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 자신만의 기술로 창업 활발
진입문턱 낮고 일자리 창출효과도 커
정부 밀착지원으로 글로벌 시장 도전
2013년 제약펀드 시작 잇단 펀드조성
질 높은 의료인재·디지털경쟁력 살려
스타트업· 기술사업화 생태계 키워야
진입문턱 낮고 일자리 창출효과도 커
정부 밀착지원으로 글로벌 시장 도전
2013년 제약펀드 시작 잇단 펀드조성
질 높은 의료인재·디지털경쟁력 살려
스타트업· 기술사업화 생태계 키워야
![[바이오융합] 바이오 기술·IT전문가 의기투합… ‘한국판 길리어드’꿈꾼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10/2018101902101731650001[1].jpg "[바이오융합] 바이오 기술·IT전문가 의기투합… ‘한국판 길리어드’꿈꾼다")
혁신성장 바이오융합이 이끈다
9. 스타트업·벤처창업 주도 '바이오헬스'
1987년, 28세의 젊은 의학박사 마이클 리오단은 모기에 물려 뎅기열로 고생하다 바이오기업 창업을 결심했다. 바이러스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에 직접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세계 바이오산업을 쥐락펴락하는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시작이었다.
리오단은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 생태계 덕분에 공격적 신약개발을 이어갔다. 1992년 나스닥 상장으로 투자자금을 확보했다. 15년 적자 끝에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를 내놓으면서 단숨에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경구용 에이즈치료제, C형 간염치료제, 백혈병치료제 등을 내놓으면서 31년 만에 글로벌 10위권 제약사로 뛰어올랐다.
![[바이오융합] 바이오 기술·IT전문가 의기투합… ‘한국판 길리어드’꿈꾼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10/2018101902101731650001[2].jpg "[바이오융합] 바이오 기술·IT전문가 의기투합… ‘한국판 길리어드’꿈꾼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연간 3조~4조원을 쏟아붓는 공격적 R&D 투자와, 적극적인 개방형혁신 전략, 적자기업을 기다려주는 투자문화 덕분이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54%에 달했다.
길리어드 창업의 출발이 '모기'였다면 제넨텍 설립의 계기는 '맥주'였다. 1976년 1월, 유전자재조합 연구를 하던 미국 UC샌프란시스코의 허버트 보이어 교수는 20대 청년 밥 스완슨과 만나 3시간 넘게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벤처캐피털에 근무하다 실직해 사업기회를 찾던 스완슨은 보이어 교수에게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인슐린 제조에 쓰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설득했다.
마침내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각자 500달러를 내 제넨텍을 세웠다. 기술의 가능성을 알아본 벤처투자자와 연구자의 결합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제넨텍은 세계 최초로 유전자재조합 인슐린과 성장호르몬을 만들었다. 아바스틴, 허셉틴, 리툭산 등 연매출이 10조원에 가까운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도 잇따라 개발, 미국 바이오산업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
제넨텍과 길리어드 사례는 성공한 신약이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가져오고 기술창업을 가능케 하는 투자생태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시켜 준다.
![[바이오융합] 바이오 기술·IT전문가 의기투합… ‘한국판 길리어드’꿈꾼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10/2018101902101731650001[3].jpg "[바이오융합] 바이오 기술·IT전문가 의기투합… ‘한국판 길리어드’꿈꾼다")
과기정통부 제공
◇기술·전문가·기업 모여 '창업 시너지'=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주목받으면서 '한국의 길리어드'가 되고자 하는 스타트업·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는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업 연구소에 몸담고 있던 연구자들이 자신만의 기술을 무기로 창업에 도전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바이오와 디지털 기술 전문가들이 만나 두 분야의 강점을 결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창업의 문턱이 비교적 낮으면서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바이오헬스 산업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정부도 보다 정밀한 창업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이크로진은 유전체와 IT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지난해 9월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기능을 강화한 DNA뱅킹과 유전자 예측서비스, 유전자·환경영향 분석을 통한 질병 발병 예측, 유전정보 콘텐츠와 건강관리 통합서비스가 핵심 사업영역이다.
생명정보학, 디자인, 통계, 공학, 핀테크, 유전체 등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전문가 집단이 모여 융합서비스 사업모델을 그렸다. 회사를 이끄는 신영아 대표는 질병관리본부와 유전체 분석회사, 대학에서 생명정보학 연구를 한 전문가다.
이 회사는 미국 KIC(한국이노베이션센터) 워싱턴의 지원으로 올해 보스톤 바이오 컨벤션에서 베타서비스를 오픈하고, 100여 명을 대상으로 비만과 관련한 약 20개 항목의 유전자 서비스를 제공했다. 조만간 국내에서 클라우드 기반 개인유전자분석 서비스(DTC)도 출시할 예정이다.
