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인사이트] 보행천국 더블린](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1402102269607001[1].jpg "[유로 인사이트] 보행천국 더블린")
조은애 통신원의 유로 인사이트
더블린에 왔을 때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차량이 천천히 달린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같은 큰 도로가 없고 도로 폭이 좁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교통 법규도 한 몫을 한다.
더블린 교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람이 먼저'다. 아무리 보행자가 무단 횡단을 해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도 사고 책임은 운전자에게 가중된다. 그래서 더블린에는 무단 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무단횡단은 선진화된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도로 폭 자체가 좁기도 하고 보행 신호가 빨리 돌아오지 않아서 대부분 보행자는 차량이 오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기 일쑤다. 차량이 오고 있어도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또 다른 재미있는 법이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운전자가 보행자에게 물을 튀기다 경찰에 적발되면 도로교통법(RTA)에 따라서 면허가 정지될 수 있다. 코너에 진입하거나 상대 차량이 잘 보이지 않는 등 상황에서만 경적을 울려야 하고 오후 11시 30분부터 오전 7시까지는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경적을 울리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운전면허 따는 것도 기간이 상당히 길고 까다롭다. 10만km 이상 주행해야 숙련된 운전자가 돼 각종 제한이 풀리는 만큼, 도로 위 적지 않은 운전자는 연수자(Learner) 혹은 초보자(Novice) 단계다.
아일랜드에서 최초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 반이 걸린다. 물론 그동안 아예 운전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바로 연수 단계로 들어서는데 이때부터 운전을 할 수 있긴 하다. 단 숙련된 운전자나 강사가 합석해야만 가능하다. 최소 6개월간 이런 식으로 운전을 하면 주행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여기에 합격하면 초보자 단계가 된다. 초보자 단계부터는 숙련자 대동 없이도 운전이 가능하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식 운전면허를 발급받은 단계는 아니다. 정식 운전 면허증은 초보 운전을 밟은 지 2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
연수자와 초보자는 반드시 차량 앞뒤에 각각 L과 N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아직 정식 면허증이 없는 운전자이니 서로 안전 운전을 하고 양보를 하자는 의미다. 정식 면허를 받기 위한 절차가 길다 보니 이 스티커를 붙인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는 것도 교통 법규를 강하게 적용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중교통 비용이 많이 들고 한국처럼 비용이 절약되는 환승 제도가 없기 때문에 자전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블린이 작은 도시인 데다 평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자전거도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반드시 차량과 함께 도로 위에서 교통법규를 따르며 운전해야 한다. 보행자 도로에서 자전거를 운전하면 욕먹기 딱 좋다.
그래선지 도로 위 차량은 느리게 달린다. 무엇보다 보행자를 우선한다. 더블린에 와서 놀랐던 점은 운전자가 가도 되는 상황에서도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하면 항상 멈춰 선다는 점이다. 아무리 차량 신호등이 녹색이어도 말이다. 짧은 2차선 도로를 건너려는데 앞에 오던 차량이 미리 멈춰서 필자에게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을 해준 경우가 많았다. 정치 슬로건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먼저다'가 더블린 도로 위에선 정말로 지켜지고 있었다.
다행히 지난 9월부터 영문운전면허증이 적용돼 한국인은 아일랜드에 와서 운전면허를 받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안전 운전을 생각한다면 규정이 더 엄격해질 필요성은 있다. 지난해 아일랜드 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49명으로 4%로 떨어졌다. 이는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지난 195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더블린(아일랜드)=echoscv@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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