙기고 있는 이들로 인해 우리가 힘들게 지켜 온 민주주의의 근본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지도자들의 존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위임된 정치권력의 자의적인 행사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위임된 권력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국정을 선출되지 않은 이들에게 노출시키고 그들의 전횡을 용인한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 원칙을 걷어차고 스스로 정통성을 훼손하는 우를 범했다. 그간 지나친 권력집중과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회의 행정부 견제기능으로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력행사가 문제시되어 왔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 심각함이 질적으로 다른 양상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에서 정치지도자의 선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제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비교를 통한 모의선거에의 참여를 통해 직접적으로 교육한다. 이러한 교육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정책결정자의 선출은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이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책결정자는 국민의 권익 보장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정책결정자는 반드시 제도적인 기제를 통해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들리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칙이 자의적인 권력자에 의해 무시되고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이 안타깝다. 견제장치 없는 권력은 국민의 의사로부터 유리되기 쉬우며 자의적인 권력행사는 부패에 다름 아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주권자의 감시와 처벌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며 어떠한 통치자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지금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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