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영 정경부 금융팀장
![[DT현장] 금융사 민낯 드러낸 `키코 데자뷰`](http://contents.dt.co.kr/images/201908/2019082202102269727001[1].jpg "[DT현장] 금융사 민낯 드러낸 `키코 데자뷰`")
치열한 책임공방이 예상되는 상품을 판 시중은행과 이를 산 투자자, 그리고 금융감독원장의 말이다. 은행들이 DLS를 사모펀드 형태로 만든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예고되면서 금융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DLS는 해외 주가지수 대신 미국·영국·독일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해 금리인상을 예상하고 만든 상품이다. 그런데 하반기 금리인하 기조 속에 이 전망은 180도 뒤틀렸다. 금융시장의 후진성을 드러낸 파생상품 책임공방은 이미 점입가경이다.
은행 측의 주장은 이렇다. "금융투자를 사모펀드로 첫 시작하는 투자자는 극히 드물다. 금리 파생상품에 2억원씩 투자할 정도라면 '고수익=고위험'이라는 기본원리 정도는 안다. 해외 국채 금리 하락이 글로벌 저금리 국면에서 예상 가능한 것인 지는 전문가도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은행은 수수료 목적이 아닌 전망과 수요에 따라 상품을 설계했다."
이에 투자자는 항변한다. "은행에 DLS 투자자 피해 전액 배상을 요구하는 공동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장의 관리 책임, 지점장과 판매자의 책임을 묻겠다. 은행은 주요국 국채에 투자하는 안전성 높은 상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상품은 국채금리 변동 파생상품이다. 은행은 금리가 일정 범위 밑으로 떨어지면 전액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동안 손놓고 있었던 감독당국은 다급해졌다. "금융기관이 옵션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개인들에게 판매했다면 당국이 방치할 순 없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상품 손실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파장이 커진다. 누가 이득을 봤는지는 검사 대상이 아니다. 1차 쟁점은 '불완전 판매' 여부가 될 것이다. 자격을 갖춘 직원이 팔았는지도 들여다 볼 생각이다."
이번 사태는 10년 전 수출 기업들에 재앙이었던 키코(KIKO) 사태를 닮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연동 파생상품에 가입했던 기업들은 줄도산했다. 키코의 변수가 '환율'이었다면 이번에는 '금리'다. 당시는 주요 피해자가 중소기업이고 지금은 일반 투자자들이다. 8224억원 어치가 팔린 상품의 96%는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을 통해 팔렸다.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 이상으로, 전체 판매액 중 개인투자자(3654명)의 자금이 89%를 차지한다. 당장 내달 19일 첫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확정된다.
우선 이번 기회에 금융당국은 금융파생상품을 은행에서 파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지 적극적인 검토가 이뤄지길 바란다. 은행이 대출을 통해 이자 장사를 하는 곳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비이자 이익을 늘리려는 대형 은행이 파는 고위험 상품 투자를 유도하는 패턴은 계속되고 있다. 은행장 등 최고경영자(CEO)에도 책임을 묻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투자자들도 금융투자 시 더 철저히 살펴야 한다. 자본주의 속성은 돈이 돈을 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금융상품은 고수익 가능성만큼 이나 원금손실 위험도 크다. 레버리지 규모는 항상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기치를 내걸고 있다. 물론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나 자기투자책임의 원칙까지 보상해 줄 순 없다. 투자자의 손해를 배상하는 첫 전례를 남기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고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키코 사태에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또 다시 DLS 사태를 맞았다. 수익성보다 리스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불완전 판매 근절책이 매우 시급한 시점이다. 파생상품인 DLS·DLF를 직접 기획 제공한 자산운용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사가 필요하다.
실질금리 사실상 0% 시대다. 금·달러 등 안전자산에 몰리는 시중자금이 결국은 예·적금 이율을 넘어선 투자상품으로 갈 수 밖에 없다. 환율·유가·주가와 연계한 파생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돈이 몰리는 이유다. 더 다양한 투자상품이 고안돼 금융투자 기회가 보장돼야 하지만, 더는 피눈물 쏟는 판단을 하는 이가 없도록 강력한 투자지침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심화영 정경부 금융팀장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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