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영 정경부 금융팀장
![[DT현장] 韓銀, 제목소리 내야 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1002102269727001[1].jpg "[DT현장] 韓銀, 제목소리 내야 한다")
'엘리트'가 모인 중앙은행의 분위기는 거시경제 분석이 매일 같이 이뤄지는 연구자적인 모습이다. 이런 한은을 두고 일각에선 '한은사'라고 부른다. '절간 같다'는 의미라 요즘 시대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통하기는 어려운 단어다. 한은에서 금융당국으로 옮긴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매일같이 사건이 터져 대처해야 하는 역동적인 분위기라 더 적성에 맞았다"고 차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한 야당의원은 "어려워지는 경제사정에서 한은이 너무나 적막하다.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이 전반적인 거시경제 관리에서 미적지근한 모습으로 일관한다는 목소리가 왜 자꾸 나오는 것일까. 간단하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디플레이션은 생산 위축과 가혹한 실업을 불러온다. 지금이 디플레 징후가 맞는다면 길고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지표가 수 개월째 좋지 않은데 한은이 시종일관 '일관성'을 견지하는 것을 두고 '존재감이 없다'고 비꼰 것이다. 저물가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력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말대로 제한적일 수 있다. 게다가 통화정책으로 인해 더 큰 경제 혼란이 이어질 수도 있기에 중앙은행의 입장은 신중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중앙은행에 신뢰를 보내고 기대하는 바가 있다. 그건 바로 "한은이 자체적인 관점에서 시그널을 주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특히 불확실성이 커질 때는 더욱 그렇다.
중앙은행이 위임받은 '권한'은 경기확장기에는 기준금리를 올리고, 경기수축기에는 기준금리를 내려 유동성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금의 물가지수 마이너스 폭은 이례적이고 계절적인 요인이 크다. 그런 요인을 제거하면 현재 물가지수는 0%대 후반이며 내년 반등한다. 일반적인 정의에 따르면 지금은 디플레이션 징후로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한은의 통화정책은 이 같은 판단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경제가 어렵단 탄식이 들리고,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특성상 금융과 거시경제 분야에 관한 연구용역이 많다. 그러나 경제성장 둔화세가 심상치 않다면 달라질 수 있다. 우수한 인재가 모인 중앙은행이 경제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전망·처방이 담긴 '당돌한 보고서'를 내놓길 기대하는 이유다.
2013년 3월에 시작된 경기확장기에 한은은 기준금리를 1.50%p 내렸다. 경기정점이었던 2017년 9월 이후에는 두 번에 걸쳐 0.50%p 올렸다가 지난 7월에 0.25%p를 내렸다. 이때는 경기 정점을 1년 4개월이나 지난 시점(2018.11월)에 기준금리를 올리기로 했다. 한 국회의원은 "경기 상승기에 금리가 수 차례 인하되고 경기 하강기에는 금리가 인상됐다"며 "엇박자를 낸다는 판단이 든다. 정부 입김이 들어가 독립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혹을 사지 않기 위한 전제조건은 '한은의 독립성'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정권이 노리는 먹잇감이다. 글로벌 경기둔화가 길어지면서 중앙은행을 '압박'하는 각국 정부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한국 중앙은행의 독립성 점수는 좋지 않다. 한은의 독립성 순위는 28개국 중 23위(국제통화기금 2007)로 비교 대상 선진국 중 하위권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디플레는 뒷북보다 차라리 과잉 대응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10월과 11월 한은은 또 다시 통화정책 결정을 앞두고 고심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 대부분 중앙은행들 역시 '디플레이션'과 전쟁 중이다. 지난 5월에도 한은은 "미·중 무역협상은 이번주 재개된다. 크게 불안해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IMF를 맞았던 지난 1998년 이후 명목 GDP 성장률은 20년 만에 최저치다. 물가도 비상이다. 지난 9월 물가상승률은 통계작성 이후 54년 만에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재정 퍼주기도 매우 심각하다. 외환위기·금융위기도 아닌데 각종 수치가 고꾸라지는 이유에 대해 한은은 적시할 필요가 있다. 한은이 경기대응능력을 높여 선제적으로 대응하길 바란다. 한은이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는 메시지를 낸다고, 우리 경제의 방향성에 대해 시각을 드러낸다고 오지랖 넓다고 할 이는 없다.
심화영 정경부 금융팀장 dorot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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