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DT현장] 사모펀드에 새겨진 주홍글씨](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2402102269061002[1].jpg "[DT현장] 사모펀드에 새겨진 주홍글씨")
위기를 부추기는 새로운 요인들이 줄지어 등장하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대란 사태가 불거진 게 시작이 됐다. 금융사만 믿다가 날린 자금이 수천억원, 깡통계좌를 받아든 피해자만 3243명에 달한다. 불완전판매 여부는 아직도 핵심 쟁점이며 그 피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4월 '금융소비자 보호 종합방안'에 이어 7월 '고령층 금융상품 계약시 지정인 알림서비스' 등 파생상품 가입에 따른 피해 방안을 내놨던 금융위원회 취지가 무색해진다.
그런데 또 터졌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다. 고위험 메자닌에 투자하고, 편법거래를 통해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관리했다는 의혹으로 지난 8월부터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받던 라임자산운용이 돌연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실을 알리면서다. 소문이 번지며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한 펀드에서 투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결국 라임자산운용은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당초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짐작됐던 발 묶인 돈은 무려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자 수는 총 4096명, 이 중 개인투자자만 3606명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손실을 막기 위해 환매를 중단한 것일뿐 확정 손실은 아닌 만큼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자는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펀드에 묶인 돈을 투자자가 돌려받기까지 최대 4~5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추가 투자자 피해를 막을 방안이 시급하다. 전망은 더 암울하다. 환매 중단 규모가 추가될 것이란 예상이다. 곧 도미노처럼 번질 수 있다는 위기의 목소리다. 사태가 악화될수록 신규펀드 설정은 불가할테고 결국 담고 있는 설정액 6조원 전부 터질 것이란 얘기다. 6조원 전부 터지면 결국 라임자산운용은 항복하고 두 손 들 수밖에 없을 거란 말도 나온다.
일련의 두 사태에 대한 '낙인효과'는 컸다. 회사의 운용역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됐고, 사회 전반에 걸쳐 사모펀드 회피를 이끈 결과를 낳았다. 일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라임자산운용은 지난 수년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회사 중 하나였다. 2012년 8월 문을 연 이 회사는 2016년 금융당국으로부터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로 지정된 그해 단숨에 6000억원 넘는 자금을 모으더니, 다시 3년이 지난 현재는 그 10배인 6조원까지 설정액을 불렸다. 그런 라임자산운용을 두고 '사실상 재기 불능이다', '완전히 끝났다'는 반응이 나오는 상황이 됐다. 메자닌 상품은 당분간 판매처에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됐다. 찾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금융투자업계도 잘한 것은 없다. 부작용이 나오기에 앞서 자정 활동을 하지 못해서다. 은행, 증권사 등 판매채널에서 판매인이 DLF에 대한 위험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것도, 판매 수수료를 떼 갈 목적만으로 다수의 고령자에 해당 DLF를 권유한 사례가 관찰되는 등 판매채널에서 설명의무와 적합성의 원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것도 주요 문제점으로 꼽힌다.
내부통제 시스템도 미흡했다. 은행 내규에는 고위험상품 출시 결정 시 내부 상품선정위원회의 심의와 승인을 얻도록 돼 있지만 DLF 상품 판매 과정에서 위원회 심의를 거친 경우는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익성에만 골몰한 증권사도 예외는 아니다. 투자자 약정 수익률을 낮추는 대신 증권사 수수료를 높여달라고 요구한 정황이 금감원 검사 결과 드러났다.
모든 비난의 화살을 금융투자업계에만 돌리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자칫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한 채 시장만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보다는 지금껏 숱한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오락가락 잣대를 들이댔던 금융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에도 금융당국이 빼 든 건 결국 규제 카드다. 일련의 사태로 국회로부터 질타가 쏟아진데 따른 것으로,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찾는다는 방침이다. 이르면 이달 말 내놓을 DLF 제도 개선 종합방안도 역시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다.
문제는 이중 규제와 지나친 낙인 효과가 금융투자산업의 역동성마저 잡을까 우려된다는 점이다. 단기 처방에 치중한 정책이 자율규제를 통한 책임 학습 기회보다 나을지도 의문이다. 모험자본 투자라는 순기능을 위해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풀어준 장본인이 금융당국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정교하고 섬세한 새 방안을 통해 더 이상 의도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사회봉사명령을 따르는 범죄인 같은 취급도, 주홍글씨의 낙인도 이제 그만둬야 할 때다.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hj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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