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정경부 기자
![[DT현장] `탈선 위험` 패스트트랙 열차](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3102102269044001[1].jpg "[DT현장] `탈선 위험` 패스트트랙 열차")
하지만 본디 '정치는 생물'이라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터라 예측이 들어맞기는 어렵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9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 사법개혁안 4건을 12월 3일 부의하겠다고 내린 결정은 대다수 기자들의 예상을 빗나간 '반전'이었다.
국회법 85조를 보면 패스트트랙 안건은 상임위원회에서 최대 180일 간 심사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로 넘어간다. 법사위는 90일간 체계·자구심사를 끝내야 하고, 90일을 넘기면 본회의에 부의된다. 부의된 안건은 60일 이내 상정·표결처리를 해야 한다. 최장 330일의 긴 여정이다. 사법개혁안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사법개혁안을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대상으로 봐야 하느냐를 놓고 여야 간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협상을 진행중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교섭단체는 각각의 주장을 앞세워 3각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관행적으로 법사위 소관 법안의 체계·자구심사를 생략해온 것에 비춰 법사위 소관 법안인 사법개혁안 역시 체계·자구심사를 생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사위 심사기간이 지난 26일로 끝났으니 당장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반면 한국당은 법에 명시한 대로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기간 90일을 보장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마찬가지로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도 개혁안과 사법개혁안을 동시처리하기로 한 여야 4당(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의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순수하게 법리해석 차원에서 외부 유권해석 등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민주당의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국회법에도 체계·자구심사 대상에 법사위는 제외돼 있다. 법리 관점과는 별개로 여야 3당 교섭단체의 협상이 헛바퀴만 돌리면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이목은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문 의장에게 쏠렸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본회의 부의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문 의장이 29일 사법개혁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것이라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자 정해진 수순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문 의장은 뻔한 뻔했던 결말을 틀어버렸다. 문 의장 역시 당일 아침에만 해도 부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협상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게 하려면 압박용 (특히 한국당을 압박할) 카드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의장이 막판에 사법개혁안에 30여일이라는 유예기간을 둔 것은 제2의 패스트트랙 충돌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이 앞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내에서는 이미 사법개혁안이 본회의에 부의될 경우 한국당의 보이콧 가능성 등 여야 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비록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직접적으로 '유감'을 표명할 정도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그동안 강대강 대결만 벌이면서 '일 안하는 국회'라는 최악의 오명을 쓴 20대 국회가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한 번 여야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여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문 의장의 결단이 납득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음 포인트는 여야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유의미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느냐다. 유예기간은 한껏 달아올랐던 여야의 전투력에서 김을 빼버리는 결과를 낳았긴 했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살아있다. 공수처를 밀어붙이려는 민주당, 공수처는 절대 안된다는 한국당, 민주당의 공수처 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바른미래당은 지금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합의안을 만들기보다 결국 표 대결로 귀결될 가능성이 더 크다.
앞으로 패스트트랙의 향방이 어찌 될지 분석하고 전망을 기사에 담다보니 기시감이 느껴졌다. 180여일 전인 4월30일, 진통 끝에 사법개혁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던 그 날 쓴 기사 내용도 비슷했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330일을 전망했던 그 기사는 여야 합의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예측했다. 현 상황까지는 예측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가속페달만 밟아온 패스트트랙 열차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예측이 다시 한 번 빗나가기를 기대한다.
김미경 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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