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영 정경부 금융팀장
![[DT현장] 이제 `재정만능` 환상 버려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911/2019111202102269727001[1].jpg "[DT현장] 이제 `재정만능` 환상 버려라")
'빈곤 해결'이 핵심 주제인 이번 수상은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경제학상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연구는 '현금으로 도와줬는데 왜 식량을 사지 않고 담배와 사탕을 사서 다시 굶주리는 것인가'란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는 저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Poor Economics)에서 빈곤한 이들의 선택이 그들의 삶에 빗대 보면 최선이라고 얘기한다.
'오지 않은 내일보다, 당장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그들에겐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걸릴지 안 걸릴지 알 수 없는 질병을 막기 위해 당장 예방접종을 맞는 것보다 오늘 먹을 빵을 사는 식이다. 해외언론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자신만의 틀 속에 갇혀있던 경제학의 이미지가 굳어가던 차에 이번 수상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경제학이 여전히 의식주 등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를 해결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경제학은 여전히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했지만 저성장의 늪에 빠져버린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올해 1%대 성장이 기정사실화됐다.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참담한 낙제점이다. 석유파동·외환위기·금융위기를 빼고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성장률이다.
걱정스런 점은 문재인 정부가 '성장'과 '분배'를 모두 놓쳤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상승을 비롯해 청년층에 대한 현금 지원,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이 수행됐지만 양극화가 얼마나 해소됐는지는 물음표다. 소득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세금을 감당할 중산층은 쪼그라들었다. 기업 투자는 위축됐고 돈마저 돌지 않는 '돈맥경화'다.
돈벌이(세수)는 신통찮은데 지출(세출)만 키우면서 나라 곳간에도 구멍이 뚫렸다. 올 들어 9월까지 국가재정 적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 1~9월 통합재정수지는 26조5000억원 적자다. 지난 1999년 이후 누적 3분기에 이렇게까지 적자 규모가 큰 적이 없었다. 가계 소득이 줄어든 데다 근로·자녀장려금 등 복지 지출이 늘어난 탓이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재정정책에 대한 주문은 더 커지고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이미 한계에 부딪쳐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이제는 재정이 경기 대응 선봉장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재정이 앞장서야 한다"며 "내년도 확장 예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정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재정 집행이 내수를 살리기보다 선심성 돈 풀기로 이어질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우선 재정설계가 '엉터리'가 아닌지부터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일이다. 언제까지 단기공공 일자리와 청년·아동 수당 등 현금 살포성 복지를 늘릴 것인가. 투자와 고용 등 민간의 활력을 높이는데 재정이 쏠려야 한다. 통화당국 수장인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례적으로 '생산성'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재정 규모도 규모지만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만이 성장잠재력 확충의 핵심 열쇠"라고 지적했다.
'힐빌리의 노래'에서 미국의 몰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에서 자라 성공한 저자 J. D. 밴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웃집 마약중독자는 적어도 내가 급여를 받는 횟수만큼 (정부수당으로)티본스테이크를 사먹었다. 엉클 샘(미국 정부)이 내 입에 들어갈 스테이크도 못 사는 형편인 나더러 남이 먹을 스테이크를 사주라고 강요한다"고 분노한다.
이는 빈곤한 이들이 자력으로 헤쳐갈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만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일성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짚었듯, 선진국에서 많은 돈을 원조했지만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이 여전한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구조개혁과 노동개혁 등 경제의 근본체질 변화만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저기서 못살겠다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요즘이다. 정부가 복지의 진정한 의미와 효과적인 재정정책에 대해 돌아 볼 일이다.
심화영 정경부 금융팀장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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