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ICT과학부 기자
![[DT현장] 성급함이 바이오산업 망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0102102269102001[1].jpg "[DT현장] 성급함이 바이오산업 망친다")
20년 전보다 바이오, 특히 바이오의약 분야 기업수는 크게 늘었고, 기술수출과 글로벌 임상 돌입 소식을 알리며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는 곳도 속속 생기고 있다. 항체신약 개발 전문 바이오기업인 파멥신은 최근 뇌종양 치료제 후보물질 '올린바시맵'(TTAC-0001)의 아바스틴 불응성 재발 뇌종양 임상 2상 연구를 미국·호주에서 시작했다. 후보물질은 지난 2018년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희귀질환치료제(ODD)로 지정받아 임상 2상 자료만으로 판매 허가가 가능하다.
또한 면역항암제·차세대 표적항암제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제노스코는 비소세포폐암 치료물질 '레이저티닙'으로 연구개발-기술이전-수익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어하는 한국 바이오벤처기업들에게 있어 대표 성공모델이 되고 있다. 이 회사는 레이저티닙을 개발해 유한양행에 넘겼고, 지난해 유한양행은 얀센 바이오테크에 이를 1조4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최근에는 디앤디파마텍이 자회사 세랄리 파이브로시스를 통해 개발 중인 섬유화 치료제 'TLY012'가 미국 FDA로부터 만성췌장염에 대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냈다. 이에 따라 TLY012는 신약 허가 심사비용을 면제받게 되며 우선심사 신청권, 시판 허가 승인 시 7년간 독점권 인정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신약개발 글로벌 임상·허가 단계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실패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신약개발 완성의 바로 전 단계인 임상3상 단계까지 잘 진입해 놓고 어이없는 결함으로 그 동안 해왔던 연구개발의 가치가 깡그리 망가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신경병증 치료제 후보물질 '엔젠시스', 신라젠의 바이러스 기반 면역항암제 '펙사벡' 임상실패 비보가 대표적이다. 헬릭스미스는 지난 23일 엔젠시스의 임상 3상에서 일부 환자가 위약과 약물을 혼용했을 가능성이 발견됐으며 이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공시했다.
이에 앞서 신라젠은 지난 8월 미국 DMC(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로부터 펙사백 임상시험을 중단할 것을 권고받았다. 펙사백의 간암 대상 임상 3상시험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회사 측은 이번 임상 중단 권고에 대해, 임상 참여자 중 일부가 임상 약물 외에 다른 약물을 투여 받은 데 따른 영향으로 추정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는 주성분이 뒤바뀐 사실이 드러나 허가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러한 실패 사례는 어렵게 쌓아온 바이오 신약개발 산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투자 시장에서 이 산업을 향한 온기를 거두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매년 신제품이 쏟아지는 휴대폰과는 다른 품목이다. 개발에 최소 10년이 걸리는 산업이고, 다국적 제약사들조차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실패에 대한 비난을 삼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패 원인으로 똑같은 지적이 반복돼오고 있다면 달리 봐야 한다. 장기적 눈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산업의 특성을 방패삼아 언제까지 덮어둘 수만은 없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허점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발 실패가 반복될 때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이 임상 디자인 역량의 부족이다. 당장 기업가치를 띄우려 무조건 글로벌 임상부터 추진하고 나설 게 아니라, 임상의 성패를 좌우하는 임상디자인 역량과 CRO(임상수탁기관)에 대한 통제력부터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적지 않은 바이오기업들이 신약개발 완성의 직전단계라고 일컬어지는 글로벌 임상 3상에 진입하고 있지만, 정작 임상디자인 설계 역량은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을 충족시킬 만큼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도 임상디자인 역량을 높이기 위한 장기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오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은 공허한 외침밖에 안된다. 스무살은 언제까지 성장통만 계속할 수는 없는 나이다.
김수연 ICT과학부 기자 newsnews@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