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정경부 기자
![[DT현장] 삭발은 공천투쟁?](http://contents.dt.co.kr/images/201909/2019092602102269044001[1].jpg "[DT현장] 삭발은 공천투쟁?")
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의 삭발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던 황 대표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는 결과를 얻었다는 평을 들었다. 우선 황 대표의 삭발은 '조국 이슈'에도 불구하고 정체기에 갇혀 있던 한국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황 대표가 삭발을 한 뒤 나온 리얼미터의 9월 3주차 주중집계 여론조사(tbs 의뢰·조사기간 16~18일·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과를 보면 한국당의 지지율은 32.1%로 전 주와 비교해 2.0%포인트가 올랐다. 특히 황 대표가 삭발을 했던 16일 일간 지지율은 36.1%로, 더불어민주당(37.1%)을 1.0%포인트 차까지 따라붙었다.
반면 파급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황 대표가 삭발을 결정했을 당시 당 내부에서는 걱정하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인식이 있었고, 당 지도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외에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틀린 우려는 아니었다. 황 대표의 삭발 이후 가장 먼저 삭발했던 무소속 이언주 의원의 주목도가 더 올랐다. 제1야당 대표까지 삭발하게 만들 정도로 여파가 강력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한국당의 릴레이 삭발은 오히려 여론의 관심을 식히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조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10여 일째 단식 중인 이학재 한국당 의원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삭발이나 단식의 목적이 '조국 퇴진'에 있는 게 아니라 '공천'에 있다는 의심이 커졌다. 이들이 보여주려는 결연한 의지가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공천권을 쥔 대표를 향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박찬대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삭발과 단식이 '총선행 급행열차 표'란 의심까지 일고 있다"면서 "정치적 위기에 놓인 정치인들이 '공천 눈도장'을 찍기 위한 행위"라고 깎아내렸다. 여영국 정의당 대변인은 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이 '공천경쟁'이라고 규정했다. 여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국당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삭발을 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공천을 갈구하는 격렬한 몸짓이 비단 한국당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나. 집권여당인 민주당도 대규모 물갈이 예고로 연일 술렁이고 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불출마설이 퍼지자 즉각 부인하며 예민한 반응을 쏟아냈다. 바른미래당의 길고 긴 집안싸움이나 민주평화당과 대안정치연대가 갈라선 것도 공천 주도권 다툼이라는 이유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선거에 나가 당선되는 것보다 공천받는 게 더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비정규직인 국회의원들은 4년마다 1번씩 고용불안을 겪는다. 얼마나 힘들게 공을 들여 얻은 자리인데 4년 만에 놓친다는 것은 생각하기 싫은 일일 것이다. 공천은 그들에게 고용연장의 1차 관문이다. 과거에는 선수가 높은 중진일수록 공천권을 쥐고 있는 대표와 가까울수록 공천 관문을 통과하기 쉬웠다. 그러나 연이어 공천비리가 터지면서 공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졌고 그 관문은 더욱 좁아졌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당 간의 모든 투쟁이 본질적인 목표를 위한 투쟁일 뿐만 아니라 관직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고 했다. 관직 참여에서 냉대를 받는 것은 정당으로서 본질적인 목표에 대한 위반행위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했다. 이 명제에서 '관직'을 '공천'으로 바꿔도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의 모든 투쟁은 본질적인 목표를 위한 투쟁일 뿐만 아니라 공천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공천 참여에서 냉대를 받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본질적인 목표에 대한 위반행위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베버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이 열정(정열)과 책임감, 균형적 판단이라고 했다. 정치인들의 열정과 책임감, 균형적 판단이 민생현장에서 발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
김미경 정경부 기자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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