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승제 정경부 기자
![[DT현장] `아싸 부총리`](http://contents.dt.co.kr/images/201908/2019082702102269029001[1].jpg "[DT현장] `아싸 부총리`")
지난달 4일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기업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작년 12월 10일 취임한 그는 소상공인과 기업인, 경영계 인사들과 잦은 만남을 갖는 등 이른바 '친기업 성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뒤이어 나와야 할 현장 행보에 대한 성과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성과는 커녕 대외 행보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거나 그의 존재감을 잃게 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사례는 이렇다. 홍 부총리가 연구기관장들과 만난 23일 기재부는 때 아닌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연구기관장들이 홍 부총리에게 경제성장률을 2%대로 낮춰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2.5%로 제시했다. 기재부는 즉각 자료를 내고 "금일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애초에 홍 부총리가 기자들과 만나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설명했다면 굳이 해명자료를 내는 일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홍 부총리는 현장을 중시하지만 유독 현장에 동행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결국 기자들은 간담회에 동석한 다른 인사들에게 질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기사화한다. 이 과정에서 종종 기재부를 당혹스럽게 하는 보도가 나온다.
그런데 이날 행간을 보면 차라리 해명자료를 내지 않는 것이 옳을 뻔 했다. 홍 부총리와 연구기관장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일본의 반응에 따라 경제적 측면에서 어려움과 불확실성이 쉽게 걷히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내외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등 우리 경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내용이 주류였다. 경제 수장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강조했는데 다른 한편에선 정부가 숫자(경제성장률)에 집착하는 촌극이 발생한 것이다.
더군다나 홍 부총리가 연구기관장과 만난 것이 이번에 세번째다. 홍 부총리는 지난 3월과 6월 각각 연구기관장과 만나 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조언을 들은 바 있다.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미중 무역전쟁의 패권 다툼 갈등이 더 심화됐고 지소미아 종료 선언으로 일본의 추가 수출규제 가능성은 더 커졌다. 잠잠했던 금융시장은 혼란의 연속으로 변했다. 주가는 2000선에 이어 1900선마저 붕괴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까지 치솟아 외화 유동성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홍 부총리의 존재감이 약해진 사례도 있다. 시계를 홍 부총리가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 방문했던 지난 12일로 되돌려 보자. 그날 성윤모 산업통상부 장관은 일본을 수출우대국, 즉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취재진은 성 장관에게 몰렸다. 지상파 등 주요 방송사들은 이날 생중계를 편성, 발 빠르게 관련 소식을 전했고 주요 일간지도 1면과 종합면을 할애하는 데 아끼지 않았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브리핑은 국내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반면 홍 부총리 디스플레이 간담회 소식은 주요 미디어에서 대부분 단신으로 처리했다. 물론 홍 부총리의 현장 방문 취지는 공감한다. 한국과 일본의 강대강 전략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곳은 기업일 수밖에 없다. 경제 수장이 현장에 달려가 기업인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행보임에는 틀림없다. 이 때문인지 이날 홍 부총리는 모든 일정이 끝난 뒤 취재기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짧은 간담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의 멘트를 받아 쓴 매체는 소수에 불과했다. 당일 오후 4시 30분께 홍 부총리와의 간담회가 끝났는데 5시께 세종 주재 기자들이 파주에서 세종으로 이동해야 하는 숨 막히는 스케줄이 원인이었다.
결국 기자들은 제대로 된 기사를 쓰지 못했고 이로 인해 홍 부총리의 존재감은 더 약해졌다. 최근 홍 부총리는 '아싸'(아웃 사이더의 준말) 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와 여당의 목소리에 덮여 주요 정책 과정에서 소외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생겨난 별명(?)이다. 앞으로 그가 기자들에게도 '아싸'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경제 수장이나 CEO들에겐 현장과 소통은 동의어로 인식된다. 특히 경제 수장이 현장 행보에 나섰다면 당연히 그 결과는 기자들과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홍 부총리에겐 당분간 이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기자가 파주출판단지에서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이 기자 간담회 앞에서 혼잣말을 한 홍 부총리의 첫 마디였다. "여긴 카메라가 없나. 카메라가 없으니 살 것 같네."
성승제기자 ba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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