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시론] `정치화`된 방송정책](http://contents.dt.co.kr/images/201612/2016120502102351607001[1].jpg "[시론] `정치화`된 방송정책")
지난 20년간 우리 방송정책의 두 축은 '방송산업활성화'와 '매체균형발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수도권 지역 민방인 SBS를 시작으로 케이블TV, 위성방송, DMB, IPTV에 이르기까지 '방송산업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지속적인 신규 매체들이 도입됐다. 그때 마다 기존 매체와 신규 매체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른바 '매체균형발전론'이 항상 제기됐다. 아직까지도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상파방송재송신, 광고 규제완화, 지역방송 같은 쟁점들도 대부분 이와 관련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방송시장의 파이는 늘지 않는 상태에서 새로운 매체들이 진입하면서 환경이 척박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정부의 '유료방송활성화 방안'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작년 말 발표됐던 SKT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무산되면서 정부가 유료방송 활성화 아니 정상화를 위한 정책방안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케이블TV 권역철폐'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사업자간 갈등이 또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경험에 비춰 볼 때 이처럼 규제를 완화 혹은 철폐하는 방송정책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규제를 통해 산업을 활성화하기 방법이 맞는 건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들은 진흥보다 규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특정 사업자의 시장 활동을 제약해서 전체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유통시장 진입을 규제해 골목상권 같은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작년에 출범한 공영 홈쇼핑채널은 그 진수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규제는 산업을 활성화하기보다 위축시킬 가능성이 매우 큰 정책이다. 특히 방송영역에서 규제는 공익성이나 공정성 같은 사업자의 행위를 제한하는 사회적 규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방송 산업을 활성하기 위해 이런 저런 규제들을 자꾸 도입하는 것은 매우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규제 중심의 방송 산업 활성화 정책의 허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전체 산업 측면에서 보면 규제는 파이를 늘리기보다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처럼 법에 명시된 사업만 가능한 이른바 '포지티브 규제' 체계 아래서는 더욱 그렇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나 '비실시간 방송이나 스마트 법' 같은 것들은 소위 '잘 나가는 사업자'를 제약하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러한 법 규제 바탕에는 모든 매체들이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매체간 균형발전'의 논리가 깔려 있어 해당 산업 전체의 성장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
둘째, 규제는 낡은 아날로그 패러다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융합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매체들이 인터넷 공간으로 수렴되는 이른바 '인터넷 프로토콜화'되고 있다. 하지만 방송규제는 전송수단에 따라 차별적 권한과 책무를 부여하는 이른바 '매체특성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때문에 방송규제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는 아날로그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특정 매체에게 부여됐던 공익적 책무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날로그식 규제방식으로 성취 가능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셋째, 규제는 결국 공적 권력을 가진 정부 결정이나 판단에 의존하는 '정부의존형 정책'을 양산하게 된다. 때문에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승부하기 보다 정부정책이나 규제에 크게 의존하게 만든다. 정부의 무슨 정책방안이 발표될 때마다 모든 사업자들이 정부결정에 올인하는 모습은 이제 방송영역에서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심화되다 보니, 방송정책이 입법권을 가진 국회 즉, 정치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방송정책이 정치화되어 버린 것이다.
규제위주의 방송정책은 미디어 기술발달 추세에도 걸맞지 않고 실제 효율성도 기대할 수도 없다. 때문에 디지털 융합시대에 걸맞게 진정한 의미의 '탈규제'가 아닌 '규제패러다임의 탈피'가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부여돼 왔던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책무들 역시 아날로그식 규제 틀을 유지하기 보다 새로운 구현방법을 모색할 시기가 됐다.
'최순실 사태'가 정부규제에 의존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책패러다임의 맹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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