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칼럼] 불확실성 시대의 국가 생존법](http://contents.dt.co.kr/images/201810/2018102602102269660001[1].jpg "[최원목 칼럼] 불확실성 시대의 국가 생존법")
유럽발 불확실성도 만만치 않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탈퇴)가 결정된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영국은 EU와 탈퇴 조건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노딜(No-Deal) 브렉시트가 현실화되고 있어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한순간에 본격화 될 수 있다. EU 공동체 체제를 강조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이에 반기를 든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간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어, 이탈렉시트(Italexit)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엑시트(exit)가 EU와 같은 경제공동체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국제형사공동체로부터도 엑시트도 발생하고 있다. 브룬디와 남아공의 국제형사재판소규정 탈퇴에 이어, 러시아와 필리핀이 탈퇴수순을 밟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2017년 6월 국제기후변화체제(파리기후협약)로부터의 탈퇴도 선언했다. WTO와 같은 다자통상체제는 DDA협상의 실패로 더 이상 진전이 멈추어버렸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의 WTO 탈퇴를 언급한 적도 있다. 이러다간 UN 체제로부터의 엑시트도 가시화될지 모른다.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최고 수준이다. 힘에 의한 대결을 공언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로 이합집산 하는 개도국 그룹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에 놓인 한반도다. 환율전쟁을 위협하는 시대에서도 한반도는 중심에 놓여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초강수를 두어 미중 무역분쟁을 환율전쟁으로 이끈 후 신(新) 플라자 합의로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그리고 북한핵문제 해결을 둘러싼 남·북·미·중 간의 수싸움은 또 얼마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인가.
불확실성 시대의 국가 생존법엔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생존법이 도출된다. 한반도 문제는 당사국인 남한과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은 하나의 정치적 구호여야 한다. 정치구호 수준을 넘어 정말로 그렇게 운전자 정책을 추진해나간다면, 국제관계에서 유토피아를 좇는 것이나 다름 없다. 주변 이해관계국들 간 마찰을 자초하게 돼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게 된다. 둘째, 불확실할수록 선택 가능한 대안을 도출하고 그중 최선의 대안을 선택해나가야 한다.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다는 회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스스로 안전한 길을 선택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한미FTA 재협상에서 자동차, 환경, 의약품, 원산지검증, 통관 등에서 미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후속조치로 환율투명성까지 양보하면서, 그 대가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철강관세 면제(쿼터 수용)를 얻어내고 만 것은 안전한 길에 불과하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셋째, 현실 회피 경향을 회피해내야 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1분위 소득 하위 20%의 소득은 역대 최고치인 8%나 감소했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영업자와 영세중소기업에 직격탄이 쏘아졌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고수하고, 일자리·고용에만 68조 세금을 풀어 세금주도성장으로 막으려하는 것은 현실 회피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불확실성 시대를 맞아 우리로서는 양자협상 환경을 가급적 회피해야 한다. 다자주의 채널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규범 중심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정치문제를 통상문제와 결부시키는 행위의 위험성을 외쳐대야 한다. 과거 중국이 했듯이, 그리고 지금 미국이 하듯이 각종 국내정치와 안보분야에서 상대국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통상보복의 수단에 의지하는 것의 심각성을 다자무대에서 부각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상 방문을 통해 아세안지역과 유럽지역에 이러한 분위기를 확산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키려는 정상외교 말고 말이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