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
![[포럼] `연동형 비례제`가 넘어야 할 산들](http://contents.dt.co.kr/images/201812/2018122002102769640001[1].jpg "[포럼] `연동형 비례제`가 넘어야 할 산들")
여야 5당이 선거제 개편에 합의했다.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 관련 법안을 1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선거제도가 실제로 바뀔지 의구심이 크지만 합의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의석비율이 아닌 정당투표로 결정하는 2004년 1인2표제 도입 이후, 15년 만에 제도적 민주화의 역사적 발걸음을 뗀 것이다. 개편 검토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구체적인 개편으로 이어질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언론에서 말하는 연동형 비례제는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좀 더 쉽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와 다른 3가지 특징은, 유권자의 지역구투표가 아닌 정당투표에 의해 정당별 총의석(지역구의석 포함)을 결정하는 것과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이 반반이라는 점, 비례대표 의원 후보 명단을 권역(주)별로 작성한다는 점이다. 2016년 총선이 연동형 비례제였다면 정당투표 26.7%를 얻은 국민의당은 300석 중 80석 정도를, 7.2%의 정의당은 20석 이상을, 25.5%의 민주당은 국민의당보다 적은 의석을 가져갔어야 한다. 이처럼 연동형 비례제는 소선거구제에서 제1·제2정당이 가져가는 불합리한 이익을 되돌리고 독일·뉴질랜드처럼 제3·제4의 정당에게 국민지지율만큼 의석을 배분해 거대양당의 기득권 정치를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거대양당이 독점해 국민을 볼모로 벼랑 끝 대결을 반복하는 '다수제 정치'를 다수의 정당에 의해 쟁점에 따라 대화와 합의의 구도를 달리하는 '합의형 정치'로 바꿀 절호의 기회다.
연동형 비례제의 최종 합의를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의원정수 문제다. 중앙선관위의 제시처럼 비례대표가 100명은 되어야 비례제 확대의 의미가 있는데 이를 위해 의원정수를 늘리지 않고 지역구의석을 축소하는 것은 영호남에서 유리한 한국당·민주당 현역의원의 대승적 양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권자수 및 경제규모 등을 고려할 때 의원정수 증원이 필요하다는 학계의 주장이 있으나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높은 국민정서는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성사시킨 정치권의 합의 정신을 살리고 개혁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의원정수 증원 없이, 현재 47명(15.7%)의 비례대표를 75명(25%) 정도로 늘린 연동제가 합의 가능한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전국을 4~5개로 나눈 권역별 정당명부 작성과 지역구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회생시키는 석패율제 등의 세부적인 방법을 통해 개혁에 따른 파장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합의형 정치'의 모색은 권력을 분산하고 책임을 공유하는 방향의 권력구조 개편과 병행할 때 더욱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거대한 두 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오히려 둘 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개헌과 달리 선거제 개편은 정치권 합의에 의해 공직선거법 및 관련 법안을 개정하면 가능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또한 선거제 개편을 다른 쟁점과 연계해 '패키지 법안'으로 처리하는 것도 실현가능성을 낮추는 것인데 선거제 개편에만 집중해도 1월 임시국회 처리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가 동시에 단식농성을 벌이면서 선거제 개편이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지 의아해하는 국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필자가 단언컨대, 연동형 비례제의 도입은 한국정치의 구조를 바꿀 거대한 역사적인 개혁이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1987년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로 민주화 이후에는 '영남 대 호남'의 지역대결구도로 점철되었다. 2002년 대선 이후 이념·세대이슈가 부상했지만 아직도 지역주의는 지배적인 사회균열구조이다. 연동제 비례제가 도입되어 다당제가 형성되면 과도한 지역·이념 경쟁구도는 대폭 완화되고 권력과 책임이 여러 정당으로 분산되어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새로운 합의형 정치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