이 회사가 글로벌 시장부터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밀착지원 덕분이다. 창업 멤버들은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바이오아이코어사업단 글로벌창업팀에 뽑혀 창업준비부터 사업모델 기획, 글로벌 진출까지 도움을 받았다. 내년에는 유전자분석 서비스를 확장하고 질환예측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블록체인과 머신러닝을 도입해 서비스 품질과 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기술·자본 합작투자형 기업 '주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김병찬 대표가 이끄는 연구원 창업기업 헬스바이옴은 몸속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난치질환 치료제에 승부를 걸었다. 몸속 미생물은 면역, 비만, 질병 등과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김병찬 대표는 공기를 싫어하는 혐기성 미생물을 20년 이상 연구한 연구자로, 최근 세계 최초로 인간 장내 메탄균 게놈을 완전 해독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건강한 사람의 모유나 분변에서 유용한 미생물을 찾아내 질병치료제를 개발한다는 목표 하에 충남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KAIST 등과 협업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비만, 당뇨 치료제 개발이 1차 목표다.
회사 관계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스타트업이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당뇨치료제 임상 1상을 완료하고 글로벌 제약사 투자를 받는 등 인체 미생물을 활용한 사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케이바이오는 생명연 연구진이 보유한 화장품 소재 기술과 화장품 소재 전문회사인 다미화학의 자본이 만나 2016년 창업한 합작투자형 연구소기업으로, 바이오유화제와 발효오일 등 기능성 바이오 원료 사업을 펼치고 있다. KAIST를 졸업하고 아모레퍼시픽과 태평양제약에서 몸담은 홍종언 대표를 핵심으로 기술을 총괄하는 김희식 생명연 박사, 지분참여자 이자 기술전문가인 김진웅 한양대 교수, 최용준 서울시립대 교수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실력 있는 연구자와 산업 전문가들이 팀을 이룬 것이다. 이 회사는 특히 아모레퍼시픽, 코스맥스, 코오롱, HD바이오, 라비오 등 협력·수요 기업들과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토대로 매출을 일으키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환경규제 강화와 소비자들의 수요 변화, 기술발달에 힘입어 발효공정을 이용한 바이오 천연소재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라면서 "세계적으로도 기술 경쟁력이 있는 만큼 수출 시장도 적극적으로 뚫겠다"고 말했다.
◇질 높은 창업 무대 '바이오·헬스'=바이오·헬스케어는 연구실에서 발견한 물질이나 과학적 현상이 바로 사업기회로 이어지는 만큼 창업의 양과 질이 다른 어떤 영역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다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AR(증강현실) 등 디지털기술의 진화에 힘입어 '기회의 폭발'을 눈앞에 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신·인터넷·IT·자동차 등 기존 산업이 플랫폼 중심으로 바뀌면서 거대 자본과 기술을 가진 소수 기업이 주도하는 반면 바이오·헬스 영역은 틈새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도 충분히 경쟁할 만한 시장으로 꼽힌다. 이미 국내에서도 치료 중심 의료를 개인맞춤형 정밀의료,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간 HD(고정밀) 의료시대를 열기 위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술거래와 기업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도 이 영역의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5년과 2016년 바이오 분야 상장기업이 각각 442개와 449곳에 달했다. 유럽에서는 바이오 상장기업이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238개, 259곳이었다. 국내 바이오 중소·벤처기업 창업 수는 2016년 479곳에 달했다. 2014년 176곳, 2015년 259곳에서 2년만에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올해 기술특례 상장기업 8곳 중 6곳이 바이오 분야 기업이었다. 각각 반도체 시스템 테스트와 폐기물 재활용 기계장비를 주업으로 하는 링크제네시스와 에코마이스터를 제외하고 아시아종묘(종자개발), 엔지켐생명과학(신약개발), 오스테오닉(임플란트용 의료기기), 이원다이애그노믹스(유전자 검사서비스), 아이큐어(약물전달시스템), 올릭스(신약개발) 등 6개사가 바이오기술을 토대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015년 도입된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지금까지 43개 기업이 상장됐고, 바이오기업 시가총액 상위인 신라젠, 바이로베드, 제넥신 등이 이를 통해 미래 투자재원을 확보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장 바이오기업 수가 2015년 10개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규제완화·투자 마중물 병행해야 폭발력"= 바이오 투자가 활발한 데는 정부가 투자 마중물을 만들어주는 것이 한몫 한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1000억원 규모의 인터베스트글로벌 제약펀드를 시작으로 2015년 1350억원 규모의 한국투자글로벌제약산업육성PEF, 500억원 규모의 한국의료글로벌진출펀드, 2016년 1500억 원 규모의 글로벌헬스케어펀드를 결성해 투자를 해 오고 있다. 특히 2016년 연말 결성된 LSK-BNH코리아바이오펀드는 정부와 기존 바이오기업이 385억원의 투자금을 모아 초기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국내 의료 인프라와 질 높은 의료분야 인재, 디지털헬스 경쟁력을 살려서 창업·기술사업화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최근 화두인 '데이터경제'를 실험하고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로 병원이 꼽힌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존에 각각 산업을 형성하던 신약·의료기기·의료서비스를 병원 중심으로 연결할 때 폭발적인 신사업 기회가 만들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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