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혁 IT프리랜서 칼럼니스트
![[DT광장] 게임, `새로운 통찰`로 바라보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611/2016111102102351607001[1].jpg "[DT광장] 게임, `새로운 통찰`로 바라보라")
새로운 기술에 의해 탄생한 매체를 접할 때 사람들은 언제나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최초의 영화로 불리는 <열차의 도착>은 첫 상영회 때 관람객들이 진짜 열차가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도망치는 해프닝을 빚었다. 움직이는 사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뉴미디어의 등장이 주는 공포감은 비단 영화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은 초창기에는 '바보상자'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식자층으로부터 무지몽매의 전파자로 뭇매를 맞았다. 조금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를 통해 탄생한 대중적 의미로서의 '인쇄된 책' 조차도 한때는 사람들의 토론을 막고 신경쇠약과 두통을 유발한다면서 부정적 취급을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2016년의 컴퓨터 게임도 앞선 매체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뉴스 사회면에서는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면 범인의 뒤를 캐다가 게임에 손 댄 흔적이 있으면 게임이 폭력성을 잉태했다는 맥락을 써내려가곤 한다. 정부는 게임이 술과 마약에 준하는 중독재라며 중독 방지법안을 발의하기도 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게임 할 시간이 있으면 나가서 축구라도 하라며 등을 떠민다. TV 광고의 주요 시간대를 수많은 게임들이 뒤덮고 있는 상황이지만, 게임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인식은 아직도 매체 초기의 공포심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배경에는 정말 이상하고 문제 많은 게임들의 존재도 한 몫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매체와 비교해 보면 여기에는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다. 외설과 저열함으로 점철된 질 낮은 영화가 극장가를 주름잡을 때 사람들은 영화매체의 폐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특정 유행어 하나가 부상하면 알맹이 없는 관련 책을 부지기수로 쏟아내는 저급한 출판 시장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출판매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독 게임에 대해서는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구별하지 않은 채 뭉뚱그려 부정하는 흐름들이 대세를 탄다.
매체는 말 그대로 메시지의 매개체다. 발신자로부터 수신자까지 의미가 전달되는 도구적 의미로서의 매체에 대한 평가는 도구적 의미에 그쳐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 매체적 유의미성이라면, 게임은 오히려 기존의 매체들이 이뤄내지 못한 많은 가능성들을 기술 발전의 최정상에서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을 꼽아야 한다.
기존의 매체들이 벌어진 일들을 정리하여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일방향성의 매체였다면, 게임은 벌어질 법한 상황과 배경논리만을 그려내고 사건의 유발을 매체 수용자인 게이머가 직접 이끌어 가는 상호작용의 매체다. 그렇기에 게임 플레이는 단순한 메시지의 수용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창조를 포함하는 플레이가 된다. 내가 직접 만들어가야 하는 이야기라는 게임의 특성은 그래서 기존 매체가 보여주기 힘들었던 거대한 가능성들을 보여 준다.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게임 <심 시티> 를 통해 사람들은 단지 존재하는 도시를 바라보던 기존 매체의 체험을 넘어 벌판에 도시를 세우고 일궈 나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가상공간에서 네모난 블록으로 무엇이든 만들어 볼 수 있는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아이들은 과거 레고 등의 블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세계를 머릿속이 아닌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보는 체험을 겪는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가상현실 기술도 가장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영역이 게임 분야임을 생각할 때, 게임 매체의 가능성은 쉽게 포기할 것이 못 된다.책과 게임이라는 매체를 놓고 비교하면서 긍정과 부정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책 중에도 사회 전반에 해악이 되는 책이 있고 게임 중에서는 인간과 사회를 새로운 통찰로 바라보는 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무턱대고 터부시하면서 바라보는 시각은 그래서 근대화 초기 한반도에 들어온 사진기를 보며 영혼을 빨아들인다고 도망치던 시대의 인식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시각일 수 밖에 없다. 게임은 분명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의 주력 매체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가오는 새 미디어를 두려움 없이 대하며, 그로부터 인간이 인간 자신과 세계를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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