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침체에 원화 불안 확산
고액자산가 달러 투자수요 급증
고액자산가 달러 투자수요 급증
성큼 다가온 '强달러 시대'
# "일단은 바꿔두고 보자."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A모씨는 50억원대 금융자산가다. 대학에서 재무회계를 가르치는 그는 대체연휴 바로 다음날인 지난 7일 5억원의 금융자산을 달러로 바꿨다. 당장 쓸 돈만 남기고 모두 달러로 환전해 예금했다. 그렇게 사들인 달러만 한주새 12억원이 넘는다.
국내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하면서 강남 큰 손 등 일부 고액자산가를 중심으로 '달러 사재기' 붐이 일고 있다. 강달러가 지속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달러 투자 수요가 늘어난 결과다.
8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4원 오른 1169.40원에 마감했다. 연초 1116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고공행진하며 지난 3일 1170원을 기록, 2017년1월20일(장중 고가 1177.70원) 이후 2년3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성장 우려와 추가경정예산 규모에 대한 실망감으로 환율이 12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달러에도 불구하고,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에 힘입어 자산가들의 달러 투자가 이어지면서 시중은행은 물론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센터들도 바빠졌다. 김현섭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도곡스타PB센터 팀장은 "국내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심리도 한 이유지만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깨달은 고객들의 경제적 식견이 넓어진 결과"라며 "엔화, 유로도 있지만 환전 후 정기예금 시 연 2%가 넘는 이자가 발생하는 달러투자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에서 투자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자산가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가 향후 2~3년간 전개될 것이란 전망을 거두지 못한데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기 역시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는 점도 강달러 속 달러 투자 열기를 끌어올린 이유가 됐다. 김진곤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 상무는 "글로벌 경제 회복은 물론 미중 무역분쟁 결과가 비관적일 가능성이 높아지자 고객들의 외화자산 비중확대, 그중에서도 달러비중을 압도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센터가 굴리는 전 금융비중의 절반 이상이 외화다.
시중에 떠도는 '화폐개혁설'도 고액자산가들의 달러 투심을 자극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근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한 설이 떠들썩한 것과 관련 정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잡음은 여전한 상태다. 김진곤 상무는 "시장에 계속 화폐개혁에 대한 얘기가 돈다"며 "근거도 뚜렷하지 않고 방향성도 명확치 않은데 얘기가 자꾸 회자된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기저에 강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달러 정기예금 외에 달러 주가연계증권(ELS) 선호도도 높은 추세다. 김현섭 팀장은 "기대수익률이 높은 ELS를 찾는 고객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달러는 아니지만 환율이 개입돼 외화통화 투자효과가 기대되고 전액 비과세인 KRX금현물 시장 투자는 물론, 달러 연금보험 등도 요즘 인기"라고 말했다.
다만 강달러 추세가 변곡점에 놓일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일시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는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원달러가 1140원을 넘으면서부터 이미 부담스러운 가격이 된 게 사실이고 1170원까지 너무 단기에 급등했다"며 "장기적으로 봐도 환율은 워낙 다양한 변수에 흔들리는 것인 만큼 지금과 같은 단기급등 수직 돌파 타이밍에서의 추가 환전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달러화 강세는 여타 금융자산 대비 달러 표시 자산수요가 우월했던 결과이기도 하지만 최근 강달러 국면에서 미국 채권과 주식이 동반강세를 나타내며 가격 매력이 낮아지고 있다"며 "달러화 약세 반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현정기자 hjcha@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