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포럼] 이제, 과학기술인이 나설 때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09/2019091902102369061001[1].jpg "[포럼] 이제, 과학기술인이 나설 때다")
한일간 갈등이 표면화 될 때마다 일본으로부터 원자재 공급 중단이 한국 산업계가 피하고 싶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겨져 나름의 대비책을 고심해왔지만 실제로 이를 실현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의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29일 우리 정부는 일본의 조치에 대응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연구개발 및 투자전략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7월초 일본정부의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방침이 발표된 이후,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 혁신본부가 주도하여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대책 마련에 많은 공을 들였고 이번 발표된 내용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향후 3년간 총 5조원의 연구개발자금을 투입하여 일본 의존도가 큰 반도체, 디스플레이, 에너지, 자동차산업에 필요한 핵심소재, 부품 및 장비 등 100여개를 국산화 또는 자립화하겠다는 내용이 중심이 된 이번 정부의 종합대책안은 일본의 공세에 우리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일종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일본의 도발로 촉발된 작금의 사태는 단기적 관점에서는 우리 경제와 산업분야에 타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취약했던 국내 소재·부품·장비 관련 분야에서 풀뿌리 산업기술 개발을 꾀하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향후 우리 산업분야의 기술 국산화·자립화를 이루는 일대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단순히 막대한 예산을 쏟고, 연구비를 늘린다고 해서, 단기간에 일본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럴 때 일수록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간다는 심정으로 차분하게 R&D 체계 구축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연구인력 양성 등 기술개발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일에 소홀히하지 않고, 동시에 산업계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 수요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맞춤형 R&D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연구주체간 유기적인 협력체제가 필수적이다. 그동안 OECD국가 중 GDP 대비 가장 높은 비율의 연구비를 투입한 덕분에 우리나라는 많은 원천기술들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원천기술이 실험실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즉, 개발된 원천기술이 산업계에 연결되어 소재·부품의 자립화까지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제가 해결되어야하는데, 특히 이때 기술의 수요자인 기업과의 연계와 협력이 필수적인데, 이것이 부족할 경우, 많은 경우 원천기술은 더 이상 상용화, 제품 양산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 불리는 기술 상용화 과정에서 여러 장애물에 부딪혀 좌절하게 된다. 따라서 기술 자립화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술의 생산자인 연구자와 수요자인 기업 사이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구축해 선진 연구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맞이하는 과학기술인들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를 대표하여 종합대책을 발표한 과학기술혁신본부 김성수 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의 해결은 과학기술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며 결과와 성과를 반드시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감정이 북받쳐 울먹이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제 과학기술자들이 국민에게 화답할 때다. 우리가 나서서 이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 그동안 과학기술계에 응원과 성원을 보내준 국민들을 안심시켜드릴 때다. 바로 지금, 과학자들이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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