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DT현장] 어떻게 이 상처를 치유해야 하나](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1702102269607001[1].jpg "[DT현장] 어떻게 이 상처를 치유해야 하나")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정상회의에서 감정을 숨기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음성이 회의장에 카랑카랑 울려 퍼졌다. 그는 절규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16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였다. 머리를 단단하게 딴 여린 체구에 똘망똘망한 눈. 그는 외쳤다. "당신들이 헛된 말로 제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다"라고.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뒤통수를 향해 분노가 가득한 레이저 눈빛을 날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를 10대 환경운동가로 부른다.
세계는 지금 툰베리 류의 '앵그리 영맨'들이 사회 변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다시금 이들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홍콩 시위는 더 극적이다. 이들은 부당함을 주저없이 주장하고 바꾸려 한다. 환경이슈와 인권, 인종문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좀 차분하게 들여다 보면 젊은 세대들의 분노는 사라져버린 '공정'에 대한 분노로 귀결되고 있다. 사회 시스템에 '공정'을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히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공정이라는 의제가 어떤 구조에서 나왔는지 짚어주는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밀레니얼 세대 저널리스트로 알려진 맬컴 해리스가 쓴 '밀레니얼 선언'이란 책이다. 그는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의미를 제시하는지 다각도로 진단했다. 저자는 공정이라는 이슈를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살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공정이라는 이슈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취업시장에서 팔릴 만한 '상품'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온갖 스펙을 쌓았다. 그런데 막상 올라와보니, 사방에 문은 굳게 닫혀있는 현실에 마주하게 된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망가진 사다리'도 아닌, 통째로 '사라져 버린 사다리'다. 부와 권력을 모두 장악한 윗세대는 또다른 장막을 치며 그들의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다. 오죽하면 '88만원 세대' 정치인 조용술씨가 "386이여, 어쩌다 파쇼가 되었나"라고 한탄까지 했을까.
젊은 세대가 가장 크게 관심 갖는 가치는 공정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공정한 기회의 균등이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게임의 규칙'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다시 '조국 사태'를 복기해본다. 8월9일 법무부 장관 지명부터 10월 14일 사퇴까지 66일 동안 나라는 쩍쩍 갈라졌다. 사법 개혁을 부르짖던 소장파 학자 출신인 그에게서 연일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급기야 주말마다 공휴일마다 광화문과 서초동 광장에서 조국사퇴와 조국수호로 격렬하게 분열했다.
애초부터 상식을 벗어난 인사였다. 아빠 찬스로, 엄마 찬스로 포장된 입시의혹은 젊은 세대들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위선과 특혜, 반칙 의혹은 대한민국 장관에게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를 인식한 발언이었으리라. 조국 전 장관은 사임 발표문에서 "상처받은 젊은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고개 숙였다. 늦었다. 너무 늦었다. 그 상처가 봉합되기까지 어쩌면 66일을 넘어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피폐한 도시와 병든 광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조커'를 봤다. 공감없는 사회가 어떻게 한 인간이 쇄락해가며, 공동체가 파괴되는지 음산한 스크린은 그 자체로 말을 건넨다. 영화를 만든 토드 필립스 감독은 선과 악을 가르는 잣대는 '공감 능력'이라고 했다. 영화의 배경은 40여 년 전이지만, 영화에 담긴 묵직한 문제의식은 오늘 우리 사회를 뒤덮은 공정 이슈와 맞닿아 있다.
툰베리가 미국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열린 청소년 패널에 참석해 연설을 끝낸 후 한 인디언 주민과 포옹했다. 인디언 복장과 비슷한 원색의 망토를 걸친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툰베리에겐 보편적인 공감능력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젊은세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아마 툰베리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시민사회와의 공감, 균형감 갖춘 눈높이가 답이죠"라고.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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